지속가능한 로컬문화 <연리지가든> 김응두 대표
우리가 지금껏 먹은 흑돼지는 거의 전부가 개량된 잡종이다. 제주에서 6개월 이상 길러져 원산지가 제주인 것뿐, 빠른 사육을 위해 2~3종 교배로 태어난 품종인 것이다. 순수 토종 흑돼지는 제주에도 약 26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이러한 토종 흑돼지를 직접 기르면서 동시에 전문식당까지 운영하는 사람은 김응두 대표(65)가 유일하다. 제주 시내에서 한참을 달려 한경면에 있는 그의 농장을 방문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서 30년째 토종 흑돼지를 기르고 있는 김응두라고 합니다. 식당 <연리지가든>은 20년째 아내와 함께 운영중이에요.
30년간 토종 흑돼지를 사육하셨으면 나름의 비법이 있을 것 같아요
특별히 관리하는 게 없어요. 일일이 신경쓰고 통제할수록 돼지들에게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래서 항생제를 놓거나 질병에 걸려도 인공적인 치료를 하지도 않아요. 이렇게 길러야 돼지의 면역력도 강해지고 항생재에서 나는 잡내도 없어요. 특별할 게 없어서 특별한 거죠. 물론 국가에서 지정한 치료는 확실히 받고 있습니다.
농장 규모가 4,000평인데 풀어놓는 흑돼지는 40마리로 제한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더 많이 사육하면 돈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환경입니다. 주변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만 사육하려면 지금이 적당해요. 농장에서 10m만 떨어져도 냄새가 나지 않거든요. 그리고 굳이 규모를 키우지 않아도 한 식구 먹고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어요.
실제로 연리지가든은 주변에 카페 하나 없을 정도로 제주 깊숙한 곳에 자리해있다.
심지어 간판도, 메뉴판도 없이 예약제로만 운영하는 이곳의 목적은 수익창출에 있지 않다.
흑돼지를 넓은 농장에 자유롭게 풀어놓은 것에 더해, 주변환경과의 조화까지 고려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일을 오랫동안 지켜온 사람의 여유가 느껴진다.
토종흑돼지를 직접 먹어보니 확실히 식감에서 차이가 났습니다. 구체적으로 개량종과 토종 흑돼지가 차이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가장 큰 차이는 성장속도에요. 6개월을 기른 개량종과 18개월 지난 토종흑돼지 몸무게가 같은 거죠. 새끼를 낳는 것도 개량종이 2배 가까이 많은데, 이건 생산자의 입장이지요. 실제로 소비자가 느끼는 맛의 차이는 성장속도에서 납니다.
저희 농장에서도 6개월 기른 토종흑돼지를 잡은 적이 있었는데, 일반돼지와 맛에서 큰 차이가 없었어요. 천천히 성장하면서 더 견고해진 근육과 지방은 개량종이 따라갈 수 없어요. 개량종으로 똑같이 18개월을 기르려고 해도 이미 분만유도제와 항생제를 잔뜩 맞은 상태인데다가, 몸집이 너무 커져서 좋은 고기가 나오기 힘듭니다. 품종 자체가 맛있으니 식당에서도 오겹살 뿐만 아니라 앞다리, 뒷다리를 한꺼번에 팔고 있죠. 살코기가 퍽퍽하지 않고 쫀득쫀하면서 고소한 게 토종흑돼지의 특징이에요.
천천히 성장하면서 견고해진 근육과 지방은 개량종이 따라갈 수 없어요
토종흑돼지 맛을 보러 먼 곳까지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많을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으신가요?
가게 위치를 협재 해변에서 한경면으로 옮기면서 단골손님이 아니면 찾아오기 어려운 곳이 됐죠. 그중에 꼭 혼자 오시는 분이 있는데, 처음 와서는 4인분을 드시고 가셨어요. 그걸 다 먹고도 지방이 맛있다면서 더 먹고 가셨죠. 보통 비계와 달리 쫄깃하고 탄탄하다면서요. 그게 흑돼지만의 매력입니다. 또 미국에 살면서 항암치료를 받았던 분도 종종 찾아오세요. 지금은 완쾌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도심에서 떨어져 작은 규모로 운영하다보니 오래 알고지낸 단골손님도 많고,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도 나누게 되는 점이 좋죠.
사육과 판매를 동시에 하시면, 토종흑돼지를 기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기자나 PD가 연락하는 경우는 있지만, 직접 기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어요. 토종흑돼지에 대한 인식도 낮고, 굳이 저희쪽에서 토종이라는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어요. 그러니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도 정확히 왜 다른지는 몰랐던 겁니다. 주변에 장사하는 이웃들이 있는데 저만 잘난 것처럼 할 수 있나요. 지금이야 하루에 25인분만 파니까 우리가 토종이라는 말을 해도 손해볼 사람이 없죠.
개량품종이라고 해서 품질이나 고기의 맛이 떨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식감을 가지고 있고 각자 장단점이 있으니 취향껏 먹는 음식인 것이다. 김응두 대표는 그 선택을 소비자에게 맡겼고, 20년간 깊은 신뢰를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토종 흑돼지의 개체가 200마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종의 보존과 맛의 다양성 측면으로 보나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저희만 이렇게 파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해요. "이 돼지는 별난(이상한) 돼지야?" 마치 뭔가 하자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토종 흑돼지를 기르는 농가가 많아지면 인식도 변하겠죠. 지금은 제주산이기만 하면 전부 재래식 토종 흑돼지인줄 아니까요.
흑돼지 사육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어요?
없어요. 힘들게 기르지 않으니까요. 사실 즐기면서 하고 있어요.
고기와 관련된 추억이 있다면 살짝 공유해주세요
제가 어릴 때는 고기가 귀했어요. 고기먹는 것 자체가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가끔 어른들 심부름으로 제삿집에 가면 이쑤시개에 끼운 조그만 고기를 먹었는데 그 기억이 참 오래 남아요.
평소 일과가 궁금한데요. 내일 일정은 어떻게 되시나요
6시에 일어나 사료주는 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간단히 아침식사 한 뒤에는 농장을 가꿔요. 풀을 뽑거나, 물을 주거나. 그게 다에요. 너무 간단해서 말씀드릴 것도 없네요.
앞으로도 계속 흑돼지 사육을 할 계획이신가요
돼지 사료 무게가 25kg인데요, 그 무게를 손으로 들 수 있는 한은 계속 할 겁니다.
흔히 로컬문화라고 하면 '그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토종 흑돼지를 직접 사육하고 판매하는 유일한 가게라는 사실이 로컬임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제주에서 한라봉 테마카페를 오픈한 것을 두고 로컬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것처럼 말이다.
그저 재미로 하고 있는 일이라며, 신경쓰는 것도 없다고 했지만 김응두 대표에게는 '조화'라는 분명한 원칙이 있다. 흑돼지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일,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규모를 유지하는 일, 주변 농가와의 관계를 고려하는 일은 모두 조화라는 단어로 집약된다. 지역 고유의 색깔을 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로컬문화의 건강도는 얼마나 지속가능한 형태로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김응두 대표의 농장이 귀한 이유다.
글_진성훈
사진_진성훈
지원_(주)육그램 6gram.co.kr
* 인터뷰 당시 구제역 주의기간으로 인해 돈사 촬영이 불가하여, 흑돼지농장 사진은 이미지 컷으로 대체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