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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마니아가 찾는 흑돼지는 따로 있다

제주의 백종원. <만덕식당> 송민규 대표

by 육그램
흑돼지하면 보통 오겹살을 떠올리지만 고기마니아들은 좀 더 특별한 맛을 찾아서 즐겨왔다. 마장동 관계자나 축산업 종사자 등 고기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이 집에서 먹는 고기가 바로 숙성육이다. 최근 대형마트에도 숙성한우와 숙성삼겹살이 판매되며 조금씩 대중화되고 있지만 숙성육은 여전히 생소한 음식이다. 제주 여행이 일상화된 요즘 흑돼지는, '맛있지만 익숙한 고기'가 아닌 '숙성'이라는 오랜 시간의 결과물로 특별한 미식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18년간 제주 숙성육을 연구한 송민규 대표를 만났다.



송민규 대표
(유)제주종합식품 대표
흑돼지 숙성육전문 <만덕식당> 운영
웻에이징과 드라이이에징 숙성기술을 결합한 교차숙성 공법을 고수하며 15년째 제주도 거주중


제주에서 숙성육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주도는 근고기 위주로 팔리잖아요. 제 성격상 흔하지 않지만 대중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좋아해요. 숙성육은 먹었을 때 감칠맛이 좋은 고기인데 아직 제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흥미가 생겼죠. 특히 제주는 워낙 신선한 고기를 바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숙성육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김태경 박사님과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게 18년 전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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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육이 생소한 분들에게 숙성육만의 매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냄새에 민감하거나 이가 약한 분들도 쉽게 고기를 맛있게 드실 수 있는 게 숙성육의 매력입니다. 단순히 부드럽기만 한 게 아니라 단백질이 분해된 상태이기 때문에 소화가 잘 되죠. 숙성이라는 것 자체가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특유의 잡내를 빼는 과정이에요.


숙성을 하게 되면 고기 성질이 변한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완성이 되나요?

저희 매장에서는 교차숙성을 해요. 1차로 워터에이징을 끝내고 2차로 드라이이에징을 하는 거죠. 먼저 워터에이징 단계에서는 전날 도축한 고기를 진공포장해서 수조에 넣어요. 이 때 물온도를 -1도로 유지하면 윗부분은 살얼음이 끼고 아래는 염도가 맞춰져 있어 얼지 않아요. 그 상태로 지방의 두께나 고기상태에 맞춰 20일 - 30일 가량 숙성을 시킵니다. 물은 온도변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서서히 숙성시킬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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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에이징이 완료되면 *로스loss 를 파악합니다. 가장 신경이 예민하지는 과정이죠. 매일 관찰해도 고기 겉면이 파랗게 변하거나, 냄새가 이상해지는 경우가 일부 생기게 되거든요. 이렇게 로스를 제외하고 숙성이 잘 된 고기는 젖은 표면을 소독용 알코올로 닦아냅니다. 다음 단계인 드라이에이징은 무조건 건조시키는 게 아니라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건조상태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죠. 1.7 ~ 2.0% 습도를 유지하면서 숙성을 시키면 고기 안에서 육즙이 차올라요.

*loss: 숙성과정에서 부패하여 식용 가치가 없어진 고기



교차숙성 과정

1단계 워터에이징: 진공포장한 고기를 -1°C의 물에 담가 20 -30일간 유지한다

2단계 로스 제거: 수조에서 고기를 꺼내 색과 냄새가 변하여 부패한 고기는 폐기한다

3단계 드라이에이징: 포장을 벗겨내 젖은 고기를 소독하여 닦아내고 습도를 2% 유지한채 숙성시킨다



말씀하신 것처럼 천천히 숙성시키면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효율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이 방식을 유지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천천히 숙성해야 과정을 하나하나 눈으로 볼 수 있고, 일정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빨리 숙성하게 되면 고기의 상태가 하루단위로 확 바뀌어 버려요. 고기의 상태에 따라 아예 상해버리거나 숙성된 정도가 들쭉날쭉하게 되어버려요. 맛과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꾸준히 지켜보면서 숙성해야 합니다.

초숙성(단기숙성)을 하게 되면 과정을 하나하나 지켜보기 힘들고 일정한 퀄리티가 유지되기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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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숙성해야 과정을 하나하나 눈으로 볼 수 있고, 일정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숙성육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려요

두껍께 구워낸 고기를 좋은 소금에 찍어먹는 걸 선호해요. 좋은 고기일수록 다른 양념 없이 소금에 찍어 먹잖아요. 좋은 소금은 쓴 맛이 아니라 단맛이 나요. 개인적으로나 매장에서나 안데스 소금을 쓰는 이유죠.


기존의 식습관이랑 다른 상품을 판매하고 계신데, 주로 어떤 손님들이 방문하나요?

도민들 중에 미식가분들이 많이 방문하고, 관광객이 절반 정도입니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으신가요

서울에서 2년째 찾아오는 분이 있어요. 출장으로 오셔서 공항에 내리자마자 방문해서 먹고, 돌아갈 때 다시 찾아주시는 분이죠. 얼마전에는 직장동료들에게 선물한다며 50인분을 구매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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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오전은 매장관리로 시작합니다. 제가 직접 관리하는 매장이기 때문에 직접매입과 발주를 진행해요. 흑돼지 농장 3곳과 거래를 하면서 그때그때 가장 품질이 좋은 고기를 들여와요. 일종의 경쟁입찰인 셈이죠. 오후에는 고기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야채도 직접 체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누구나 숙성육을 즐길 수 있게 보급하고 싶습니다. 비선호 부위를 가지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맛을 끌어내는 게 저의 비전입니다. 그래서 가격도 대중적인 선에서 맞췄고요. 앞으로는 테마별로 식당을 오픈할 예정이에요. 1차로는 흑돼지 특수부위(내장), 2차는 흑돼지 대중적인 메뉴(오겹살, 목살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중입니다.



누구나 숙성육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저의 비전입니다


식당의 입지는 곧 주인의 태도다. 환경과의 조화를 우선하는 <연리지가든>이 소개받지 않으면 찾기도 어려운 곳에 있다면, <만덕식당>은 주변에 호텔이 많은 제주시내에 위치해 있다. 송민규 대표의 머리속에 숙성육은 '고기마니아만 즐기는 상품'이 아닌 지나가다 우연히 들러서 먹을만큼 대중적인 식문화가 되는 풍경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와인이 그랬고, 지금의 평양냉면이 그러한 것처럼.

흑돼지 숙성육은 '아직 흔하지 않지만 대중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상품으로서 그 가치가 충분하다. 아직까지는 숙성육을 먹는다는 것 자체만으로 취향이 뚜렷해보이지만, 머지 않은 날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숙성육을 편하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글_진성훈

사진_진성훈

지원_(주)육그램 6gr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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