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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드라이에이징] 소고기에서 블루치즈 맛이 난다고?

부여 서동한우 유인신 대표 인터뷰

by 육그램
한끼를 먹어도 제대로 된 식사를 즐기는 식도락이 늘어나면서, 고기를 먹는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소고기=마블링이라는 인식이 깨지고 고기 본연의 풍미를 즐기는 숙성육이 새로운 식문화로 떠오른 것이다. 평양냉면에서 슴슴한 육수 맛을 즐기듯, 고기도 단백질의 향과 맛을 끌어올린 숙성육이 주목받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단순히 오래된 고기가 아닌, 일정한 온도와 습도에서 발효된 고기에는 오래된 와인과 같은 깊이가 있다. 드라이에이징은 통상 30~50일 동안 이루어지지만, 100일 이상 숙성하게 되면 특유의 고소한 블루치즈 향이 배인 고기를 맛볼 수 있다. 그 맛이 어느 정도냐고 묻는다면, 토요일 저녁 회사 대표와 함께 가는 부여 출장에 불만을 제기할 수 없었다고 답하겠다. 유인신 대표를 만나 일반 고기와 드라이에이징 고기의 차이, 그리고 서동한우만의 독자적 기술에 대해 물었다.


肉meater, 고기 다루는 사람을 만나다

유인신
SD푸드(주) 대표
부여 서동한우 대표
41년간 축산업에 종사하며, 20년의 농장운영, 식당경영 이력을 가지고 있다. 2009년 우연히 발견한 드라이에이징의 맛에 빠진 뒤 10년간 자체실험을 거쳐 Deep Dry Aging이라는 독자적 숙성기술을 개발했다.



반갑습니다. 서동한우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서동한우는 드라이에이징 한우를 연구, 판매하는 회사입니다. 외식업은 21년 전에 처음 시작했고 드라이에이징은 10년차에요.


21년 전이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그때만해도 특수부위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어요. 지금은 다들 맛집을 찾아다니지만 당시에는 고기를 양으로 먹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소비자 입맛이 점점 변화하는 것에 따라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오래 사업을 이어오면서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전국을 돌면서 맛을 보잖아요. 한 요리연구가분이 호남을 한바퀴 싹 돌고 올라오면서 마지막에 저희집을 찾아오셨어요. 워낙 많은 집을 들렀다 오니까 처음엔 문을 열면서 "또 고기야. 아 배불러. 조금만 주세요." 하셨죠. 본인은 배부른 줄 알고 있었던 거에요. 기름을 먹으면 배부른 게 아니에요. 느끼해서 속이 더부룩하고 헛배가 부른거죠. 그 분도 맛있다면서 계속 먹더니 혼자 1kg을 드셨어요. 육회비빔밥도 추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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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육은,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는데, 많이 먹게 돼요.


또 다른 경우는, 네명이 앉아서 70만원어치를 먹은 분들도 있어요. 17인분 정도 먹은 셈이죠. 보통 소고기는 그렇게 못 먹잖아요. 그런데 숙성육은 발효된 거잖아요 소화가 잘되고, 속에 느끼한 것도 같이 잡아주니까 많이 드신 거에요. 등급이 1+ 이상이 되면 느끼해서 많이 못 먹어요. 숙성육은, 장점일수도있고 단점일수도 있는데. 많이 먹게 돼요.



아직도 한우는 없어서 못 먹지만, 막상 많이 먹으려고 해도 금세 젓가락을 내려놓게 된다. 생각해보면 마블링이 좋을수록 첫 한입은 맛있지만 느끼함에 질리는 순간도 그만큼 빨리 찾아왔다. 지방맛으로 먹는데는 한계가 있다. 반면 드라이에이징은 대개 마블링이 적은 부위를 사용해 단백질 자체를 부드럽게 만들고 그 맛을 끌어올린다. 구웠을 때 연기가 나지 않는 것, 부드러운 식감을 유지하는 것 모두 단백질 함량이 높은 숙성육의 미덕이다.



드라이에이징을 주력으로 하고 계신데, 숙성방법 중 웻에이징과 드라이에이징의 차이는 어떤 게 있을까요

보관 방법의 차이죠. 웻에이징은 진공포장해서 보관하고, 드라이에이징은 공기중에 노출시킨 채로 보관하는 거에요. 숙성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사실 모든 고기는 에이징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어요. 도축한 다음 하루 가지고 있으면 하루 에이징 한 거죠. 그래서 에이징 개념을 정확히 분리할 순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웻에이징은 효소로 단백질을 분해시키는 것 까지만 진행됩니다. 드라이에이징은 단백질을 분해하는 숙성에 발효작용까지 진행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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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반인들은 잘 구분 못해요. 발효는 성분까지 변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숙성은 조직만 변했으니까 고기가 연해지기만 한 거고. 숙성은 효모만 작용하지만 발효는 미생물까지 작용합니다.


드라이에이징에서 나는 풍미가 그러면..

발효향이죠.

건조숙성하는장면.jpg 문을 열자마자 블루치즈 향이 느껴졌던 서동한우의 숙성고


숙성을 하면 왜 블루치즈 향이 나는 건가요? '향을 입히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서동한우의 숙성실에만 존재하는 미생물이 있어요. 그게 만들어질때까지는 출입을 철저히 통제해서 자리를 잡게 만들어요. 배양이 시작되고 나면 이 미생물이 다른 유해균이 들어와도 스스로 방어하기 시작합니다.


숙성고를 관리하는 법도 다른데, 숙성고 안쪽 면을 깨끗하게 닦아내버리는 곳이 많지만 저희는 미생물이 스스로 다른 유해균을 방어하게끔 환경을 조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전부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특정 미생물이 향을 내는 작용을 하고 있고, 그걸 관리하는 게 저희의 일이라고 보는 거죠. 이 미생물을 잘 컨트롤하면 웻에이징에서도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처리 과정을 통해 일주일 숙성한 돼지고기도 다른 맛을 낼 수 있어요.


딥 드라이에이징Deep Dry Aging의 경우 150일까지 숙성하는 걸로 알고있는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맛보다는 향에서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발효가 진행될수록 향이 더 깊고 진해지죠. 드라이에이징은 평균 50일에서 길게는 100일까지도 숙성하지만, 150일까지 끌어올리면 아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갑니다. 먹어보고 지금까지 감동 안 한 사람이 없어요.


DSC00919_바코드 블러 보정.png 2018년 2월에 숙성을 시작해 109일 경과한 암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고기맛의 기준은 연도tenderness, 다즙성juiciness, 향미flavor-likeness다. 그중에서도 향미는 '맛의 절반을 좌우하는 건 향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식경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향이 없는 커피와 치즈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동안 고기 굽는 냄새가 다 똑같다고 생각했다면, 드라이에이징은 블루치즈 향을 새로운 경험으로 추가시킨다.



최근에는 집에서 직접 고기를 숙성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시나요?

좋아요. 고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거니까. 다만 색이 검게 변하면 썩은 줄 알고 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온도와 습도를 맞춘다면) 가정에서 1-2주 정도는 크게 문제되지 않아요.


숙성삼겹살도 만들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인기품목인 삼겹살을 굳이 숙성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삼겹살은 고유의 냄새가 있어요. 그래서 김치와 같이 먹게 되는 건데, 숙성을 하면 소금만 찍어 먹어도 맛있어요. 느끼한 맛이 많이 줄어들죠. 지방의 성분도 변해요. 보통 37도면 고기가 굳지만, 숙성한 돼지고기는 20도까지 내려가야 지방이 굳게 됩니다. 그러면 인체 내에서 굳지 않으니까 몸에 축적이 안 되고, 건강에 더 좋은 거죠.


그 외에도 말고기 등 꾸준히 숙성을 실험하고 계신데, 최근에는 어떤 실험을 하고 계신가요?

말고기를 숙성 해봤더니, 지방이 너무 없어서 육포처럼 되어버리더라구요. 양고기, 흑염소 숙성도 시도해보려 합니다. 물론 혼자 하는데 한계가 많이 있죠. 숙성 단계별로 체크해야 할 날짜가 있는데 그걸 놓쳐버리기도 하고요.


DSC00927_배경크롭, 밝게 보정.png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는 서동한우 자체 숙성고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지금껏 부위별로 먹어왔던 고기 대신 용도별로 고기를 판매하는 거죠. 쉽게 말해서, 메뉴판에 등심 대신 스틱 스테이크라고 적혀있는 거에요. 물론 부위도 알려주겠지만, 정작 중요한 건 고기를 어떻게 먹을 때 가장 맛있는가. 하는 거거든요. 고기를 양으로 먹었던 시기가 1세대, 등급으로 먹던 시기가 2세대라면, 이제는 고기를 용도로 구분하는 3세대가 시작될 거에요.


DSC00925_배경 블러, 텍스트 선명하게 보정.png 서동한우 숙성고에서 실험중인 삼겹살


숙성육의 맛은 만드는 사람이 좌우한다. 신선한 고기를 고를 때에는 도축일자만 확인하면 끝이겠지만, 숙성육은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느냐가 핵심인 것이다. 특히 드라이에이징은 단순히 고기를 매달아서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이 아니라 살아있는 미생물을 다루는 만큼 까다롭고 정밀한 작업이다. 이러한 생물의 복잡성은 10년 동안 쌓인 수많은 실험과 경험 데이터를 남들이 복제할 수 없는 나만의 것으로 만든다.

지역의 식당에서 시작해 자체 R&D센터를 설립하고, 드라이에이징의 최전선에 나선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 다음 실험을 준비하는 유인신 대표가 신뢰로운 이유다. 자신만의 역사와 스토리를 쌓아온 사람에게 붙는, 장인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글_진성훈

사진_진성훈, 서동한우

지원_(주)육그램 6gr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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