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그램 매거진 『MEATing』_고기를 통해 만나다
안녕 : grace
10년간 한 사람과 묵묵히 손 맞잡고 걸어 가고 있는 그레이스에요. 한 사람과 10년,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어요. 가장 파릇한 20대 초반을, 세상의 차가움에 화들짝 놀라 눈물 찔끔 흘리는 이십 대 중반, 내가 돈벌이는 이걸로 하는 게 맞나라는 고민에 밤잠 설치던 이십 대 후반, 승진을 위해 치열했던 삼십 대 초반, 그리고 무르익어 오늘을 살아가는 삼십 대 중반. 이렇게 제 삶의 여정을 저와 같이 겪어준 사람과 함께 한다는 건 ‘어우러짐’이 아닐까 싶어요.
다르잖아요. 타인과 내가 아무리 성향이 비슷한다 한들 어떻게 같을 수 있겠어요, 그런 타인과 무언가 어우러져 간다는 것. 그게 오늘의 제 연애가 아닐까요? 남자친구는 홀로 자는 걸 좋아해요. 아니, 타인과 함께 잠자리를 공유하지 못한다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잠귀가 밝고 원체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라 제 자그마한 움직임에도 “왜? 뭐 필요해?”라며 몸을 일으켜요. 그래서인지 지금껏 우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항상 다른 방에서 잠들어요.
섭섭하기 보다 그게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라면 저 방식에 내가 녹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갈비찜을 보면 우리 연애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갈비살에 어울러지는 그 양념. 양념에 재어 두지 않으면 그 양념이 고기에 배지 않잖아요. 양념의 맛이 들 때까지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이렇게 서로 곁에 있기까지 서로에게 스며드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또 갈비찜에는 많은 야채들이 예쁘게 들어가잖아요. 당근, 감자, 양파. 그건 우리가 연애하며 쌓아가는 추억같아요. 단순히 우리가 스며든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우리가 회상하며 가슴 한 켠 따스하게 웃음을 베어 물게 만들어주는 그런 갈비찜 속 야채같은 추억이랄까요?
무엇보다. 갈비찜은 생각보다 약불에서 오래 익혀야 하잖아요. 갈비찜이 익어가는 시간 솥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 또 오래 익히면 익힐수록 녹아 내린다는 말이 나올 만큼 부드러워지는 고기. 그게 참 우리의 연애 같더라구요.
오랜 기다림. 누군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기다림이 필요한지 우리는 이제 알잖아요. ‘쟤가 왜 저럴까? 왜 저렇게 생각할까? 왜 지금 저런 행동을 할까?’ 그걸 이해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한 게 갈비찜이 익힐 기다리며 들통 앞에서 갈비가 익힐 기다리던 그 시간과 너무 닮았단 생각이 들었어요.
10년쯤 되니 더는 싸우지 않아요. 이제 말하지 않아도 내가 기분 나쁜 이유를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니까. 카페 가서 메뉴를 고르지 않았는데 제 메뉴를 주문해서 자리에 앉는 사람이니까.
처음 연애는 질긴 고기를 씹는 느낌이에요. 뭔가 계속 맞추고 부딪히고 그 안에서 혼자 울기도 많이 울고. 그런데 10년 연애는 너무 잘 익어 부서지는 갈비살들 훑는 느낌이에요. 더는 무언가를 맞추지 않아도 돼요. 그저 이 소중한 사람이 내 곁에 있구나 잘 느끼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요즘 갈비찜을 한 번씩 해먹어요. 생각보다 시간도 정성도 많이 들어가는데, 내 연애와 닮은 이 음식을 소중한 이에게 대접하고 싶어서.
여러분들은 소중한 사람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뭐에요? 참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