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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스미미 Jun 05. 2024

행복의 모양

서울 아파트? 그까이꺼?

 은행을 다니고 회계사가 된 대학 동기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일찍이 설계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갔다. 이른 나이에 서울에 있는 아파트도 구매하고 참 대단했다. 워낙 착실한 친구들이라 ‘저 친구들은 뭘 해도 잘할거야.’ 라는 생각과 함께 그 모습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경제학을 전공했다고 말하면 돌아오는 질문들은 참 한결같다. “요즘 부동산 어때요?” 내지는 “환율이 오를까요? 주식 종목은 뭐가 좋아요?“ 그럴때마다 나 역시 일관된 말로 응답한다. “그걸 알면 내가 왜 여기에 있…”

 수능성적 맞춰 진학했지만 나름 무난하게 수학했다. 하지만 역시나 경제에 대해 흥미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은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기도 했고, 회계사다 세무사다 수험생활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재무제표니 채권이니 이런 건 나에겐 영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직장생활 3년 차쯤 경제학과라는 이유만으로 전공과 관련된 일을 맡게 되면서 얼떨결에 대학원까지 진학해버렸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의 질문은 더 디테일해졌다. “금리가 오른다는데요 영끌한 건물이 지금 어쩌구저쩌구-” 역시나 나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내가 그걸 알면 지금 여기에 없…”


 경제학 전공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투자활동엔 관심이 없었음에도 ‘아무것도 안하면 벼락거지가 됩니다’ 라며 오만 사람이 떠들어 대니 불안해졌다. 나의 소중하디 소중한 월급은 2퍼센트 예금금리로 쥐꼬리만큼씩 쌓이고 있는데 갭투자로, 주식으로, 코인으로, 수천만 원씩 벌었다는 뉴스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이거 혼자서는 안 되겠다 싶어 꽤나 비싼 돈을 지불하고 투자 모임에 가입했다. 모임 호스트도 직장인이었는데 벌써 아파트가 몇 채 있고 주식 수익률이 얼마고......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경매는 이렇게 한다더라. 요즘은 스마트스토어가 대세라더라.- 일단 열심히 메모를 했다. 나도 드디어 투자활동에 편승했다는 으쓱함이 생기기까지 했다. 뭔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처음 접하는 거라 낯선거겠지...’ 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을 가려 준비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다시 또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그런 이야기를 들을 생각을 하니 숨이 턱 막혔다. 마치 돈의 소굴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고급정보를 알아도 나에게는 가치가 없었다. 그것이 고급정보인지 판별할 능력조차도 없었다. 며칠 동안의 고민 끝에 결국 꽤 많은 수수료를 지불하고 환불 처리를 했지만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다들 돈 벌기에 열심인데, 내가 뭐 대단한 금수저라고 이러고 있나 싶다가도 또 막상 하자니 내키지가 않고.


 투자 모임에 가느라 잠시 중단했던 독서모임엘 오랜만에 갔다. 무려 300여 페이지의 소설책 한 권에서 뻗어나가는 저마다의 이야기들에 대해 누구 하나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았다.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물밀듯 쏟아져 나왔다. 때로는 우주에 대해, 때로는 존엄에 대해, 때로는 나에 대해. 우리들은 책을 매개로 느슨한 연대 속에서 끈끈한 시간을 이어 나갔다. 장장 네 시간 동안의 책 이야기를 마치고 집에 가려 건물 밖을 나서는데 그때, 마법의 약을 마시고 게이지가 오르는 게임 캐릭터처럼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기운이 점점 차오름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이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 이거지!!!!!”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과 행복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모양의 행복을 원하는지 어렴풋이 떠올랐다. 남들과 비교하자면 끝도 없는 이 세상에서 우주먼지 같은 내 존재 하나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 같다. 당장 직장을 그만두고 유유자적하며 여행 다닐 처지는 아니지만, 최소한 퇴근 후 한 시간은 달리기를 하고, 삼십분은 글을 쓰고, 남은 시간엔 고양이 유튜브를 보다가 잠드는 것. 때로는 시원한 맥주도 마시고 독서 모임에서 수다를 떠는 것. 이것이 내 행복의 모양임을. 그런데 서울 아파트는 좀 부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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