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의 에이전시 생활 마무리
2018년이 또 이렇게 순삭 되었고 3년 동안 일한 에이전시에서 새로운 팀에 들어가 작업 한지가 얼마 전 일 같은데 이제는 2019년도 두 달을 지나가고 있다.
특히 2018년도는 기억에 남는 일이 많았고 생각보다 알차고 좋았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
3년 동안 에이전시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면서 하얗게 태워 버려서 인지 2018년은 평상시와 다르게 이상하리 만큼 조급 하지도, 욕심도 생기지 않았다.
이 모습을 캐치하신 팀장님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무계획이 계획이다를 외치셨다. 물론 단 3개월 동안만의 계획이셨지만 그 계획은 내 1년 계획이 되었다.
이 계획은 생각보다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계속해서 같은 일과 같은 방식으로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내가 뭘 하는 걸까 하고 우울해져만 갔던 나에게 무계획은 큰 전환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계획 없이 흐름에 나를 맡기는 동안 한없이 내려가 있던 나의 업무 리듬이 점점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목표와 계획대로의 달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기만 했던 다른 해와는 달리 여유롭게 머리를 비우고 나의 마음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무계획이 계획'은 나를 아무 생각 없이 리프레시 할 수 있게 하였고 한순간에 왜 이렇게 내가 식어 버렸는지에 대한 고민에 집중할 수 있었으며 2019을 준비할 수 있는 재 충전의 기회를 얻었다.
에이전시 생활을 하면서 아쉬웠던 내 모습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다시 시작하기 위한 힘을 얻어보려고 한다.
근래까지 회사에 몰두했던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팀 구성의 시작으로 많은 일들을 해볼 수 있는 가능성과 다양한 작업들을 통해 작업들의 퀄리티를 높이는 목표가 명확하게 세워졌기 때문이었다.
주니어 디자이너들만 구성된 팀이었지만 1년 동안 매출도 거의 달성했고 새로운 팀 문화를 만들고 사이드 프로젝트 등을 작업한 기록들로 모두 힘을 합쳐 팀을 만들어 갔다.
하지만 디자인팀임에도 불구하고 매출만으로 평가된 우리 팀은 3프로 모자란 매출로 인해 해체되었다. 회사 시스템상으로 어쩔 없는 결과였지만 아쉬웠고 1년 동안 이뤄놨던 성과들이 매출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 거 같아 실망감에 빠졌다.
회사에서 오는 피드백을 보상으로 기대했던 나는 실망감에 계속 빠져버리고 말았고 그 여파는 꽤 오래가고 말았다.
대부분의 일들은 어느 기준선에 맞추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로 나뉜다. 특히나 회사생활에서는 그 기준이 더욱 뚜렷하다.
나의 기준과는 다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실패의 기준과 보상의 기준이 100% 외부환경에 맞춰져 있을 경우 나 자신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그 목표를 달성했을 시 주어지는 내 기준의 보상도 계획해보자.
외부환경의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의 여부도 중요할 수 있지만 나만의 기준으로 스스로 노력한 고민들과 행동에 보상도 정해보자.
스스로 나에게 칭찬해주자.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며 부족한 점은 잘 명심해 두고 잘한 점은 그게 돈이든 시간이든 다양한 형태로든 상관없이 보상하자. 내가 그 보상을 받았을 때 즐겁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만 하면 된다.
‘나도 저렇게 멋진 디자인을 해야지’, ‘나도 좋은 회사 가고 싶다’,'나도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싶다'등등
매해, 매 분기마다 마음을 다지는 것 같다.
연말 연초 한 해를 아카이빙 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면 업계의 다양한 멋진 분들의 성공적인 활약들을 목격하면서 나도 내년엔 꼭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언제나 설렌다.
하지만 그 목표는 항상 바람으로 끝나 버리거나 실천 계획들은 그리 오래 같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거대한 목표들을 이뤄야 된다는 압박감과 그 목표들을 이루지 못했을 시 절망감으로 빠지는 패턴이 매년 익숙해지고 있는 듯했다.
처음부터 큰 프로젝트로 시작해 봐야지라는 큰 목표보다는 하루 30분씩 개인 작업하기로 확 축소해보고 작업 자체를 습관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게 쪼갠 작업들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일주일이나 한 달 단위로 체크를 하면서 체크 표시를 듬성듬성이라도 채워나가고 있다.
요즘은 아예 동료들과 아침 회의를 하면서 작게 쪼갠 일들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공유하는 시간도 갖는다.
혼자 하기 힘들었던 작은 습관도 같이 공유를 하게 되니 좀 더 신경 쓰고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 거 같다.
역시 지금도 작은 성공을 이뤄내는것도 잘 되지는 않는다. 그냥 계속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점검 시간을 늘려가고 있을 뿐이다. 이런 시간이 쌓이게 되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는 중이다.
측정할 수 있는 수치를 기준으로 삼아 실천 계획을 세우면서 시시때때로 수정해보자.
하지만 실패했다고 해서 나를 자책하지 말자.
실패했다고 해서 내 목표가 무너지거나 내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자책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다. 아주 작은 일의 행동부터 성공시켜가면 목표 성공을 연습해 보자.
2018년 중 가장 잘 한 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업계 친구들과 스터디 모임을 만든 것이다.
발이 넓지 않은 나는 업계 친구들이라고는 전무했었고, 회사에서의 인연으로 만나게 된 좋은 몇몇 분들이 전부였다.
서로 새로운 자리를 찾아 떠난 후에도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커리어의 대한 고만과 업계 정보를 나누곤 했다. 이런 좋은 인연을 그저 두기는 아까워 스터디 모임을 제안했고 토요일 아침마다 모여서 작은 스터디 모임을 시작했다. 스터디 모임에서는 크고 거창한 프로젝트를 하는 것은 아니다.
토요일 아침에 모여 커피 한잔 마시며 회사에 대한 고민, 작업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각종 정보를 공유한다.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은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
주절주절 모두 설명하지 않아도 귀신같이 이해해주며 서로에게 지지자가 되어 준다.
이야기를 나눈 뒤, 토요일 오전 동안 작업할 개인작업에 대한 프리뷰를 하고, 각자의 개인 작업 시간을 갖는다. 짧은 시간 동안 수행한 개인의 작업을 리뷰하며 서로의 작업의 응원을 보내고 좋은 아이디어를 더해준다. 이렇게 작은 모임은 토요일 오전 시간 동안 엄청난 성취감과 만족감을 준다.
엄청 많은 것들을 이뤄내는 시간은 아니지만 이른 아침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나를 위해 잠깐의 집중 시간을 갖는 느낌이 하루의 시작을 다르게 만든다.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동안 일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버거워서 회사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 생활만 한 것이 가장 아쉽다. 세상은 넓고 다양한 디자이너들과의 지식공유를 통해 더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을 모르고 지냈다.
확실히 지식은 공유할수록 같이 고민할수록 더 커지는 거 같고 내가 가지고 있던 지식도 나눌수록 나에게 더 커지고 명확해지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스터디에서 많이 배우고 있는 입장이지만 내가 나눌 수 있는 것들이 있도록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어제 일어난 일도 깜빡깜빡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저번에 수행한 프로젝트가 뭐였는지 한참 생각해야 떠오른다. 뭐든지 기록으로 남겨야만 내가 경험을 통해 얻은 것들이 오래가는 것을 요즘 들어 많이 느꼈다.
작은 사건 사건들이 모여서 나를 이루어가고 있는데 가끔은 그것들이 휘발되어 가는 게 아깝다.
지금처럼도 작년을 돌아보는 글을 쓰면서도 작년에 대해 기억나는 것들이 일부분일 때면 너무 아쉽다.
모든 순간을 기록하는 것은 어렵지만 내가 잊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은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에이전시에 있을 때는 작업에 대한 백그라운드와 프로세스를 적어놓는 일이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업무를 위한 업무라는 생각의 문서 정리에 중요성을 많이 못 느꼈었는데 지나고 나서 그 일들을 통해 프로젝트를 더 깊이 있게 보는 눈을 만들어주는 과정이었던걸 알았다.
글로 다시 정리하다 보면 놓치고 있었던 부분들을 캐치하기도 하고 의외의 지점에서 해결책을 찾기도 했었다.
올해부터는 업무상이 아니더라도 내가 느끼고 배우는 것들을 적어놓고 공유하면서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보려고 한다.
2018년을 무계획으로 지내면서 에이전시의 생활을 마감하고 새롭게 서비스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모든 게 새로운 거 투성이인 한 해가 될 거 같다.
내가 느끼는 새로운 것들을 많이 기록으로 남겨보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