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드리셋 Jul 04. 2019

양날의 검, 육아서

공유하고 싶은 육아에세이 속 몇 문장


어린아이들이라면 치를 떨던 내가 어느덧 육아 8년 차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국민애벌레' '국민문짝' 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구경이라도 해봤을 물건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육아서'일 것이다.




누군가는 책 없는 육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육아서에 많이 의지한다고 했지만, 나에게 육아서는 항상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였다.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육아를 하며 괴로웠을 때,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 자체가 아닌 아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보고 스스로 실망했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종종 '육아서'를 펼다.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럴 때일수록 육아서를 더 멀리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육아서를 읽으면, '이 구역의 미친X은 나라는 사실'을 확인사살하는 꼴이 되기 일쑤였다.


'그거 봐서 뭐 해.'

'그래도 안 보는 것보단 낫지.'
'다 알아. 누가 몰라서 못 하나.'
'아, 역시 나는 안 되는 인간이구나.'

'입으로 하는 육아는 나도 하겠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듯 뭐라도 한 번 읽어보고 싶거나, 대상 없는 반항심에 잠식당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후자가 더 컸던 것 같다.)


육아서는 직접 사기도 했고 빌려서 보기도 했다. 귀를 접고 줄을 긋고 때로는 메모도 하면서 읽었지만 늘 '그때' 뿐이었다. 작심삼일이면 양반일 지경이었다. 때로는 짬 내서 읽는 책이 자꾸만 '육아서'가 되는 게 싫어서 일부러 육아서를 제외하고 온전히 '내 재미만을 위한' 책을 골라 읽은 적도 있다. 그러면서도 희한하게 육아서를 아예 끊어버리지는 못했다. 지금까지도!(이렇게 말하니 육아서를 엄청 많이 읽는 엄마 같지만, 그저 끊어내지 못했을 뿐이다.)

이건 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육아서를 고를 때 나는, 책의 저자가 실제로 아이를 키워본 사람인지 아닌지를 검색해보기도 했다. 아이가 있다는 게 벼슬은 아니지만 적어도 육아서라면 프롤로그나 저자 소개에 이런 부분을 '스펙'처럼 한 줄 넣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 했다. 아이의 성별이나 숫자, 나이 터울이 중요하진 않지만, 자신의 아이 한 명 키워낸 방법만이 옳은 길이라고 주장하는 책, 육아를 해보지 않고 지식만 나열한 책을 앞에 두고서는 '아무리 일리 있는 원칙이라도 그 한 명 됐다고 다 되는 건 아닐 걸?' '실전 경험 없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확신할 수 있지?' 하는 반골기질 올라오기도 했었다.

그렇게 내가 읽어 온 육아서는 어떤 것들인가 생각해봤더니, 두 가지로 압축이 됐다. 하나는 '위로'를 주는 책(육아에세이), 또 하나는 실제적인 '해답'을 제시해주는 책이었다. 잘은 몰라도 아마 내 책장 속 육아서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육아서가 크게는 이렇게 나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최근엔 그 경계도 많이 모호해지고 '평범한 엄마의 일기'와 '전문가 솔루션'을 한 방에 접목시켜놓은 멋있는 콘텐츠들도 많이 보이는 것 같다.(마 전에 나온 '딸바보가 그렸어-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책이 떠오른다.) 아래 언급하려는 내 책들은 굳이 나눠보자면 '위로와 공감을 주는 책'에 해당한다. 훈육법을 다루기보다는, 편안하게 읽을 수 있지만 깨달음 녹아있는 에세이! 간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책들이라 한 번 나눠보고 싶다.(좋은 건 함께 해야지!!) 물론 '좋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다소 투박할 수 있어도 나에겐 주옥같은 책들이다. 이렇게 미리 약을 쳐놓고, 책 속 한 문장과 짧은 소감 위주로 내 '최애' 육아에세이 몇 권을 소개해본다.







1.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박혜란)

그저 우리 집에 있는 동안 아무 탈 없이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다가 때가 되면 홀연히 떠나기를 바랄 뿐이다. 주인과 손님 사이에 끝까지 서로 좋은 감정, 친밀감 같은 것을 갖고 지내면 더 바랄 게 없다. 다만 이 손님은 장기투숙객이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30년 이상 동거해야 한다. 너무 잘해 주면 40년 이상 머무를지도 모르는 게 흠이지만. (p.92)


부제는 '박혜란 할머니가 젊은 부모들에게 주는 맘 편한 육아 이야기' 이다. 가수 이적을 포함한 세 아들을 이미 다 키운 '할머니'의 말이지만, '모성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연습하는 것'이라고 다독여주는 잔소리 아닌 말들이 책의 힘이 아닐까. '육아, 금방 지나가니까 편안하게 키우라'고 말하는 동시에, 이 말이 젊은 엄마들에게 씨알도 안 먹힐 말이라는 걸 인정하는 이 분의 위트가 참 좋다.



2.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서천석)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하는 부모는 분명 아이에게도 같은 말을 합니다. 우선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말해 주세요. 자화자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따뜻하게 격려하면서 해 보자고 하세요. 아이에게 말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연습이 필요합니다. (p.151)


엄밀히 말하면 에세이는 아니다. 양육방법을 제시하고 있긴 한데 이상하게 뭔가 대안을 찾고 싶을 때보단 마음이 우울할 때 펴봤던 기억이 있다. 각각의 솔루션들이 에세이처럼 담백하고 짧게 적혀있다.(sns로 부모들과 소통하며 쓴 글의 모음집이라 그렇다.) 아무 페이지나 펴도 휘리릭 하나씩 읽을 수 있어서, 책 읽을 짬이 없는 엄마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부모를 나무라는 느낌보다는, 토닥토닥 격려해주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영유아를 키울 때는 물론이고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지금도 도움될만한 내용이 꽤 있다.(공부, 사춘기 등)



3. 보통의 육아 (야순님)

어째서 '요즘 아이들은 문제야' 라고만 말했던 걸까. 요즘 아이들을 얼마나 만나봤다고, 얼마나 안다고. 어째서 단편적인 몇몇 이야기만 듣고 행여 내 자식이 그런 아이들과 엮일까 봐 경계하고 거리를 두려고만 했을까. 그 아이들에게 말 한번 걸어본 적도 없으면서. (p.215)


완전한 제목은 '누구나 하지만 누구도 쉽지 않은 보통의 육아' 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웃기도 했고 울기도 했다. 편하게 읽히지만, 쉽게 쓴 글이 결코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세 딸을 키우며 자신이 느낀 감정을 '매우' 솔직하게 적어나간다. 나는 책을 고르기 전 '목차'를 주의 깊게 보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이 책에 있던 '책육아? 책이 어떻게 아이를 키워?'라는 꼭지이다. 나도 책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감히 저런 질문을 던져보지 못했었고, 그래서 저 챕터가 굉장히 궁금했다. 리고 나는 이 책 덕분에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당연한 진리를 머리가 아닌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되었다. 고마운 책이다.



4. 엄마 같지 않은 엄마 (세라 터너)

아이들은 누군가가 "오늘 뭐 했어?"라고 물을 때 엄마가 '좋은 엄마' 노릇 하기 위해 노력한 일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언제나 "TV 봤어요", "과자 먹었어요", "과자 먹으면서 TV 봤어요"라고 대답한다. (p.187)


(어떻게 이런 부분 하나까지 놓치지 않지?) 이 책에선 '육아의 민낯'이 낱낱이 파헤쳐진다. 아이를 끼고 있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이야기들. 이것을 세세하기 이를 데 없이 묘사한다. 저자는 영국에서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영국 아마존 4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책이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땠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역주행을 해도 아깝지 않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행복하고 아름답고 긍정적인 모습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건지, 저자는 자신의 블로그 글이 불쾌했다는 반응을 실제로 몇 번 들었다고 한다. 베스트셀러였으면서도. 결론은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이 책은 매우 내 취향이라는 것!(나는 정말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사실 한 장 한 장이 너무 재미있고 리얼해서 '불호'였던 사람들 마음도 단숨에 되돌릴수 있을 것 같다.






쩌면 나는 아이를 다루는 방법을 제시한 책 보다 육아일기 같은 에세이 한 권에 위로받은 날들이 더 많을지 모른다. 그저 '나도 그랬다, 그럴 수 있다' 하는 내용만으로 바닥난 내 에너지를 가득 채워주었던 그런 책들! 물절한 훈육법을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책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엄마의 말공부, 엄마가 또 모르는 세 살의 심리 등)


애써 거부할 때를 빼면 나에게 육아서를 잡는다는 것은 '정신줄'을 잡는 일이다. 평생 그 책의 교훈대로 살기 위해서, 그 훈육법대로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정기적으로 경각심을 느끼고 마음을 한 순간이라도 다잡아보자는 목적이 크다. (예를 들어, 부모의 '욱'을 자주 보고 자란 아이는 그게 청소년기든 언제든 반드시 터진다는 부분을 읽고 잠깐이나마 두려움을 느끼는 것)
비록 그때뿐인 마음일지라도 아예 아무 다짐 없이 사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엄마의 말공부'처럼 중간에 실패해도 한 번이라도 그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사실 너무 많은 지침 속에 '아 좀 대충 살자 좀!' 하는 적도 매우 많다...)

'육아서, 꼭 읽어야 할까'에 정답은 없는 거 같다. 육아서 속에 답이 있지만 결국 답은 없기 때문이다. 책 속 한 줄이 나와 내 아이에게 무조건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절대적인 건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실로 육아의 문제는, 고작 8년밖에 안 됐는데도 이렇게나 다양하고 복잡한 것이다! (그나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진 육아서로 도움 근처나 갈 수 있지, 고학년부터는 그것도 힘들다는 소문이 있다..) 책은 그저 이 지난한 육아의 과정 속에 '보조도구' 정도로 자리하면 되지 않을까. 전반적으로 좋은 책이었어도 책 속 모든 내용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기도 하고 말이다. 가져갈 것은 가져가고 버릴 것은 버리는 자세도 필요할 것 같다.(위에 쓴 도 예외는 없다.) 로는 오랜만에 펼쳐보는 책을 두고 '내가 여기에 왜 줄을 쳐놨지?' 할 정도로  생각과 상황이 바뀌기도 하더라. 하긴 서천석 선생님도 아이를 키우기 전과 후, 본인이 쓴 '사랑의 매'에 대한 칼럼 내용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하물며 나라고.


오늘도 책에서 읽은 대로 훈육하지 못하고, 박혜란 작가님 말처럼 아이를 '손님'처럼 대하지 못 하고 있는 하루다. 그래도 매일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스쳐 지나가며 힘을 주는 육아서 속 한 구절이 분명히 있지 않을까?  양가감정을 아마 없애진 못할 것 같다.



'보통의 육아'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때로는 '옳은 소리'보다 '사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