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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Aug 05. 2019

초등학교 1학년의 첫 방학

'엄마 우리 무슨 놀이 할까'의 연속을 견뎌낼 것



우리 집 초딩의 방학이 시작됐다.

초등학생이 되고 처음 맞이한 여름방학. 나는 아이들을 병설유치원에 보내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긴 방학을 감히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다. 방학 동안 아이하고 무엇을 하고 어디에 갈지 막 설레는 마음으로 계획 짜는 엄마들이 아주 가끔 있던데 글쎄 나는 정말.. 모르겠네??!!



방과후로 배우는 올로로봇.

"동생들 없으니 굳이 방에 들어가서 안 해도 되고 넓은 거실 책상에 앉아서 니 마음껏 해봐~ 와 정말 신나겠다 짝짝짝"
방학 첫날이었던 어제, 호들갑을 떨어보았다. 아이는 토끼 만든 걸 두어 번 작동시켜보더니 말한다.

"그냥 엄마랑 놀래."

고...고...고오맙다 엄마랑 노노노ㄹ놀...놀...놀겠다고 해줘서....!!!





요즘 한창 '실뜨기'에도 빠져있다. 밥 먹으러 오라니까 손에 걸고 올 건 뭔데? 재주다 재주...

최근 실뜨기 노동을 계속 해대다가 현타가 온 애미는 누구라도 원망해볼 심산으로 '아들, 참 잘 배워왔네. 이거 어떤 친구가 가르쳐줬어?' 하고 물었다. 아들 왈,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단다... 중간놀이 시간에 실 나눠주고 다시 걷어가신다고 한다.
가..가..감사합니다 서서서선생님!


방학 최대 고민 중 하나는 단연 '점심 메뉴' 되시겠다. 일단 어제는 목살 한 장을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잘라줬다. 쌈장, 기름장, 김치 땡!(사진 속) 그 와중에, 나머지 식구들은 저녁에 목살을 먹어야 하니 얘는 저녁에 또 같은 걸 먹게 될 거고 그럼 징징거릴 거 같은데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는 나란 녀자...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힝.... 저녁도 이거야?"
"응. 방학이란 원래 그런 거란다..."


오늘은 교회에서 하는 여름성경학교 날인데, 거기서 아침도 주고 점심밥까지 준댄다. 몇 년째 성경학교 보내고 있지만 이번처럼 성경학교가 고마운 적은 또 처음이다.





점심을 먹은 후에도 놀이노동은 계속된다. 이번엔 '우노' 노동. 이미 고피쉬 카드 백 장으로 기억력 게임 두 판을 하고 난 뒤다. 자기가 지면 짜증내고 자기가 이기면 엄마한테 '일부러 져준 거 아니냐'며 따져 묻는 예민한 1학년과 함께 하는 놀이는 무얼 하든 아슬아슬 줄타기다. 어떤 전문가는 아이와 '놀아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함께 노는 것'이 되어야 서로 즐거운 시간이 된다고 하던데. 이번 생에 가능할지 모르겠는 과업이다.('엄마 우리 무슨 놀이 할까' 트라우마에 몇 년째 시달리고 있는 애미)

그래도 실뜨기 줄 하나에, 엄마랑 하는 카드 게임 한 두 개에 '방학이 참 좋은 거네' 하고 연거푸 말하는 아이를 보니, 깜깜하면서도(?) 참 다행이구나 싶다. 그야말로 1:1로 엄마를 독차지할 수 있어서 기뻐하는 게 눈에 보여 좀 짠하기도 하다. 이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안다. 대단한 곳에 가지 않아도, 큰돈 쓰지 않아도 좋아해 주니 고맙다.
(지금 아이가 여름성경학교에 가 있다. 그가 없는 동안은 이런 따뜻한 생각이 잘 드는데, 돌아와 붙어있으면서부터는 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으로 변신한다.)



다음 주 2박 3일 여행을 앞두고 아이가 물어본다.
"우리 반엔 1주일씩 여행 다녀오는 친구들도 많던데 우리는 왜 어디 가면 거의 두 밤만 자고 와?"

"한 달 다녀오는 친구도, 1주일 다녀오는 친구도, 우리처럼 이틀만 자고 오는 친구도, 그리고 아예 여행을 못 가는 친구도 많아. 모든 집은 저마다의 시간, 체력, 돈 이런 상황들이라는 게 있으니 여행을 가고 안 가고도, 다녀오는 기간도 다 다를 수밖에 없어."

이밖에도 아이는 '누구는 어디 갔대, 누구는 엄마랑 어디 갔다는데 나도 거기 가보고싶어' 라는 말을 종종 한다. 가끔 애들을 여기저기 바지런히 데리고 다니고 재밌는 경험을 많이 시켜줘야 좋은 엄마가 될 것 같은 강박이 나를 짓누른다. 그때마다 나는 내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를 아니까 너무 매이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을 한다. 마치 요리가 힘든 엄마가 반찬을 대충 사서 먹이고 시켜 먹이고 인스턴트로 먹이는 것처럼. 나도 그냥 내가 잘할 수 있는 다른 하나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 거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본다. 그 한 가지가 뭔지 잘 모르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넘으면 안 된다. 육아는 한두 달만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두 달만 하면 되는 일이라면 무리해도 된다.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p.40


방학 중에도 태권도와 방과후 덕에 그래도 매일 1시간 반씩은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니 그동안 잠깐이라도 내 할 일을 요령껏 해야겠다. 집안일하지 않고 혼밥을 하든, 드라마를 보든, 리본을 만들든, 책을 읽든, 누워 있든, 글을 쓰든 하고 싶은 거 짬짬이 하면서.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나한테 이토록 중요했는지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덧1)
성경학교에서 아이가 돌아왔다. 점심을 안 먹었댄다. 맛없어 보여서 아예 받지를 않았다네?
아....... 고운말 예쁜생각 고운말 예쁜생각....


덧2)
실뜨기 노동 후 올로로봇을 자기 혼자 하는데 10분 만에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아이씨 다 부셔야 돼!!! 완전 잘못했어으아아아아악 짜증나!!!"
아....... 고운말 예쁜생각 고운말 예쁜생각...


덧3)
큰 애가 돌아오기 전부터 쓰기 시작한 글이 셋 다 돌아오고도 한참 지난 지금에서야 마무리 지어졌다. 짬짬이 폰 꺼내기란 참... 밥 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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