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간의 글쓰기 수업이 끝났다. 매주 수요일을 기다렸다. 어느 화요일 저녁은 아이들 때문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아, 정말 이대로 지구 망해버려!!!!' 했다가, '아, 내일 수요일이야... 글쓰기 수업 가야 돼. 지구 지금 망하면 안 돼.' 하기도 했다. 수업을 신청해서 듣는 수강생에 불과한데 마치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았다. 다섯 달 동안 누가 어디 가냐고 물으면 글쓰기 수업 간다고 말하면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강사진 중 한 분의 책에 한창 빠져있던 나는, 우연히 포스터를 보고 이건 운명이라며 후다닥 신청을 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스무 명 정원에 열아홉 번째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의 두 선생님, 정아은 작가님과 은유 작가님. 두 분의 수업 스타일은 완전히 달랐다. 삶을 쏟아내는 글쓰기와 그걸 나누는 것이 정아은 작가님의 방식이었다면, 삶에 대한 평가와 글에 대한 평가는 다르게 이루어져야 한다며 글 자체에 더 객관적으로 접근했던 것이 은유 작가님의 방식이었다. 덕분에 은유 작가님의 수업 초반, 우리 모두는 '합평'을 하면서 서로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또르르...)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지나고 보니 이것도 참 탁월한 순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삶을 듣고 보듬고 나눈 후에, 글에 집중해서 나눈 평가와 대화들. 합평을 하면서 처음에는 뭐랄까, 내가 다른 사람의 글을 지적하는 느낌이 들어 말 한마디를 하기 힘들었다. 어느 날은 할 말이 있는 듯 없는 듯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보신 작가님이, '왜 말을 안 하세요!' 하시길래, 솔직하게 대답한 적도 있다. "저 따위가!!! 감히 J님 글에요??!!ㅋㅋㅋ"(실제로 다들 크크크 잔치) "사실 전 이렇게 생각했는데 방금 K님이 저렇다 말씀하시니 저 말이 맞는 거 같아 주눅도 드네요!!" 작가님은 '절대 주눅 들 필요 없어요!' 하셨지만 매시간마다 쉽지는 않았다. 사실 수강신청을 하고 걱정이 됐다. 당시 은유 작가님의 책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에 빠져 있어서인지, 안 그래도 만사 불편한 게 많아지고 있는 시기인데 강의까지 들으면서 더 예민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작가님들도 되게 냉소적이거나 무거운 분위기일 것 같았다.(특히 은유 작가님은 더..) 결론적으로, 모두 기우에 불과했다는 거. 두 분 모두 특유의 위트와 각자의 개성 있는 수업 방식으로 이전의 내 걱정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게 해 주었다. 매시간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낭독을 듣고 합평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근사한 밥집에서 잘 차려진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나온 기분이었다. 실제로 내 물리적 뱃속은 그 시간에 항상 공복이라, 집에 가서 부랴부랴 김에 밥 싸 먹거나 라면 끓여 먹고 하원 하러 달려갔던 적이 많다. 그렇지만 정신적으로는 포만감을 느꼈다. 글쓰기 수업이라고 꼭 비문을 다 잡아내겠다!! 고급 스킬을 터득하겠다!! 1등급의 결과물을 써내겠다!! 이런 건 아니니까. 애초부터 그걸 목표로 하지도 않았고 또 수업내용도 그렇지 않았다. 그게 아니어도 충분히 훌륭했던 나의 시간들. 뭐라도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 가장 큰 걸 남겨주었다.
어제는 '진짜' 마지막 모임 '출간기념회'가 있었다. 모두가 쓴 글을 몇 개씩 추려 엮은 '문집'이 탄생하는 기념할만한 날이다!! 다른 말로 쫑파티. 작가님들까지 모두가 한 자리에 모였다. 쌀쌀했지만 좋은 날씨, 도서관의 멋진 정원, 세심하게 준비한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세팅 하나하나까지. 수업이 끝날 때도 꽃 한 송이를 안겨 주더니 마지막까지 대접을 받는 느낌이었다. 밥도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고, 차 한 번 같이 타본 적 없고, 보이지 않는 거리를 확 좁혀주는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해본 적도 없는 사이인데 한 명 한 명이 아쉽다. 사람들하고 잘 친해지는 성격이 아닌데 매주 한 번씩 스무 번을 만나고, 서로의 글을 꾸준히 읽고 '엄마'로서의 삶을 나눈 그 시간을 정말 무시할 수 없나 보다. 정이 든다는 게 이런 걸까. 막 친한 건 전혀 아닌데, 헤어지는 게 아쉽다. 꼭 가까워질 만하면 그러더라. 이사 오기 전에도 그랬다. 마음이 많이 열린 후에 헤어지는 건 상대가 누구든 헛헛한 마음이 든다.
마지막 인터뷰 과제 때 나를 인터뷰했던 S는, 드라마나 예능 보는 걸로 스트레스를 푼다던 내가 생각났다며 읽던 책 한 페이지를 찍어 보내주었다. S는, 후속으로 추진하려는 독서모임이 좀 부담스러워서 못 끼겠다고 거절하는 나에게, 내 블로그를 둘러보니 왜 못 하겠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며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알 것 같다'는 그 한 마디가 뭐라고 이렇게 고마울 일인가. B는,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이 있다더니 세라터너의 '엄마 같지 않은 엄마'를 메모지에 적어 건네주었다. 'B님. 그 책 알아요? 많이들 모르던데 알아요? 저 그거 되게 재밌게 읽었어요ㅠㅠ' 했더니 깜짝 놀라는 B. 쫑파티 날에도 나에게 블로그 아닌 다른 글쓰기 플랫폼을 알려주면서 여기에 가입해 보라고 막 얘기하는데 아... B가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S와 B는 사실 첫인상이 좀 다가가기 어려웠던... 동료였다는 거.(역시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사람은 사귀어야 맛인가!!!)
언젠가 아이를 안고 '에고, 무거워..' 했을 때, 어머님이 자기 애는 무겁다 소리 하는 거 아니라고 말하신 적이 있다. 옛날분이 하는 옛날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젊은 형님이 그 말에 맞장구칠 때 난 진심 속으로 '저건 대체 뭔 소리지?' 했었다. 나는 물리적 무게의 무겁다 외에도 정신적으로 버겁다, 키우기 싫다, 엄마 하기 싫다, 이런 생각을 꽤 자주 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쟤가 복에 겨워 불평한다고 했고 감사할 줄 모른다고 나를 비난하거나 한심하게 보기도 했다. 내 이런 감정들이 '비정상'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해 준 작가님들과 동료들. 내가 이야기로 풀어낸 것을 들어주고 웃어주고 울어준 사람들. 헤어짐이 어떻게 아쉽지 않을 수 있을까.
기념회가 끝날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으로 왔다. 가족이 같이 온 몇몇 사람들을 보니, 오빠랑 아이들이 들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미쳤나 보다 왜 했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첫째의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스킬과 질질 짜면서 말하기 공격에 내 정신력은 순식간에 공격당했다. 차에 잠깐 있으라 할 걸... 나중에 남편이 말했다. 아까 사람들 사이에 있는 니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고. 그런 모습이 오랜만이었다고. 첫째 때문에 도서관으로 부른 걸 잠시 후회했었지만, 남편의 이 말이 밤이 된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결국! 후회하지 않는다. 가족을 부른 건 잘한 일이었고, 마지막까지 행복한 수업이었다.
20주간의 '엄마의 글쓰기' 수업이 나에게 남긴 다짐과 깨달음, 기억과 사람들. 잊을 만~~ 할 때 다시 읽고 상기시킬 수 있도록 한 자 한 자 적어 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