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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Jul 27. 2020

남편은 아내 하기 나름이라는 설교를 듣고

키다리 아저씨께 보내는 편지


[편지 1]
키다리 아저씨께

아저씨. 오늘은 모처럼 빨간 날이라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왔어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이곳에서 각자의 일을 보고 있네요. 활기 넘치는 모습을 보니 제 기분도 덩달아 좋아져요.
전 이사 온 동네에 잘 적응하는 중인데 최근에 좀 고민되는 일이 있었어요. 정착할 교회를 정하는 일이었죠. 거리두기가 완화되었을 때쯤 교회를 알아보다가 두 번 나갔던 교회에서 주일 설교를 듣고 저는 시험에 들고 말았죠.

그날 설교의 제목은 '남편은 아내 하기 나름입니다' 였어요. 아. 불길했어요. 쌍팔년도도 아니고 남편은 아내 하기 나름이라뇨... 가정의 달 5월에 이 무슨 망측한 제목인가 싶었죠. 그래도 제목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고 정신승리를 하면서 설교를 듣기 시작했어요.

목사님은 말했어요. 예전부터 며느리 하나 잘 들어오면 집안이 살고 여자 하나 잘못 들어오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다. 그건 여자를 귀하게 여겼다는 거다. 성공한 남자 뒤에는 늘 여자가 있고, 실패한 남자 뒤에도 여자가 있다. 그게 아내든 어머니든. 성경은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여자는 하나님이 보낸 사신 같은 거다. 여자의 도움을 그 정도 급으로 생각해야 한다. 여자 도움을 못 받으면 남자는 큰 일을 못한다. 남자는 여자 없이는 안식을 못 누린다.

뭐랄까 저는, 계속 중요하다, 귀하다, 급이 높다 라는 단어를 쓰면서 여자를 후려치기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마치 니가 착하니까 니가 형이니까 동생한테 양보하라고 어린아이 얼르고 달래는 느낌. 큰 일의 주체, 성공의 주체는 꼭 남자가 되어야 하나요? 아저씨도 남자니까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혼자 사시는 제 할아버지를 보면 남자 혼자 안식을 누리는 게 어렵다 생각은 되지만 그건 그 나이대 분들 이야기고 지금을 사는 남자들도 그러는 게 정상인가요? 여자는 생활에 도움이 돼야 하고 아내는 생활력이 강해야 한대요. 본인도 결혼 전엔 돈을 못 모았는데 결혼하고는 모았다면서요. 스스로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말이라 생각하면 제가 너무 삐딱한 걸까요? 남자든 여자든 더 알뜰한 사람이 주도적으로 하면 되는 거잖아요. 여자의 의미가 '생활'은 아닐 텐데요.

뭘 상의할 때도 남자에게 부족한 게 보이면 여자는 일단 온갖 지식과 경험을 동원해서 설명하되, 결정은 남편이 하게 하래요. 그럼 하나님이 그 가정을 책임지신대요. 물음표가 떴죠. 설득하고 함께 갈 생각이 없는 거예요. 이상한 결정이라도 존중하는 것 그게 진리래요. 남녀가 서로 대등한 존재라는 전제가 없는 것 같아요. 여자가 똑똑해, 여자가 천사야 하면서 결국은 하등한 존재, 보조자의 역할을 주는 느낌. 남자는 계속 부족하고 연약해도 되는 존재, 여자는 계속 천사고 현숙해야 하는 존재라니. 이게 정말 성경적인 건가요? 제가 목사님보다 성경을 잘 알리 없지만 제가 알고 믿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에요. 정말 이게 성경적인 건지를 확인하기 위해 성경공부를 시작할 용기는 없지만 말이에요...


내가 믿는 종교에 관해 안 좋은 경험담을 쓰는 것이 내 살 깎아먹기 같아 아저씨에게도 말하지 않고 깊이 감춰두려 했는데 누군가에게는 한번 토로하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썼어요. 제 글만 보고 기독교란 종교에 대해 오해하거나 함부로 말하진 않으셨으면 해요. 그냥 한 목사님의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결국 그 교회는 두 번 나간 걸로 끝이 났어요. 다음 교회에 대한 좋은 이야기는 곧 새로 편지할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편지 2]
키다리 아저씨께

아저씨. 이틀 연속 편지를 쓰게 되네요. 오늘 정말 황당한 일이 있었거든요. 제가 어린이집 교사로 일을 시작한 건 전에 말씀드렸죠? 오늘 원장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시 한 편을 나눠주셨어요. 이 원에선 매주 아이들과 같이 동시 한 편을 같이 읽거든요. 근데 시 좀 보실래요?

제목: 어른이 되면
내가 커서 어른 되면 어떻게 될까
아빠처럼 넥타이 매고 있을까
엄마처럼 행주치마 입고 있을까
라라라라 다 같이 흉내 내 보자
나는 엄마 나도 엄마
아빠 다녀오세요 호호
나는 아빠 나도 아빠
여보 여보 다녀왔소

제 주변에만 유독 쌍팔년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요? 행주치마라뇨. 귀여운 에이프런 두르고 니 앞에서 귀엽게 요리한다는 2002년의 명곡 이소은의 '키친'도 요즘 부르면 너무 오글거리는데. 그리고 대체 왜 엄마는 '해요체' 아빠는 '하오체'를 쓰는 거죠? 이런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이들 만화에서도 자주 드러나요. '헬로 카봇'에서도 주인공의 엄마 아빠를 보면 엄마만 존댓말을 쓰죠. 더 기가 막힌 건 영국에서 들여온 만화 '페파 피그'는 한국어로 번역될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엄마 돼지만 아빠 돼지에게 존댓말을 쓰더라고요. 다들 나이 많은 오빠랑 결혼을 하셨나... 항상 요리만 하고 그 평가에 울고 웃는 여자 수달 루피 정도는 가볍게 넘길 수 있어요 이제.


꼭 무슨 특별한 가부장적 교육이 있어야 문제인가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아이들 사고에 영향을 끼치는 언어와 이야기들이 더욱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무의식이라는 게 무서운 건데, 형식적으로는 성역할의 구분이 없다고 가르치면서 결국 생활 곳곳에서 보이는 건 전혀 그렇지가 않거든요. 일전에 말씀드린 목사님의 경우도 청소년 교육에 관심이 많다고 하시던데, 아이들도 목사님의 가치관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클 거고요. 이럴 때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문득 두려워져요.


이걸 원장님께 건의하는 게 맞을까요? 쓸데없이 예민한 여교사로 보일 테니 참아야 할까요? 제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고 어린이집에서 이런 걸 받아왔다면 과연 어린이집에 항의를 했을까요?
하긴, 아이들 만화에서 저런 의아한 점을 발견해도 어디 가서 말 못 하겠어요. 혼자 진지충이라고 베베꼬인 시선을 받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계속 발견하고 꺼내려고 노력해야겠죠. 저도 용기 없지만 세상은 아직 더더욱 아닌 것 같아서 혼란스러운 저녁이에요.




**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화자는 가상의 미혼 여성입니다. 어떤 책에서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쓴 편지처럼 글을 구성한 게 재미있어 보여 따라 썼어요. 설교를 들은 사람도, 그 시를 원에서 받은 엄마도 저 '아드리셋' 맞아요. ^^



아이고 머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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