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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Nov 12. 2020

분유는 죄가 없다, 엄마도 그렇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보다가 떠오른 모유수유의 기억



근데 이 언니가 모유를 주든 분유를 주든
무슨 상관인데 이렇게들 난리인 거예요?
그건 이 언니가 선택할 문제잖아요.




조리원 산모들의 현실적인 일상을 다룬 드라마 '산후조리원' 속 대사다. 초반 출산편을 지나니 모유수유 에피소드가 그려졌다. 리얼함에 깔깔 웃으며 보다가도 이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첫 아이 모유수유 때 가졌던 지옥 같은 마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흔히 조리원을 천국이라 하지만 모유수유를 하며 겪는 고충은 천국이란 단어를 의심하게 한다. 젖양이 많으면 그 힘들다는 젖몸살이 쉽게 온다. 양이 많아 몸고생을 심하게 한 친구는 젖양이 없는 사람들에게만 조리원이 천국일 거라고 했지만 사실 그건 모르는 소리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유 양이 적은 나 같은 사람들은 맘고생을 했다(심지어 양이 적다고 가슴이 안 아픈 것도 아니었다). 80밀리, 100밀리씩 한 끼로 충분한 양의 모유를 유축해놓는 사람들 사이에서, 겨우 젖병 바닥을 가린 10밀리, 20밀리 간식을 신생아실에 갖다 주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학부모 모임에선 성적 높은 애 엄마가 은근한 승리자가 된다면 신생아 엄마가 모인 그곳에선 모유양이 많은 사람이 암묵적인 승자가 됐다. 모유의 장점에 대한 일장연설과 강요는 옵션 아니 필수였고, 모유 먹이기를 게을리하거나 분유를 자주 먹이면 무슨 의미의 눈빛인지 자주 주목을 받았다. 젖양이 적어 분유 보충을 자주 요구하는 나에게 신생아실 선생님은 "별이 엄마는 분유를 너무 많이 먹인다." 또는 "별이는 또 분유 보충?" 하고 말했고, 젖이 많이 도는 옆방 엄마들은 적은 모유와 씨름하는 나에게 "왜 그러지? 이쯤 되면 잘 도는데. 그러다가 완모(완전한 모유 수유)하기도 해요."라며 완모를 향한 격려를 했다. 그들은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만 나는 왠지 신생아실에 눈치가 보였고 모유를 쭉쭉 먹이는 엄마들 앞에 작아졌다. 너무 애쓰지 말라고,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분유로 갈아타도 문제없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그러면서 분유 판촉 수업을 하는 건 신기한 일이다).

내가 분유를 먹일 때 누구도 나에게 "너 나빠!"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여태 보고 듣고 배운 상식, 이를테면 모유의 영양학적 우수성이나 초유의 중요성 같은 걸 떠올리면 나만 아기에게 좋은 것을 못 주고 있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라는 대로 했지만 젖양은 좀처럼 늘지 않았고, 선생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나의 의지 문제로 몰아가거나, 애초부터 흡착식 가슴 조직이라 양이 적다거나 하는 일관성 없는 말들로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안 그래도 호르몬의 노예가 돼있던 차, 나는 남들 같지 않은 내 몸뚱이가 미웠고 분유로 배를 채우는 아기를 창 너머로 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을 쏟았다. 스트레스와 반비례하는 모유양은 마음이 힘들수록 줄어만 갔고, 퇴원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가족들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좀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그렇게 난 100일까지 괴롭고 모호하게 혼합수유를 하다가 끝내 모유수유를 포기했다.

'완분(완전한 분유 수유)'의 길을 걷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어야 했다. 그건 분유를 살 돈이 없어서도 아니었고 젖병을 씻는 게 힘들어서도 아니었다. 모유를 먹이지 않으면 어떻게든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 거라는, 모성을 저버린 거라는 무언의 압박(아니다, 여기저기서 첨언이 많았으니 무언이라는 건 틀렸다)과 눈치를 스스로 이겨내야 했다. 잊을만하면 모유 먹이냐는 질문에, 아니라 대답하면 왜 아니냐, 언제까지 먹였나 하는 상세 질문들이 뒤를 이었다. 지금이라면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아니까 아무렇지 않겠지만(실제로 셋째 출산을 하고서야 깨달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가 된 20대 후반의 나는 완분을 결심하고 나서도 저런 질문들을 당연한 걸로 여기며 자주 속상해했다.




분유를 먹여 키운 그 아이가 지금은 아홉 살이다. 후회는 없다. 9년 동안 아이를 키우며 보니 모유보다 더 열심히 줘야 할 것들이 널려 있었다. 따뜻한 눈빛, 지지와 격려, 공감과 이해 같은 것들. 모유 신화가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애 낳은 몸매 맞아?' 하는 여배우 기사들도 그렇지만, '모유수유해야 아이가 건강하다'는 논조의 기사들도 이제 그만 나와야 할 때다. 설령 그 연구가 사실이더라도(키워보니 사실인지도 잘 모르겠다. 육아 10년 차 아직은 그렇다.) 사람마다 몸이 다르고 처한 상황과 이유(건강, 체력, 직장, 아기의 모유 거부, 자유로운 외출 선호 등 모든 것)가 다 다르니까. 모유 먹은 애는 순하고 분유 먹은 애는 소젖을 먹어 폭력적이라는 등의 밑도 끝도 없는 이분법적 믿음이 더는 단단해지지 않아야 한다. 세상에 100퍼센트 완벽한 선택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자신의 아이를 향한 마음은 진심일 테니 어떤 선택이든 존중받아야 한다.
35년 전 나의 엄마는 애한테 소젖을 먹인다고 할머니한테 싫은 소릴 들었다. 9년 전의 나 또한 "별이 완모 했어?" 하며 대놓고 내 몸을 위아래로 훑는 옆집 엄마의 시선을 불쾌하지만 저항 없이 감당했다. 분유수유를 이유로 누군가를 구박하는 사람도, 묻는 사람도, 조언을 가장한 훈수를 두는 사람도, 싫은 소리와 눈빛을 억지로 감당하는 사람도 이제는 모두 없었으면 좋겠다.




분유는 죄가 없다 엄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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