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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Oct 21. 2020

집안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아들

나는 아들에게 일일이 말할 수 없었다



잠들기 전, 아빠랑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아홉 살 아들이 말한다.
"이것저것 다 어렵네. 나 그냥 집안일하는 사람이나 돼야겠다."

알아듣지도 못할 아이한테 굳이 말했다.
"근데 집안일하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뭔지 알아? 무보수. 돈을 받지 않는 거야. 정신줄 제대로 잡고 있지 않으면, 적더라도 돈 받던 일 할 걸 그랬나,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후회 비슷한 게 불쑥불쑥 올라오기도 하고. 물론 엄마가 선택한 거지만 그때의 최선이었을 뿐, 자기 선택이라고 해서 이 일이 마냥 쉽거나 좋기만 한 건 아니야..."




집에서 너랑 카트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읽고 싶은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는 내가 너에겐 노는 사람으로 보였을 테지만 사실 니가 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우리집이 이렇게 유지되는 것과 아빠가 별 걱정 없이 출근을 할 수 있는 것은 비임금 노동자인 내가 집을 잘 돌보기 때문이라고,
청소기를 돌리고, 이불을 털어 접고, 그제 사둔 대파가 말라가는 게 생각나서 하던 설거지를 멈추고 대파 소분을 부랴부랴 하는 정신없는 순간들이 매일 이어진다는 것을, 한 끼 식사를 준비하고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오는 공지를 챙겨 읽고 필요한 걸 기억하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희한하게 뇌는 쉬지 못한다는 것을,
초코파이 부스러기를 치우는 것 같은 사소한 수발을 수시로 들면서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을 경쟁적으로 해대는 너희들에게 귀와 입을 열어 일일이 대꾸를 하는 일이 쉬운 게 아니라고, 남의 집 집안일을 해주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분들이 시간당 얼마를 받고 일하며 엄마가 하는 일을 돈으로 환산하면 그게 얼마쯤 되는지를,
이 말들이 다 사실임에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버는 일을 안 한다는 사실이 한 사람의 자존감을 얼마나 쉽게 떨어뜨리는지를, 그 돈으로 우리 가족에 맞는 계획을 세우고 일상이 탈 없이 굴러가게 하기 위해 내가 움직이는 일들이 돈을 벌어오는 일 자체보다 훨 하찮게 여겨지는 것이 슬프다는 것을,
나는 내 감정과 체력을 아껴가며 집안일하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큰 정성을 쏟지 않고 일할 뿐이라고, 아무도 없는 시간은 최대한 나를 위한 시간으로 써보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에 때론 쌓여있는 빨랫감과 정리되지 않은 장난감을 보며 너는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겠지만 사실 내 일은 마른 옷을 개고 거실을 치우는 일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굳이 아이에게 말하지 않았고,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나는 가끔 할 말이 없어진다.
남편이 도와주잖아, 남편이 야근 자주 안 하잖아, 막내까지 어린이집 가잖아, 남편 아침 차려주는 것도 아니잖아, 집 그렇게 깨끗하게 해놓고 사는 것도 아니잖아, 건조기도 무선 청소기도 있잖아, 아이들 밥을 근사하게 차리는 것도 아니잖아, 회사 다니면 자기 시간도 못 가지는데 넌 어떻게든 갖잖아 하는 말들 앞에(타인의 말이든 내 마음속 소리든) 나는 쉽게 팔자 좋은 여자가 되고 집에서 노는 엄마가 된다. 노는 게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하는 일이 없는 것 같고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전업주부로 산 내 엄마에게서 이런 말을 듣고 살았기 때문일까, 훌륭한 학벌(나 이정도인데 집에 있는 거야 자신할 수 있을 정도의) 또는 남편과 비슷한 월급을 받는 괜찮은 직업을 애초부터 갖지 못했었다는 자격지심의 연장선일까.

돈을 벌어야 생산적인 일로 인정되는 세상에서 비임금 노동자인 '집안일하는 사람'으로 당당하게 사는 것이 웬만한 자존감으로는 쉽지 않다고 생각은 했지만, 자식(특히 아들)의 시선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갈수록 모르겠다. 강제 집콕의 시기, 집안일에 매여있는 엄마가 되지 말잔 생각으로 뜨개질을 하고 책을 읽고 글쓰기 숙제를 했다.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고 조금씩 해나가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아이 눈에 비치는 현실은 베짱이 같은 엄마였던 걸까. 머리핀을 만들고 수세미를 만드는 일은 노는 거 비슷하게 취급받지만, 그걸 판매해 이익을 남기는 행위라면 아마 아이에게 다르게 대접받을 것이다. 집안일은 엄마만의 몫이 아니라고 말하며 종종 빨래 개는 걸 시키기도 했지만 이제 누구의 몫을 떠나 그 일의 가치와 의미까지 보여줘야 한다니. 시간이 지난다고 과연 이 아들들이 알게 될까? 나는 어떤 식으로 생색을 내고 살아야할지, 생색을 내려면 스스로 내 일을 평가절하 하는 이 옳지 못한 생각에서 어나오는 게 먼저인데. 가뜩이나 못 쉬는 뇌가 더 바빠진다.






그날 밤 남편은, "아니야 집안일이 얼마나 어려운데,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부랴부랴 아이에게 둘러댔지만 나는 남편의 속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본인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함께 살며 은연중에 비쳤던 무의식은 속일 수 없다. 편한 순간도 있고 기계 덕을 보는 것도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집안일하는 사람이 기계에 기대어, 아이이 잘 노는 찰나의 순간에 기대어 편안한 매일을 보내는 건 아니다. 이렇게 되뇌어 보지만 그날 밤은 모든 말이 다 구질구질한 변명 같고, 아이 옆에 웅크리고 누운 내 모습이 한낱 바닥에 눌어붙은 초코파이 부스러기처럼 느껴지는 밤이었다.





칙칙한 글엔 밝은 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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