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아드리셋 Jun 04. 2021

내가 유난히 육아를 버거워하는 이유

성격 이상하다는 말을 정성스럽게 풀어쓴 글인가




아이 키우는 일이 자주 버겁다. 물론 쉽게 느끼는 부모는 거의 없겠지만 나는 정말로 다른 사람보다 내가 유난히 육아에 취약하다고 느끼는 순간을 자주 만난다. 남자아이 세 명이 날뛰니 안 힘들 수 없겠지, 체력이 약하니 힘들겠지 라는 가장 중요하고도 당연하며 표면적인 이유 말고 좀 더 개인적인, 내가 어느 포인트에서 자꾸 뚜껑이 열리고 맥이 빠지고 여유가 없어지는지 생각하니 몇 가지가 떠올랐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지만 사실 지금은 적(자식이 적이라니 좀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도 잘 모르겠고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자기 객관화를 좀 더 해보자며. 각 잡고 쓰려면 한 열 가지도 쓸 거 같지만 그러고 나면 내 성격 이상한단 말을 열 파트로 나눠서 한 거 같이 느껴질까 봐 그냥 줄고...





1. 예민한 청각

어릴 땐 엄마 아빠 둘이 소곤소곤 나누는 얘기도 너무 잘 들려서 끼어들다가 소머즈냐는 얘길 많이 들었다(70년대 외화 주인공이라 정작 나는 소머즈가 뭔지도 잘 모름). 첫째가 아주 어렸을 땐 윗집의 청소기 소리, 바깥의 고물 판매 트럭의 소리까지 모든 게 귀에 거슬려 자주 두통이 일었다. 지금이야 애가 셋이 되었고 우리집 소리에 묻혀 기타 잡소리는 아무것도 안 들리니까(이것은 장점인가 단점인가) 무뎌진 듯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 가나(이제 내 집을 향함..).

아이들과 지내는 것은 매일이 소리와의 전쟁이다. 신생아의 울음소리로 시작한 각종 버라이어티한 소리는 종류만 살짝씩 바꾸어 점점 심각해졌다. 징징거리는 소리, 목놓아 우는 소리(=생떼 피우는 소리), 애가 둘 이상 된 후로는 서로 싸우는 소리, 꽥꽥 고함치는 소리, 벌소리를 주문처럼 외우는 반복적인 소리, 우다다다 도망가는 소리, 도망가서 문 쾅 닫는 소리. 엄마 엄마 엄마 세 명이 돌아가면서 부르는 돌림엄마노래와, 빨리 뭘 해달라고 조르고 요구하는 소리는 어느 정도의 무시가 필요한데도 나는 너무 다 들으면서 지쳐간다. 지독한 비염과 후비루로 1분마다 켁켁 킁킁 컥컥하는 어쩔 수 없는 소리까지.

가끔 남편한테 묻는다. 넌 이 소리가 안 들리니? 별 생각이 없다는 남편을 보며 내가 청각에 예민한 사람이란 걸 느낀다. 시끄러운 소리 앞에 아이의 안부를 묻기보다 미간이 먼저 반응한다. 라디오를 트는 것조차도 시끄럽다 여기는 친정엄마와 말 수 없는 아빠. 단란한 세 식구로 오래 살아왔으니 이 소음들이 괴로운 게 영 이상한 일도 아닐 거다.



2. 공간 침범은 못 참지

내 공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리만치 다른 사람이 내 물건을(물건과 공간은 조금 다르지만 나의 범주에 놓여있는 것이란 의미로) 만지는 게 싫었다. 사촌 동생들이 우리집에 놀러 와 내 방에서 난리를 피우는 게 싫어서 문을 잠가놓기도 했고, 내 필통이나 가방을 뒤적뒤적하고 서랍을 구석구석 열어보는 친구한테 "그만 좀 봐!" 하며 싫은 티를 팍팍 냈던 그때의 감정이 아직도 살아있다. 물론 조금씩 커가면서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문구류를 공유하고 그랬지만 여전히 체육복을 빌려주는 일 같은 건 싫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집에 놀러 온 손님들이 책장에서 책을 꺼내 본다거나 방을 슬쩍 둘러본다고 기분이 상하진 않지만 이건 그들이 서랍이나 옷장을 뒤지는 어린애 같은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일 거고, 그래서 조카들이나 아이 친구들이 몇 명 올 경우엔 거실은 자유롭게 개방해도(?) 안방 문은 잠가놓거나 하는 방법으로 내 공간을 알아서 지키는 편이다.

문제는 아이가 기어 다니고 서고 올라가고 하면서, 아이를 지키는 것도 그렇지만 내 물건을 지키는 것이 지상 최대의 미션이 되었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화장대나 책상 위의 내 물건을 어디까지 높이 올려야 하나, 천장에 매달아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아이의 안전이 우선순위긴 했지만 물건 입장에서도 생각해보면... 계속 해 먹히거나 해먹힐 위험에 처하는 그런 일이었다. 망가지는 것 자체보단 필요한 물건을 내가 원하는 곳에 놓고 편리하게 쓰지 못하는 현실이 스트레스다. 아이가 다섯 살, 일곱 살인 지금도 그렇다. 식탁 내 자리에 올려놓은 각종 자료에서 낙서를 발견했을 때, 숨겨둔 내 플러스펜의 펜촉이 망가져 있을 때, 취향껏 새로 장만한 식탁보를 손으로 쭉쭉 갈기갈기 찢어놓았을 때, 찜질하려고 내놓은 팥팩이 냉동실 구석에 쳐박혀있을 때 나는 귀엽기보다는 한숨이 먼저 난다. 이것도 다 한때란 말로 커버하기는 아직 내공이 덜 쌓였나 보다.



3. 변수에 취약

융통성 없다는 것의 다른 말 정도 될까. 위기 대처능력이 거의 빵점에 가까운데, 계획하고 예상했던 일에서 벗어나면 더 잘 헤쳐나갈 방안을 궁리하는 게 아니라 퍽 쉽게 좌절하는 편이다. 계획적이고 짜 놓은 것에 맞춰 딱딱 생활하는 스타일이어서는 절대 아니고 오히려 대충대충인 편인데도 그렇다. 뭔가 생각하는 대로 진행이 안 되면 숨이 턱 막힌다. 회사에서 일할 때도 그랬고(발동동 안절부절)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챙기면서도 그렇다. 그냥 이렇게 하지 뭐! 아니면 말고! 이런 자세가 필요한데 유연하지가 않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거의 변수의 종합 선물세트 같은 일이 아닌가. 밤에 갑자기 열이 오르는 것은 가끔이라 쳐도 밖에서 놀다가 갑자기 쉬가 마렵다거나, 어딜 시간 맞춰 가야 하는데 갑자기 안 가겠다고 떼를 쓴다거나, 눕지 말아야 할 곳에서 안방처럼 드러눕는다거나, 할 일이 있는데 잘 보던 뽀로로도 안 통하고 갑자기 내 종아리에 들러붙어 있다거나. 그래서 그 흔한 문화센터도 다니지 않았고 근근이 하던 재택 아르바이트도 그만두었던 시절이 있다. 아이의 심사가 갑자기 뒤틀리는  지금도 겁나는 일이다. 해가 지날수록 아이는 내가 육체적으로 감당해야 할 변수보다는 어떤 정신적이고도 어려운 또 다른 종류의 변수들로 나를 웅덩이 한가운데 앉혀놓겠지.





대충 내 상태가 이러한데 육아는 결국 이 세 가지의 총집합일 뿐이고... 아이들은 원래 시끄, 육아는 원래 육자의 시간과 공간을 내주는 일이며, 아이들은 원래 변수 덩어리니까(어쩌면 인생이 변수 투성이인 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결국 나의 성질 이상함과 참을성 없음을 구구절절 변명한 것에 그치는 거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버거움의 시작점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차이가 있지 않을까 약간 기대하며... 이렇게 글 한 번 쓰 걸로 자기 내 청각이 둔해지고 내 공간을 너그럽게 허용하는 사람으로, 변수에 능한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시끄러운 시간도 잠깐이다 주문 걸면서, 죽고 사는 일 아니면 대충 넘어가라고 스스로 유연한 사람인 척  존버(존중하며 버티는 것..)하는 것 말곤 별 수가 있나. 쩌면 육아 하기에는 오감이 좀 둔감한 편이(육감은 뛰어난 편이?) 나으려나 싶다가도, 아니지 예민한 부분을 적절할 때 잘 쓰면 또 더 좋을지 누가 알아 싶기도 하다.

(이 글을 쓸 수 있는)아무도 내 범주를 침범하지 않는 고요한 시간을 집중해서 누린 후 에너지를 차곡쌓아 좋은 마음(?)으로 하원길에 나서는 것이(놀이터에서 또 어떤 변수를 맞닥뜨릴진 아무도 모르지만) 일단 오늘 오후의 미션이. 눈 앞의 것부터 잘 클리어하보면 육아가 덜 버거운 날도 오..오..오겠지!

 



사진인데 시끄럽다








        

매거진의 이전글 [특별대담] 당신은 '식세기'를 사용하십니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