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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Sep 15. 2021

애 많은 엄마의 하루 한 장면 시리즈 <7>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한 기록


목차

1. 요가정신

2. 멕이는 사람

3. 어떤 순간

4. 엄마

5. ASMR

6. 태풍이 오기 전

7. 무의식






#1. 요가 정신

홈요가를 시작했다. 하루 30분 하는데 사실 따라하기 쉬운 스트레칭 수준이다. 이 짧은 영상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요가 정신이 있다(니가 요가에 대해 뭘 안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요가를 즐겨하는 친구가 쓴 요가에 대한 글을 자주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세뇌된 걸까? 뭐랄까, 사는 방법을 일러주는 것 같았다.

요가는 되는 만큼만 하라고 한다. 무리하지 말라고. 뻗을 수 있는 만큼만, 할 수 있는 만큼만. 서두르지 말라고한다. 아무리 쉬운 동작, 아는 동작이라도 앞서 나가지 말고 천천히 따라 하라고 한다.

영상을 마치기 전 그냥 누워서 숨만 쉬는 것도('사바아사나로 호흡 하기'를 이렇게 저렴하게 표현하다니), 별 거 아닌 거 같아서 영상을 끄고 나가고 싶은데 되게 중요한 것처럼 정성을 들여 가르쳐준다. 여유롭게, 진짜 쉬는 몸을 만들어주는 느낌으로.

친구는 내게, 요가는 삶과 비슷하다고 자주 말했다. 고작 1주일이지만 친구 말의 의미를 아주 조금 알 것도 같다. 살면서 필요한 자세를 조곤조곤 얘기해주는 운동인가? 그래서 수련이라고 하나? 되는 만큼만 하기, 서두르지 않기, 멈추고 여유 갖기.



#2. 맥이는 사람

한 번 쓴 컵은 절대 입에 안 대고 맨날 새 컵 꺼내 쓰는 9세, 뭐조금만 묻었다 싶으면 휴지도 옷도 거부하고 화장실로 직행해 물로 씻어내6세. 반복되는 깔끔떨기에 지쳐 얘네 쌍으로 왜 이러냐고 남편한테 욕 비슷한 카톡을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그러게 이상해. 부모 중에 깔끔한 사람이 없는데."

...오빠 나 맥이는 거지?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들이 커다란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게 자주 보여 그런가. 좀처럼 집 밖에 안 나가는 남편이 큰 맘을 먹었다. 첫째 두 발 자전거 교육을 좀 시키겠다는 거다. 둘이 나간 후, 궁금해서 좀 어떤지 카톡을 보냈는데 이런 답장이 왔다.

"너 운전 가르치는 거보다 만 배 짜증."

...오빠 나 맥이는 거지?





#3. 어떤 순간

첫째와 셋째는 결이 비슷하다. 세돌이 코앞인 막내는 요즘 재촉을 그렇게 한다. 밥을 준비하는 잠깐의 틈을 못 참고 식탁의자에 앉아 징징징징 다. "지금 준비하고 있어, 거의 다 했어, 여기 밥 보이지?" 하며 보여줘도 참지 못한다. 그럴 때면 나는 첫째를 키우던 내 신혼집의 부엌으로 돌아간다. 그때 그 부엌에서 느꼈던 기분이 온몸에 퍼다. 부엌의 구조와 빨간 하이체어에 앉아 울며 조르는 첫째, 다 됐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며 나 또한 울 것 같은 마음으로 자주색 쿠쿠밭솥에서 밥을 퍼나르던 순간이 생생히 떠오른다.

7개월 때의 막내는 잠깐 동안의 나의 부재를 못 견디고 내가 가는 곳곳마다 울면서 쫓아 기어다녔었는데, 그때 역시 첫째7개월 때로 돌아갔다. 그 집의 안방 화장대, 내 종아리를 붙잡고 우는 아기, 집에서 견디는 게 너무 힘들어서 좀 나가보려고 선크림 하나 바르겠다는데 그거 하나 편히 바를 시간을 안 주냐며 스툴에 앉아 울먹거리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셋째라고 특별히 내가 취약한 부분에 여유로워지고 잘 대처하고 그런 것도 아닌가 보다. 나는 변하지 않았고 만약 그때보다 대충 넘어가는 횟수가 많다면 그건 여유와 관록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 상황에 집중하고 일일이 대꾸하고 성질 낼 시간과 여력이 그때보다 적기 때문일 거다.



#4. 엄마

나중에야 알았다. 결혼을 하고 내가 없는 빈 방을 바라보며 엄마가 허전함에 울었다는 .

엄마가 허전하겠단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아빠도 지방근무로 집에 없었고 딸은 나 하나였으니 빈집은 더욱 텅 비어 보였을 거다. 그렇지만 여러 번 눈물이 나더라는 이야기를 엄마에게서 직접 듣고 나니, 나는 그때 엄마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고작 그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었다. 극복은 엄마의 몫이라지만 그래도 전화 한 번 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텐데 많이 무심했다. 자식의 사랑은 영원히 부모의 사랑에 미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빈 방에 지금은 뚱뚱한 김치냉장고와 엄마가 쓸 수 있는 작은 책상이 놓여있다. 다행이다. 오늘은 엄마가 거기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몇 권 주문해서 보내야지.



#5. ASMR

모두 자는 밤에 거실 쇼파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힐링 asmr 모음'이란 제목을 단 포스팅이 눈에 띄었다. 뭘까? 눌러보고 싶었는데 이내 누를 필요가 없어졌다. 베란다 쪽에서 들려오는 진짜 asmr 때문에.

요즘 밤에 창을 열어놓으면 선선한 바람만 들어오는 게 아니다. 가을이라고 귀뚜라미,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찌르르 같이 들어온다. 여름 낮 매미 떼 소리는 귀 따갑다고 느낀 적이 많은데, 가을밤 15층에서 듣는 귀뚜라미 소리는 묘하게 고요하다. 잔잔한 배경음악 틀어놓은, 딱 그 정도의 느낌.

아무도 없는 거실에 누워 듣는 풀벌레 소리가 좋다. 굳이 asmr 모음집을 클릭하지 않았고, 창을 닫지 않았다.

(들어오는 건 귀뚜라미 '소리'만 허용한다. 귀뚜라미 실물 들어오면 자비는 없어...)



#6. 태풍이 오기 전

바람이 세게 분다.

베란다 창에 우두커니 서서 밖을 보고 있자니

눈앞에 뭐가 날린다.

초록빛 가벼운 어떤 게

단풍나무 씨처럼 팽그르르 돌

너울너울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어어, 만 원 같은데?

창에 이마를 대고

미간을 찌푸리고 자세히 째려본다.

어, 만원... 어어어어? 나뭇잎이네.

너 돈 필요하니!!



#7. 무의식

적당한 방과후 수업과 태권도 학원, 동네 친구들과의 놀이터 흙파기 시간이 있었던 때, 아이와 나 사이가 더 돈독했던 것 같다. 나도 나지만 아이도 에너지를 즐겁게 분출하지 못하니 그걸 다 만만한 동생들한테 푸나 싶기도 하고. 우리 관계가 특별히 나빠진 건 아니지만 내 눈빛, 말투, 표정에 매번 자신이 없다.

오히려 말은 애를 써서 의식적으로 참으면 되는데(물론 잘 참지 않), 무의식이 정말 무서운 거라 눈빛이나 표정 같은 건 숨기기가 힘들다. 찰나에 어나고 그 순간을 귀신같이 느끼고 잡아내는 아이들.

잦은 휴교와 휴원. 가까이 있으면 서로를 더 잘 알아갈 수도 있고 함께 뭐라도 하나 더 하며 돈독해질 줄 알았지만(물론 내가 안 건 아니고 전문가들 또는 훌륭한 엄마들이), 위기에 봉착했다. 권태기인가. 나도 모르게 언뜻언뜻 보이는 엄마의 무의식에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무의식 눈빛은 캔디크러쉬로 상쇄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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