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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Mar 13. 2022

오늘도 나는 너를 모른다는 겸허함으로

아이들은 자주 내 예상과 다르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물론 자체적으로 말이다). 3시 반, 3시 40분, 50분... 아침부터 가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데려와서 간식도 주고 놀이터도 가야겠다고 머리는 생각하지만, 머리에서 심장까지, 머리에서 발까지의 거리가 그렇게 먼 줄 몰랐네.

아, 둘 다 오면 끝장이다, 또 손 안 씻고 도망가겠지, 둘이 싸우고 난리를 칠 게 뻔한데 빨리 데려와서 뭐 하냐. 심장 벌렁거리기 시작하고, 발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보다도 무거워진다. 하원시간 자꾸 미루는 거,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어떻게 하면 5분이라도 늦게 나갈까를 고민하며, 아  못났, 애들한테 미안하네, 우리 애들 집에 빨리 가는 친구들 보면 부러워할 텐데, 엄마가 1등으로 오면 좋아할 텐데... 하고 생각했다.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 기다렸지? 오늘 늦게 와서 미안해. 내일은 더 빨리 올게!


일곱 살이 말한다.

아닌데? 엄마 때문에 포켓몬카드 놀이 다 못하고 그냥 왔어  내일은 더더 늦게 와 줘.


다섯 살도 말한다.

아닌데? 친구들이 먼저 가서 색종이 남은 거 다 내 거 돼서 좋았는데?


뭐지... 저번엔 1등으로 데리러 와달라며. 그래서 잔뜩 미안해했더니 왜들 이러는 건데...라고 생각할 필요도 사실 없다. 서른일곱짤도 하루에 마음이 물두 번쯤 바뀌는 걸? 그래. 괜히 미안해하고 자책했어. 이번에도 내 예상은 틀렸다. 아이들은 자주 내 생각 밖에 있다.






그 7세가 지난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픽드랍의 향연인 3월 초... 짧고 쉬운 등교길이지만 아이에게 하나하나 일러주며 혼자 다닐 날을 준비시키고 있다.


할 수 있지! 우리 아들 언제나 스스로 해내는 걸, 혼자 무가 하는 걸 좋아하잖아. 혼자 가는 것도 해보고 싶지? 세 아들 중에 가장 뭐랄까 독립심이랄까 그런 거 강하잖아. 조금만 엄마랑 연습하면 얼마나 혼자 잘할까?


아니? 나 학교 혼자 안 갈 건데? 절대 안 가, 못 가.


이.. 이.. 이상하다. 얘가 이럴 애가 아닌데? 항상 혼자 뭘 못 해서 안달이고, 형아처럼 못해서 안달인 아이인데 얘가 왜 이러지. 보기 좋게 또 틀린 채 속으로, 으음 이상하다 이건 얘답지 않... 하면 어디선가 K-드라마 대사 한 줄이 환청처럼 들려다.


나다운 게 뭔데!!!!


 그러니까 말야. 너다운 게 뭐길래 나는 계속 내 멋대로 생각하는 걸까? 예쁜 언어, 뜻밖의 말, 감동적인 멘트로 내 귀에 캔디 역할을 하는 아이니까, 학교 입성 소감이라든지 새로운 생활에 대한 것들을 조곤조곤 말해줄 거라고 혼자 또 김칫국 두 사발을 들이켜놓고는, 오늘 어땠냔 질문에 "몰라" "없어" 대답하는 무심함에 혼자 서운해져 버리는 이 김칫국 러버를 어쩌면 좋?


아, 여느 남자애들하고 다 똑같구나, 뭐 들으려는 건 포기해 그냥. 세상만사 노뉴스 이즈 굿뉴스 아니겠어? 아들만 셋 키우면서 뭘 바라냐고 자포자기의 늪에 빠질 때쯤 슬금슬금 말을 걸어오는 아이.


교가 배웠는데 교가 악보 같은 거 뽑아줘!

식당에서 밥 먹는데 옆에 애가 내 다리를 쳤어!

늘은 운동장도 돌아봤어!


밀당이 따로 없네.

섬세하게 지켜보기야 해야겠지만, 얘가 앞으로 학교생활 나쁜 일 이상한 일 아무것도 안 말하면 어쩌지 하며 일어나지않은 미래를 그면서, 얘가 이렇게 껌딱지 같은 애가 아닌데! 얘가 이렇게 아무 말이 없는 애가 아닌데! 아이를 단정 지으면서 불안해 할 필요 없는데. 그저 자기가 기억날 때, 말하고 싶을 때를 기다려주고 최소한의 관심을 보여주면 되는 건데. 내가 할 일은 내 마음대로 판단하지 않는 것, 서두르지 않는 것, 오늘도 나는 내 자식을 다 모른다는 자세로 그냥 겸허히 기다리는 것뿐이다.


자식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 부모들의 착각이라고 <스카이 캐슬>의 김주영 스앵님은 말했. 일곱 살의 너도 열일곱 살의 너, 언제나 나는 너를 다 알지 못하겠지. 다 모른다는 것, 아이를 키우면서 방심하면 안 되는 이유, 동시에 안심해도 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은지원을 바라보는 강호동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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