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나는 극지방 곤충 연구원, 정순호다.
하얀 눈과 얼음으로 둘러싸인 연구소에서 일한다.
알래스카 북부.
12월의 태양은 몇 주 동안 떠오르지 않았다.
이곳의 밤은 하루가 아니라 계절이었다.
기온은 영하 30도 아래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연구소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전력에 의존하고 있었다.
건물 외벽을 따라
본 전력선과 비상 전력선이 분리되어 깔려 있었다.
혹한 속 정전은 곧 사망을 의미했기에
이곳의 전력은 항상 이원화되어 있었다.
안내 방송이 울렸다.
"연말 결과보고 기간을 맞아 외부 연구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습니다.
외부 송출용 장비와 실험 장비는 분리된 전력망으로 운영 중이니 안전 수칙을 준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저녁 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방송은 친절했지만
말투는 연구소의 공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가족도 친구도 만날 수 없는 극지방 연구소에서
크리스마스는 업무의 연장에 불과했다.
침묵이 공간을 채웠다.
김 박사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상하지 않아? 이 온도에서 개미가 살아 있다는 게."
나는 현미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리판 위, 얼음 결정 사이에서
붉은 점들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세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처럼 빛나는 붉은 점들 -
우리는 그것을 '크리스마스트리 잎개미'라고 불렀다.
연구소 내부의 조명은 늘 통제된다.
극야 속에서 사람의 생체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밤이 되면 암막커튼을 사용하고
형광등과 LED의 조도를 최대한 낮춘다.
실험 장비의 상태는 하루 종일 같은 밝기로 유지됐다.
12월 25일 00:03.
연말 보고 일정에 맞추기 위해 연구소
모든 실험실이 동시에 가동되고 있었다.
본 전력망은 생명 유지 설비를 담당했고, 보조 전력망은
데이터 분석과 외부 송출 장비를 떠받치고 있었다.
두 전력망은 분리돼 있었지만 부하가 커질수록
부담이 커지고 있었다.
“전력 그래프가 흔들려.”
내가 말했다.
김 박사가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순간 부하야. 동시 송출 때문이겠지.”
그때였다.
형광등이 미세하게 떨렸고,
현미경 속 개미들은 동시에 움직였다.
불빛이 강해질수록
그들의 움직임은 선명해졌고,
전류가 떨어지면
일제히 멈췄다.
“빛이 아니라... 전기신호야”
김 박사가 중얼거렸다.
나는 기록지에 적었다.
'12월 25일 00:03
크리스마스트리 잎개미, 전자기장 변화에 반응.
고압 전류 이온화 → 신경계 활성.'
크리스마스트리 잎개미는 온도가 아니라
전기 신호에 반응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와 어울리지 않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날 밤 자정이 넘도록 연구소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눈보라 속에서도 희미한 붉은 빛이 깜박이고 있었다.
나는 여왕이다.
너희가 불을 밝히면, 우리는 깨어난다.
강한 불빛은 우리의 신경을 더욱 자극해.
너희의 즐거움이, 우리에게는 전쟁의 서막이야.
우리는 땅속의 그림자였어.
그런데 너희의 빛이 우리를 불러냈지.
그 불빛들은 따뜻했어. 너희는 몰랐겠지.
그 안에는 유전자 각성과 불안,
그리고 기억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너희의 축제가 시작되는 그 밤,
우리는 깨어났지. 그리고, 나는 너희를 모방해.
너희의 신경, 너희의 언어, 너희의 사랑을
12월 25일 02:00
경고음이 연구소를 가로질렀다.
― 보조 전력망 과부하
― 자동 차단 준비
보고 마감 직전,
외부 송출 장비와 실험 장비가
동시에 최대 부하로 작동하고 있었다.
“보조망이 먼저 끊길 거야.”
내 말이 끝나기 전에
보조 전력망이 차단됐다.
전류는 사라지지 않았다.
방향을 잃은 채 본 전력망으로 몰려들었다.
공기가 순간적으로 따끔거렸다.
정전기처럼 피부에 남는 느낌이었다.
고압 전류로 인해 공기 중 일부가 이온화되면서,
연구실 바닥 근처에 미세한 정전기 흐름이 생긴 것이다.
그 자극에 잎개미들이 반응했다.
“팔이… 뜨거워!”
김 박사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팔 피부 아래에서 붉은 점들이 빠르게 번졌다.
“피 속 철분에 반응하고 있어.”
나는 숨을 삼켰다.
“이온화된 전류가… 신경을 타고 들어가.”
본 전력망 보호 장치가 작동하자,
연구소의 불이 한꺼번에 꺼졌다.
빛이 꺼지는 동시에,
그의 몸에서 개미들이 흩어져 나왔다.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나는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박사님, 지금 이 움직임은... 심장박동과 일치해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김 박사는 이미 조용해졌다.
붉은 빛이 실험실을 삼켰다.
아름다움이 공포를 잠식했다. 그리고 기억을 잃었다.
극야의 바깥과 연구소의 안이
처음으로 같은 색이 되었다.
개미들의 움직임은 달라졌다.
외부 전기장이 사라진 대신
그들은 가장 가까운 전도체로 향했다.
사람의 몸이었다.
김 박사의 팔에서 개미들이 흩어져 나왔다.
바닥 위로, 그리고 다시 어둠 속으로.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그 리듬은 심장 박동과 닮아 있었다.
비상등이 켜졌다.
붉은 불빛 속에서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피부 아래,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새벽이 될 무렵, 눈은 멎어 있었다.
대신 붉은 입자들이 하늘을 덮었다.
처음에는 눈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개미였다.
수백만 마리의 개미들이
발전기와 전력선이 있는 방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전류가 흐르는 곳마다 트리 형태의 군집을 이루었다.
나는 중얼거렸다.
“이건 축제가 아니야. 신호야.”
그날 이후,
내 피부 아래서는 미세한 진동이 멈추지 않았다.
현미경을 들이대면, 나를 보는 건 개미들의 눈이었다.
넌 나를 관찰하며 연구한다고 말했지.
하지만, 너와 내가 정말 구분될까?
네가 숨 쉬던 공기, 네가 깜빡이던 눈 속에도
이미 나는 있었는데?
네 눈동자의 반사광 속에서,
너의 기억은 나의 먹이가 되고,
너의 공포는 나의 리듬이 되었지.
너희는 나를 연구하며, 나를 창조했어.
이제 나는 너희의 뇌에서 번식한다.
이건 감염이 아니야.
진화의 한 방식일 뿐이야.
구조대의 음성이 무전기 너머로 들려왔다.
“연구소 내부, 생존자 확인 안 됨.
벽면에서 트리 형태의 혈흔 발견.
혈액 내 철분 농도 이상치.”
그들은 몰랐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나는 어둠 속에서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내 손끝은 서서히 붉게 빛났고,
귀 속에서는 여왕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너는 이제 나다."
나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가다듬고
가까스로 무전기에 대고 마지막 보고를 했다.
"이건 자연의 반격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든 신호를, 그들이 해석한 결과일 뿐입니다."
눈보라가 다시 내렸다.
나는 몸을 일으켜 눈 속에 발을 디뎠다.
붉은 개미들이 발자국 아래서 일렁인다.
그들은 끊임없이 나를 따라왔다.
멀리서 트리 불빛이 켜졌다.
그건 축하의 불빛이 아니라,
개미를 부르는 신호였다.
그 순간,
내 입가에서 어색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더 이상 정순호가 아니었다.
이제
나는
여왕의 일부가 되었다.
<크리스마스와 돌연변이>는,
인간이 무심코 만들어낸 신호와 환경이 생명과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묻기 위해서 썼다.
과학 연구, 성과보고, 축제의 불빛처럼 일상적이고 합리적인 행위들이 예기치 않게 통제 불가능한 변이를 낳는 순간을 그리고자 했다.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위치가 뒤바뀌는 과정을 통해, 인간 중심적 시선의 한계를 드러내려 했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기술과 진보가 책임 없이 사용될 때 발생하는 윤리적 공백을 질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