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 [소설] 13월의 캐럴

by 윤지안


프롤로그 — 유리방울이 울릴 때

성탄 전야.
도시 외곽의 오래된 아파트 1203호.

도어벨 멜로디가 ‘고요한 밤’을 간신히 흉내 낸다. 현관에 걸린 리스는

말라붙은 솔잎을 서걱이며 떨어뜨리고,

천장등은 한 번씩 꺼졌다 켜진다.

도은은 택배 상자를 뜯는다.

포장지 안에는 낡은 오르골 하나.

황동 표면은 성탄 천사의 양각으로 뒤덮여 있다.

태엽을 감자,

오르골은 어긋난 박자로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를 긁어낸다. 소리가 돌다가 어딘가에 걸린다.

뚜껑 안쪽, 거울 뒤에 얇은 속지가 한 장 접혀 있다.
— “13월 01일. 우편함 아래칸.”

도은은 우편함으로 내려간다.

옆집 아이들이 만든 눈사람이

엘리베이터 앞에 누워 있다. 목이 없다.

칸막이 아래,

누구도 쓰지 않는 ‘0번 함’에 서류뭉치가 꽂혀 있다. 표지엔 굵은 도장.

> 시흥구 민원 기록철 / 13월 분



그 순간, 복도 끝 크리스마스 트리가 켜진다.
누군가 없는 가운데서도,

전구는 정확히 13번 깜빡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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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서도은: 34세. 시립 라디오 아카이브 계약직 아키비스트. 사운드 기록을 정리한다.

크리스마스가 싫다.

안재훈: 동주민센터 민원총괄 서기.

언제나 같은 미소. 기록을 잘 안 없앤다.

유아람: 새벽 성가대 지휘자.

목소리와 손짓이 정확하지만 호흡이 길다.

은서: 도은의 여동생. 여섯 살에 실종되었다. 공식적으론 ‘동절기 가스폭발 사고’.

도은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연보관’: 교회 옆 지하실의 금고방.

모든 주민의 연대기를 보관한다고 소문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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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고요한 밤의 귀

1장. 테이프 001: 화이트 노이즈

라디오 아카이브 지하서고.

저장고 C-13 열람석에 도은이 앉아 있다.

상자에 적힌 분류는 “성탄 특집 미방분(2002)”. 리더기를 돌리자, 테이프는 길게 마찰음을 낸다.

그리고 낮은 합창이 들린다.

> “… 아멘.”
“진행 멘트: ‘오늘은 특별한 달, 보너스 같은 달—’”
“컷. 방송 불가.”



테이프 뒤쪽에, 앵커의 농담 같은 멘트가 묻어 있다. 보너스 같은 달.
도은은 기록 카드를 쓴다.

“미방 사유 불명, 날짜 표기 공란.

가청거리 13분 이후 합창의 음정 급락.”

퇴근길, 눈발.

도은은 주민센터에 들러

우편함 속 “13월 분” 기록철을 보여준다.

서기 안재훈은 흠칫한다가 웃는다.

“페이크죠. 행사팀 장난. 여기선 12월까지만 살아요.”
“이 도장, 진짜인데요.”
“진짜 같은 장난이죠.

크리스마스에는 다들 그런 거 해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1층 강당에서 성가대 리허설이 시작된다.

합창의 첫 음이 리더기의 마찰음과 같은 톤으로 커진다. 도은은 악보를 넘기는 지휘자 유아람과 눈이 마주친다. 아람의 입모양은 노래와 다르다. ‘보너스 달.’

2장. 열세 개의 눈사람

아파트 단지 놀이터. 밤마다 눈사람이 늘어난다.

첫날 하나, 둘째 날 셋, 셋째 날 다섯… 수열처럼. 열흘째 되는 날, 열세 개. 머리는 없고,

각각 목 부분에 금속 고리가 박혀 있다.

‘13월 분’ 기록철을 넘기자, 사진이 붙어 있다.

“특이 민원: 누군가 공공조형물에 고리 부착.

재발 방지 필요.”
기록의 날짜가 13월 03일로 찍혀 있다.

민원 처리 결과는 “보류”.

담당자는 A.J.H. — 안재훈의 이니셜.

도은은 주민센터에서 재훈을 다시 만난다.
“눈사람, 공공조형물인가요?”
“애들이 장난친 거죠.”
“그럼 고리는?”
“트리 장식 줄이라니까요.”

재훈이 미소를 던지는 순간,

복도 장식용 유리방울이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낸다. 열세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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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종이 달력의 여백

3장. 연보관

교회 지하, 연보관. 아람이 키를 대준다.

“합창단 아카이브 공동작업이래요.”

금고방 내부는 의외로 소박하다.

오래된 장부들이 철서가처럼 놓여 있다.

『연보—13월』이라는 얇은 권이 따로 구획되어 있다. 펼치면,

날짜가 ‘13/01, 13/02… 13/25’까지 이어진다. 기재양식은 민원 기록과 비슷하지만,

항목의 마지막 칸이 특이하다: ‘회수 여부’.

13/01: “도로변 트리 분실(유리방울 1) / 회수—○”
13/07: “실종 아동 귀가(가상) / 회수—○”
13/11: “방송사고(성탄 특집 미방) / 회수—○”
13/13: “가족제의 불참 / 회수—□”

도은의 심장이 멎는다.

가족제의.

어릴 적 겨울,

엄마가 캐럴 대신

종이컵에 초를 꽂아 돌리던 밤이 스친다.

은서가 불을 끄지 않았던 밤.

그리고 다음 날,

아무도 은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집.

그게 ‘제의’였나.

“연보는 ‘사라졌다가 돌아온 것들’의 목록이에요.” 아람이 말한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아야 할 것도 있죠.”

4장. 테이프 013: 캐럴의 빈자리

라디오 아카이브.

도은은 다시 C-13 섹션으로 내려간다.

테이프 013.

라벨에 펜으로 적힌 날짜가 기이하다.

13/13.

재생.

> “지금 시각, 13월 13일 새벽 네 시.

성가대의 리허설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린 매년 이 여분의 달을 되감아, 빚을 갚습니다.”
“귀를 가져오세요.”



합창의 허밍 사이로 금속 갈리는 소리.

누군가의 태엽을 무는 듯한.

도은은 헤드폰을 벗는다. 귀가 뜨겁다.

귓바퀴 안쪽에서 아주 작은 톱니가 도는 감각.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미세한 가루가 떨어진다—은가루처럼 반짝인다.

“귀를 가져오세요.”

그 문장은,

오래전 은서가 혼잣말처럼 따라 하던

성탄 광고 멘트와 같았다.

“크리스마스는 나눔의 계절—사랑의 귀를.”

아이 장난처럼 웃던 동생의 얼굴이 겹친다.

그날 밤, 도은의 꿈.

교회 앞마당에 열세 개의 귀가 진열되어 있다.

다 유리방울처럼 맑다.

누군가 그들을 지나가며 하나씩 톡톡 칠 때마다,

캐럴이 한 음씩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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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 13월

5장. 회수

도시는 공식적으로 성탄 연휴에 들어섰다.

그런데 달력이 뒤집히지 않는다.

대중교통 전광판에 작게 13/01이 찍힌다.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혹은 본 척하지 않는다.

안재훈은 친절하다.

“행정은 반복이죠. 기록, 회수, 폐기.”
“회수라니요?”
“누군가의 기억. 잉여의 기쁨. 불필요한 동생.”
그의 미소가 크리스마스 라이트처럼 깜빡인다. 13번.

밤, 연보관에서 도은은 13/13 페이지에 적는다.
“가족제의 불참—회수 □”
그리고 옆에 “은서”라고, 아주 작게.

잉크가 종이에 스며드는 동안,

천장 배관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박자처럼 방울거린다. 도은은 펜촉으로 물을 터뜨린다. 쨍. 유리 소리.

6장. 성가대의 호흡

아람은 도은에게 새벽 합창에 와보라고 한다.

“끝을 보려면, 같이 숨을 참아야 해요.”

새벽 네 시.

성가대는 입을 크게 벌린 채 소리 내지 않는다. 단원들의 턱선은 단단히 묶여 있다.

아람의 손짓이 내려오자,

모두 같은 박자로 숨을 들이마신다. 13초.

그리고 내쉬지 않는다. 13초가 또 흐른다.

그때, 합창단 뒤 커튼이 젖혀지고 작은 문이 열린다. 안쪽은 금고방. 금고방 안쪽은 다시 밖이다.

복도 전등이 켜졌다 꺼진다.

도은은 그 사이로 유리방울을 본다.

동그란, 귀 모양의 방울.

그 안에서 작게 ‘고요한 밤’이 울린다.

아람의 손짓. “지금.”
도은은 자신의 귀에 있던 은가루를 털어

금고문 틈에 뿌린다.

딱딱한 무언가가 풀리며 겹겹의 톱니들이 멈춘다. 합창단이 동시에 숨을 내쉰다.

커다란 한숨이 성당 천장으로 올라가며

캐럴을 밀어낸다. 불협화음.

그리고 아람이 무너진다.

그녀의 목구멍에서 작은 오르골 태엽이 삐져나와 있다. 재훈이 뛰어와 태엽을 감으려 한다.

도은은 그의 손목을 잡는다.

“회수는 여기서 끝.”
“아니요.” 재훈의 미소가 또 깜빡인다.

“끝은 항상 덧셈이에요.”

7장. 13월의 성탄절

도시는 눈으로 봉인되었다. 제설차는 나오지 않는다. 텔레비전은 성탄 특집을 끝없이 재방송한다.

그러나 같은 장면이라도 자막이 조금씩 다르다. “여분의 달을 사랑하세요.”

“당신의 불필요를 기증하세요.”

“귀를 보내세요.”

도은은 라디오로 2002년 미방분을 다시 튼다.

테이프 속 앵커가 묻는다.

> “우리는 무엇을 갚는 걸까요?”
“남아도는 날들. 울지 못한 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는,

슬픔을 적금처럼 붓는 날입니다.”



테이프가 끝나자, 아파트 인터폰이 울린다.

화면 속 복도에 눈이 쌓여 있다.

그리고 화면 하단에 메모가 깜빡인다.

“13월 25일—가족제의.”

누군가가 종이컵 초를 들고 서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손만. 아이 손.

도은은 문을 연다.

차가운 공기와 함께 유리방울 하나가 굴러 들어온다. 방울 속에 작은 소녀가 있다.

눈밭에서 웃으며 손을 흔든다.

도은은 방울을 들어 빛에 비춘다.


소녀의 입모양: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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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 파손 증명서

8장. 민원 처리

주민센터 민원창구.

도은은 “파손/분실 신고서(유리 고음체)”를 꺼내 든다. 재훈이 창구 안쪽에서 여전히 웃고 있다.

“오르골이 고장났어요.”
“수리실은 지하로.”
“아니요, 오르골이 아니에요.”

도은은 가방에서 유리방울을 꺼낸다.

“이것을 깨고 싶어요.”

재훈은 미소를 멈춘다.

“깨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좋아요.”
“깨면, 그 아이는—”
“—그 아이가 누구죠?”

재훈의 시선이 흔들린다.

그는 도장을 꺼낸다.

파손 처리—불가. 보류. 회수 예정.

도장은 같은 칸을 여러 번 찍으며 번진다.

잉크 얼룩이 13의 모양을 이룬다.

“그럼,”

도은이 나직이 말한다.

“행정 절차를 바꿔요.”
그녀는 창구 유리를 주먹으로 내리친다.

유리가 울린다.

유리방울이 그 진동에 공명한다.

복도 장식의 방울들도 차례로 운다. 13번.

유리가 갈라지며 민원창구와 로비의 공기가 섞인다. 재훈이 뒤로 물러서다 미끄러진다.

그의 호주머니에서 태엽이 쏟아진다.

바닥을 구르는 금속 고리마다 작은 귀가 달려 있다. 유리방울처럼.

재훈은 그 귀들을 붙잡아 입에 쑤셔 넣는다.

“회, 회수—”

그는 씹는다.

다 먹지 못한 말이 뒤엉켜 흐른다.

“보—너—스—”

9장. 파손 증명서

도은은 연보관으로 달려간다.

‘13월’ 권을 꺼내 마지막 페이지를 펼친다. 13/25.
“가족제의—회수 □”
그 옆에 도은은 크게 쓴다. “파손.”

그녀는 유리방울을 장부 위에 올린다.

그리고 하늘에서 깎여나간 장식처럼,

방울을 장부 모서리에 강하게 친다.

쨍. 금이 간다.
사방에서 종소리가 난다.

교회, 트리, 엘리베이터, 벽시계, 머릿속.

도시의 모든 ‘고요한 밤’이 불협화음으로 터진다.

방울이 깨지며 작은 소녀가 방 안에 떨어진다.

소녀는 숨을 쉬지 않는다.

눈발이 소녀의 머리카락에 소금처럼 얹힌다.

도은은 소녀를 안아 올린다.

“은서…?”
소녀는 눈을 뜬다. “언니.”
그리고 다시 눈을 감는다.

아주 가볍게.

마치 한 달이 끝났을 때처럼.

10장. 사후 절차

눈이 멎은 새벽,

도은은 주민센터 3층 사망·행방불명 신고실에

앉아 있다.

서류 첫 칸: 발생일자.

도은은 잠시 망설이다가 “13/25”라고 적는다.

담당자는 없다.

대신 녹음 버튼이 있다.

“사유를 말씀하세요.”
도은은 마이크에 대고 천천히 말한다.


“종이 달력에 없던 날들이 있었고,

우리 가족은 그 빈칸으로 도망쳤습니다.

누군가는 그 빈칸에서 커졌고,

누군가는 그 빈칸에서 줄었고,

누군가는 그 빈칸을 먹고 살았습니다.”
“저는… 오늘 그 빈칸을 깼습니다.”

버튼이 빨갛게 꺼진다.

프린터가 작동한다. 파손 증명서가 나온다.

하단에는 작게 ‘담당: 없음 / 회수 불가’.

도은은 증명서를 접어 오르골에 넣는다.

태엽을 감는다.

오르골은 이번엔 한 번도 걸리지 않는다.

멜로디가 끝나자,

아주 작은 공백이 뒤따른다.

그 공백은 어떤 달의 빈칸과도 같지만,

더 이상 13번 깜빡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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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12월의 끝

도시는 평소의 정해진 달력으로 돌아왔다.

눈사람들은 고리 없이 부서져 물웅덩이가 되었다. 성가대는 다시 노래를 한다. 숨을 쉬면서.

연보관의 금고는 열려 있고,

‘13월’ 권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조용한 흰 종이 묶음이 놓였다.


제목: 「파손 증명서」.

페이지 하단마다 작은 숫자가 인쇄되어 있다.

1부터 12까지.

도은은 집 창가에 작은 트리를 세운다.

유리방울 대신, 빈 고리를 단다.

그 고리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때때로 바람이 지나가면,

도어벨이 고요한 밤을 틀다가 멈춘다.

멈추는 자리엔,

은서가 잠시 웃는 듯한 공기가 앉는다.

도은은 오르골을 닫는다.

황동의 천사가 빛을 받는다.

그는 입을 열지 않는다.

더 이상 누군가의 귀를 요구하지 않는다.

라디오에선 성탄 특집이 끝나고 교통정보가 나온다. “현재 시각, 12월 26일.”
도은은 창밖을 본다.

달력은 더 이상 덧셈을 하지 않는다.


밤은 짧다.

그리고 어떤 밤들은, 무음으로 지나가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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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 「13월의 기록」 일부 발췌

> 13/01 — 도어벨이 엇박자로 운다.

나는 귀를 비축한다.


13/06 — 아이가 종이컵을 나눠준다.

불은 불어 꺼지지 않는다.


13/11 — 합창단은 숨을 참는다.

누군가의 이름이 길어져서 모두의 박이 흔들린다.


13/13 — 보너스 달의 중심.

오늘은 불필요를 사랑하기.


13/25 — 파손된 날. 회수 불가. 담당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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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1. 13월의 의미 ―

‘남아도는 시간’이 아니라 빼앗긴 시간


작품에서 13월은 보너스가 아닙니다.
겉으로는

“여분의 달”, “보너스 같은 달”이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공식 달력(12개월)에 포함되지 못한 사건들,
너무 아파서 말해지지 못한 상실,
공동체가 감당하지 않기 위해

기록 바깥으로 밀어낸 시간을 수용하는

비공식 수용소입니다.


그래서 13월에는 항상 이런 것들이 등장합니다.


- 실종 아동의 ‘가상 귀가’
- 미방된 방송
- 가족제의
- 회수 여부 체크


→ 즉, 사라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들의 임시 보관함입니다.


2. ‘회수’란 무엇인가 ― 애도의 반대말


이 세계에서 “회수”는

물건을 돌려받는 행위가 아닙니다.


회수란,
상실을 사회적으로 무효화하는 절차입니다.


- 아이는 “가상 귀가” 처리된다.
- 방송사고는 “미방”으로 묻힌다.
- 가족의 죽음은 “제의”로 정리된다.


즉, 울 필요가 있었던 것을

울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행정적 폭력입니다.


안재훈은 이 폭력의 얼굴입니다.
그의 미소는 개인적 악의가 아니라,

시스템의 미소입니다.


“행정은 반복이죠. 기록, 회수, 폐기.”
이 한 문장이 작품의 세계관을 요약합니다.


3. 귀, 유리방울, 오르골 ― 듣지 않은 죄


- 귀 -


귀는 이 작품에서 책임의 기관입니다.


- 귀를 가져오라는 말
- 귀 모양의 유리방울
- 귀를 씹어 삼키는 재훈


→ 이는 “듣지 않음”, “외면함”, “침묵함”

물질화한 상징입니다.
우리는 보고도 못 본 척할 수 있지만,

들었을 때는 책임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 사회는 귀를 수집하고, 저장하고,

필요하면 회수합니다.


- 유리방울 -


유리방울은 크리스마스 장식이자
귀의 저장 용기이며, 기억의 캡슐입니다
맑고 예쁘지만,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진실입니다.
그래서 행정은 깨지지 않도록 “보관”만 하지,

파손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 오르골 -


오르골은 되감기 가능한 슬픔입니다.


- 태엽을 감으면 같은 멜로디
- 걸리는 지점에서 반복
- 미세한 불협화음


이는 애도가 아니라 의식화된 반복입니다.
슬픔을 끝내지 않고, 관리만 하는 장치입니다.


4. 은서 ― ‘죽은 아이’가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존재’


은서는 단순한 유령이나 망령이 아닙니다.


공식 기록상: 가스폭발 사고
실제 서사상: 가족제의 이후 말해지지 않은 아이
상징적으로: 애도되지 못한 상실 그 자체


그래서 은서는 살아 돌아오지도 않고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으며
유리방울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도은이 방울을 깨는 선택은
동생을 살리려는 시도라기보다,

동생을 제대로 잃기 위한 선택입니다.


5. 파손 증명서 ― 이 작품의 핵심 선언


“파손”은 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단어입니다.


- 회수는 가능
- 보류는 가능
- 파손은 불가


왜냐하면 파손은
되돌릴 수 없음을 인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도은이 선택한 것은 회복도, 복원도 아닙니다.


- 동생을 되살리지 않는다
- 시간을 되감지 않는다
- 대신 빈칸을 그대로 인정한다


그래서 마지막 증명서에 적힌 말이 중요합니다.


담당: 없음 / 회수 불가
→ 이 상실은 누구의 관리 대상도 아니며,
→ 누구도 대신 책임질 수 없고,
→ 개인에게 돌아온다
이것이 애도의 완성입니다.


6. 결말 ― 12로 돌아온 세계, 그러나 달라진 의미


13월은 사라졌지만, 상실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 트리에는 유리방울 대신 빈 고리
- 소리는 없음
- 그러나 부정도 없음


즉,
소리 없는 기억은 더 이상 회수 대상이 아니다,
밤이 무음으로 지나가도 괜찮다는 마지막 문장은
이 작품이 말하는 애도의 정의입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13월의 캐럴」
사회가 관리해 온 슬픔을 개인이 ‘파손’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상실을 자신의 것으로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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