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물어봤다. "왜 신혼여행으로 샌디에고에 가?"
유럽은 가고 싶지 않았다. 유럽 건축은 넘어야 할 대상이지, 동경하고 탐닉할 문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뻔히 가는 신혼여행지는 더더욱 싫었다. 결혼하면 신혼여행을 가야 한다는 뻔한 공식에 뻔한 입력값을 넣어서 뻔한 결과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뻔한 공식일수록 특별한 입력값을 넣었을 때 아주 특별한 공식이 탄생한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희망했던 입력값은 알래스카, 아이슬란드, 러시아 정도였다. 내가 추운 날씨를 좋아하는 탓도 있었지만, 아무도 없는 광활한 추위 속에서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밤을 지새워 보고 싶은 로망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유럽을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포르투갈을 가게 되나 싶었다.
아내 이기는 남편은 없다고 누가 그랬는지 몰라도, 그 말은 틀렸다. 아내를 이기는 남편이 없는 게 아니라 애초에 부부관계에서는 아내를 이기려 하면 안 된다. 더더욱 아내가 먼저 배려를 해서 도시문화보다 자연관광지 위주의 포르투갈 여행을 제안하였는데, 차마 그것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아내가 내 생각을 하면서 우리 둘 다 즐길 수 있을만한 나라를 얼마나 찾아 헤매었을지 뻔히 보였다. 그래서 나는 포르투갈에 찬성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유럽에 테러로 난리가 났다. 많은 사람이 신체와 마음과 목숨을 잃었고 유럽은 비탄에 빠져 있었다. 신혼여행을 차마 테러의 아픔이 남아있는 곳으로 갈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또 다른 나라를 찾아야만 했다.
그러다 대학시절에 갔던 뉴욕의 7박 8일 여행이 떠올랐다. 아내의 표현대로 그 시간만큼은 뉴요커... 였다고 믿고 싶다. 잘 다린 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브로드웨이를 거닐며 나름 그곳의 문화를 즐기고 뉴요커가 되어서 돌아왔다고 믿고 싶다. 그때의 여행에서 캘리포니아와 나름 인연을 만들고 왔었는데, (잠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질 것 같다.)
뉴욕을 가는 도중 엘에이 공항에서 환승할 때의 일이었다.
대기 기간이 길어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슬슬 환승 시간이 되어 깼는데, 환승 티켓이 주머니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하나둘 비행기에 타고 결국 나 혼자 남아 허둥지둥 티켓을 찾고 있었다. 결국 보안요원과 항공사 직원까지 내 주변을 둘러싸고 티켓을 찾다가, 결국 내 가방 깊숙한 곳에서 티켓을 찾게 되었다. 멋쩍을 웃음을 지으며 내가 종종 이런다고 미안하다고 말을 꺼냈는데, 보안요원이 무서운 눈초리로 너 종종 이런다고!? 너 마약 하냐!?라고 되묻는 게 아닌가.
대답도 못하고 어버버 하는 나를 항공사 직원이 얼른 비행기에 태웠지만 결국 뉴욕공항의 입국 심사에서 따로 1:1 심사를 받아야만 했다. 이렇게 캘리포니아주 엘에이 공항에 나름 인연이라면 인연이 있다.
사실 나도 내가 왜 미국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알버트 비어슈타트가 그린 광활함에 매료되었을 수도 있고, 짐 캐리가 연기하는 유머와 서사에 빠졌을 수도 있고, 스티븐 킹이 써 내린 기괴함과 흡입력에 휘말렸을 수도 있다. 이유를 딱히 꼽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나는 미국을 좋아한다.
그리고 솔크연구소는 내가 가보고 싶은 몇 안 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나에게 꼭 가보고 싶은 건축물을 뽑으라면, 오만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다섯 곳이 채 안된다. 만리타향에 나가서 건축물을 보는 것보다는 그곳의 문화와 자연에서 더 배울 것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의 문화와 자연을 뛰어넘는 말도 안 되는 감동을 주는 건축물들 만큼은 꼭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다고 생각해왔는데, 그중 하나가 루이스 칸의 솔크연구소다. 그리고 솔크연구소는 샌디에고에 있었다.
미국인들이 노후를 보내기 가장 좋다고 뽑는 안전하고 따듯한 휴양지, 샌디에고. 따듯한 곳을 좋아하는 아내와 미국을 좋아하는 나와 솔크연구소를 가보고 싶은 우리의 의견이 완전히 겹치는 장소였다.
그리고 글 말미에서야 밝히는 게 있는데, 나는 미국에서 그 무엇보다 ‘음식’이 제일 좋다.
건축이고 뭐고... 사랑한다 햄버거! 미안해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