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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Mar 25. 2024

나의 살던 고향은...

지난가을부터 다니던 치과가 내가 초등학교 때까지 살았던 동네와 가까운 곳에 있다, 그때 다녔던 성당과,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는 곳이다.  매번 치과만 다녀가기 바쁘다가 지난번에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하게 되어, 살았던 동네까지 걸어가 보았다. 성당도 가보았다. 그대로 있는 건 성당밖에 없었고, 기억 속에 희미하게 자리하던 지형, 오르막, 내리막, 큰길들만 알아볼 수 있었다. 

 

대학 졸업 이후로...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살고 있었음에도... 거의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것 같다.

 

거의 30년 만이라고 해야 할까...

 

언젠가부터 나는 나의 과거와 마주하기 두렵고, 멀어지고...  멀리멀리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다.

 

부끄러웠기 때문이었을까?

 

예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싫어할 것 같아서였을까? 예전의 나를 마주하기 싫어서였을까? 

 

그런데...

 

부끄럽게 생각했던 예전의 나는, 그 이후의 나를 더 부끄럽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부끄러운 마음에 예전의 나를 보고 싶지 않다고 밀쳐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예전의 나를 만나면 지금의 내가 부끄러워질까 봐...  

 

오래 전의 내가 살았던 동네에 가보게 되면 어떤 마음이 들지 궁금했다. 아무 감각 없을까? 감정이 몰려올까?

 

늘 무언가와 만나기 전에 그 감정에 대해서 미리 예상하고 머리로 예측하는 습관이 있었나 보다. 어떻게 해서 그런 걸 예측 가능하다 생각하고 예측해 버릇하게 되었을까.

 

그러니까… 음악회든, 여행이든… 과거의 경험들에 빗대어 기대감을 갖거나, 별로일 거야라고 판단해 버리며, 가고 싶거나 가기 싫은 마음이 생겨났을 테니까…

하지만 그동안 그 마음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고, 그 소리에 귀를 막고 갔던 어느 장소에서 생각보다 좋았거나 싫었던 것들을 발견했었다.

 

오래전에 굉장한 감회에 젖을 거라 예상하며 몇 번 찾아갔었던 모교 방문은 아마도 나에게 큰 감동을 주지 않았었던 모양이다. 고향이란… 감회에 젖기 위해 찾아야 하는 곳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던 건가?  

오랜 세월이 지나 모교를 찾아가고, 고향을 방문한다는 것…. 

감회에 젖기 위한 것 말고 무슨 이유가 있을까… 감회에 젖는 행위 자체에 대한 환멸…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의미인가…. 그런 생각들이 섞여 굳이 그 동네에 가 볼 생각 자체에 흥미를 갖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미리 예측하는 버릇, 몰려오는 생각들을 물리치고 이제는 발걸음을 그쪽으로 움직이면서 들었던 생각은… 나는 그 감정을 미리 알 수 없고… 무언가를 만약 느끼게 된다면….  그 장소에 가게 되었을 때 내 몸이 먼저 그 장소를 알아채고, 알아서 먼저 느낄 거야…라는 생각이었다.

 

아마도 모든 것이 변했을 그 장소를 나는 알아볼 수 있을까?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는 않을까? 

 

리스본행 야간열차에도, 토니오 크뢰거에도… 오래 전의 장소를 찾는 장면들이 나온다.

나는 소설 속 이야기를 흉내 내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도 내 행동, 발걸음들을 순수하지 못하게 훼손하는 생각들이다. 그 장소에 갔을 때의 내 생각까지도 소설 속 주인공의 상념을 흉내 내는 것은 아닐지 하는 의심…

 

모든 것이 변해서 알아보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그 동네에서… 알아볼 수 있는 건 '땅'밖에 없었다.  수없이 오르내리던 길… 저녁 먹으라고 엄마가 부르기 전까지 놀고, 친구를 기다리던 장소...

머릿속 지도를 따라 집이 있던 위치에서 성당까지 가보았다.

 

성당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게 신기했다.

첫 영성체를 받았고, 기도문을 외웠고, 여름 성경 학교에 다녔고, 엽서를 모으기 위해 방학동안 새벽미사에 매일 다니기도 했었고, 합창, 인형극 공연을 했고… 중학교 이후로 더 이상 다니지는 않았지만 고등학교 때, 가끔 들러서 기도를 하기도 했던 곳…

 

 그런데, 처음, 그 땅에 내가 서 있고, 그 땅의 지형을 알아보게 되었을 때… 내 몸이 정말로 그곳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무언가가 올라와서 눈물을 찔끔 흘리게 한순간이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그때 들었던 생각이…

그렇구나… 나는 너무 오랫동안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있었고… 아무 죄 없는 나를 미워하고 있었구나...라는 회한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감정조차 주입된 생각인지 모른다는 의심도 어쩔 수 없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15년 만에 연주를 하면서 대학 시절을 소환하고… 고향을 방문한 것처럼 감회에 젖고…

이제는 더 멀리 두고 왔던 나를 찾으러 간 발걸음이었을까?

사회에 적응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며 정신없이 살다가 나이를 먹으며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 다들 거처 가는 자연스러운 순리 속에 나도 이런 행동을 하고 이런 순간과 만나게 되었던 걸까.

이제 과거의 나를 마주해도 괜찮을 만큼 죽어 있던 마음이 회복된 걸까?

 

처음에는 성당까지만 가보았고 그다음 치과에 갔을 때에는,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고등학교까지 가보았다.

몇 개의 건물들이 더 생기긴 했지만 내가 다녔던 중학교, 고등학교 건물들은 그대로였다.

운동장으로 통하는 건물의 현관… 운동장… 그 너머의 논… 하지만 그 너머… 바로 하늘이었던 그곳에는 이제 건물들이 빼곡했다.

새벽에 가장 먼저 학교에 도착해서 컴컴할 때부터 환해질 때까지 운동장이 논과 만나는 그 경계쯤에서 매일 걸었었다.

그런 내가 여러 선생님들 눈에 띄었고… 어느 선생님이 알려주셔서… 선생님들이  "사색의 대명사"라고… 그런 별명을 나에게 붙였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나는 혼자만의 장소였던 그 장소를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 같지만….

그때는 선생님이 되어 이 학교로 돌아오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돌아오게 되었더라면 내 인생은 더 좋았을까?

 

졸업 후 나는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 버리고, 그토록 사랑했던 이곳을 뒤돌아보지도 않게 되었다.

그때 가장 사랑했던 건 하늘이었는데…

특히 서편으로 광활하게 뚫려 있던 하늘에 해가 지면서 경이롭게 노을 지던 장관을 매일 볼 수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 후로 잃어버렸던 것은 하늘이었나 보다. 그렇게 넓었던 하늘, 그때 보았던 것과 같은 노을은 그 이후로 찾을 수 없었던 것 같으니까…

 

그 하늘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곳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라고 확신했었는데…

지금까지 여러 장소를 다녀보았지만…

착각일 거라고…  내가 더 좋은 곳을 모르기 때문일 거라고 치부했던 그 생각은… 착각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고… 이제는 그곳에서도 건물로 막혀 볼 수 없는 하늘이 광활하게 있었고, 사계절을 뚜렷이 보여주는 논이 있었고…

이제는 같은 장소라 하더라도 결코 발견할 수 없는… 환상 속의 잃어버린 장소…

그때 꿈꿨던 '졸'이라는 세계…. 루이제 린저의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라는 책에서 봤던 환상의 세계… 그게 바로 이제는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기억 속의 그 장소 같다는 사실... 

'졸'이라는 세계를 꿈꿨던 그 장소는 이제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장소가 되어 그 장소 자체가 이제는 나에게 '졸'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도 인생의 아이러니일까…

지금 여기도 언젠가는 '졸'이 되어있을 테고, 내 아이에게는 더욱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소중한 어린 시절의 장소일 거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또 '졸'에서 '졸'을 꿈꾸는 똑같은 반복을 하고 있는 것일 거다.

여기에서 셰익스피어 소네트 73 마지막 구절을 다시 또 중얼거리게 된다.

"그대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 사랑 더 강해져 그대가 머지않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그것을 더욱 사랑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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