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2022년 7월 31일에 '나를 위한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을 주제로 적었던 글을 아래에 첨부해 봅니다.
지난주에 80년대 학번 이상의 선배들로 시작된 졸업생 2 오케스트라 연습에 처음으로 나가게 되었어요. 작년에 썼던 아래의 글에서 말한 선녀옷을 찾아 입고 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고향에 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25년쯤 전... 졸업생 오케스트라 창단 연주 때 같이 했던 지휘자님, 악장 선배님 그때의 그 사람들 거의 그대로 다시 창단된 졸업생 2 오케스트라... 정말 오랜만에 만나고 세월만큼 나이가 들었지만 전혀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모두들 반갑게 인사했어요. 사실은... 마주 보이는 비올라에서 늘 자리를 든든히 지켜주셨던 선배님께서 올해 초에 돌아가셨고, 그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사람들이 모이고 연락하면서 기존에 있던 졸업생 오케스트라와 별개로 졸업생 2를 창단하여 모이게 된 것 같습니다.
가장 반가워해 주셨을 것 같은 선배님이 계시지 않았지만... 어쩌면 선배님으로 인해 제가 잃어버린 고향을 찾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잃어버린 선녀옷에 대해서는 미련 갖지 않으려 했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모두 같았나 봅니다. 그리고 고향에 고향 사람들이 없다면 고향은 아무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의 그 사람들이 그대로 있어주어 다행이라는... 어쩌면 이게 먼저 하늘로 가신 선배님의 바람이었는지도... 그래서 다른 선배님들도 늦기 전에 이렇게 음악으로 다시 모이기를 결심하셨는지도 모르겠어요.
선배님께서는 뒤풀이에서 늘 여자 후배들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말리셨다고... 결혼하면 적어도 십 년 동안은 연주를 못하니까... 저는 십오 년 이상 떠나 있었고 먼 과거일 뿐이었고, 나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의아해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선배님께서 하셨다는 그 말씀이 돌아가신 후 계속 생각났어요...
선배님의 안타까움은 이제야 저에게 영향을 미쳐서 고향을 찾도록 만들게 되지 않았을까...
오히려 죽음으로 더 가까워지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살아있는 사람에게 살아 있을 때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면... 죽은 사람은 물리적으로 멀리 있던 과거보다 어쩌면 지금 더 나와 가까이 존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선배님과 늘 함께 있는 모습으로만 보았던 다른 선배님들에게서 언뜻 보인 슬픔의 흔적을 느끼면서...선배님의 열정과 미소를 그리워하면서, 저는 지금에서야 선배님의 존재를 살아계셨을 때보다도 더 크게 의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죽은 사람의 영혼은 살아 있을 때는 한 사람의 몸속에만 갇혀있어 물리적인 한계에 있던 생명력과 에너지가 죽음으로 인해 자유롭게 풀려나고 모든 자연 속에 해체되면서 사람들에게까지도 스며들어 나의 사랑이 더 커지는 것 같은 이유가... 내 안에 스며든 죽은 사람의 작용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들었던 생각인데.... 고향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한 작용도 돌아가신 선배님의 의도와 모두의 마음속에 깃들었을 에너지의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갑자기 고향을 찾을 용기를 내게 된 저의 이끌림을...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잃어버린 음악이나 연주를, 악기를 찾아서 간다고만 생각했고...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그리움보다는... 극복해야 할 과제로만 여겼던 것 같은데... 뜻하지 않게 사람들 속에서 고향을 발견하게 되었거든요...
2022.7.31. 대단한 무엇인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모차르트가 될 수 없다면 작곡가가 되고 싶지는 않아"라고, 항상 천재들과 나를 비교했다. 그리고 좌절했다.
왜 꼭 무엇을 좋아하면 대단한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처음부터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단한 무엇인가가 된 사람이라면, 무엇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일 텐데... 대단한 무엇인가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없을 것인지를 항상 미리 염두에 두어 좋아하는 무엇을 택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하는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 같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언제인가부터 음악을 너무나 좋아하고 있었지만, 모차르트와 같은 음악가가 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나이라는 것이 항상 걸림돌이었고, 그렇게 유일하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꿈은 쉽게 접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학 전공을 정할 때 가고 싶은 학과가 전혀 없었고, 성적에 맞춰 학교만 대충 정해 대학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 너무 오래 방황해서 열심히 공부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기에 막연히 재수를 하겠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대학 합격 후에 신체검사를 받으러 학교에 갔을 때 한참 동안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각종 동아리들을 홍보하는 벽보들을 무심히 보다가 '관현악단 모집 공고'를 발견하게 되었다. '초보자 환영'이라는 문구도 확인했다.
언니가 잠깐 배우겠다고 구입했다가 사용하지 않고 집에 그대로 있는 바이올린이 생각났다.
그리고 곧바로 바이올린 학원에 등록해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방학 때 한 달이라도 배우고 가면 완전 초보자보다는 낫겠지 생각하며…
대학 입학 하자마자 바로 '응원 오리엔테이션'이 있어서 대운동장에 신입생들이 모두 모여서 응원가를 배우고 ’ 율동‘을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너무 지루하고 싫었던 그 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캠퍼스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오케스트라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이끌리듯 동아리실 앞에 도착했지만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악보를 못 봐도 됩니다'라는 문구에 '나는 그래도 악보는 볼 줄 아니까'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아 보기는 했지만 문 앞에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때 남학생 두 명이 나를 발견하여 서클실로 떠밀듯이 데리고 들어갔고, 입단 원서를 쓰게 되었다. 남학생 중 한 명은 바로 전 날 가입했다고 하는 신입생이었고, 한 명은 한 학번 위의 선배였다. 입단 원서를 썼던 날짜가 3월 5일이었던 것이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그 후 음대가 없던 학교에서 바이올린을 항상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서클실 '죽순이'로 지내는, 자칭 ’ 음대생‘이라고 생각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시험기간에도 서클실로 등교를 하고, 수업은 빼먹기 일쑤였고, 대학 1학년 1학기에 '학사경고' 받는 것이 마치 대학 생활을 아주 잘 한 듯 비장하게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재수하겠다 생각했던 결심은 이미 저 멀리 아득하게 물러나버렸고...
매년 준비하는 신춘 음악회에 '따까리'로 참여하면서, 선배들의 연주를 들으며, 너무나 황홀하고 행복했다.
그때 생각했다. '이렇게 연주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꿈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아닐까?'라고…
방학에는 낙산 바닷가 근처에 있는 학교 수련관에 가서 5박 6일 동안 음악 캠프를 했다. 하루 종일 연습을 하고 밤에는 여러 행사와 뒤풀이를 하고 밤바다에서도 술을 먹고 근처 호텔의 스카이라운지에 몰려가서 커피도 마시고 했던 일들은 그 중심에 있었던 '음악'이라는 매개 때문에 가장 행복하고 낭만적이었던 추억으로 기억되고, 그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바랄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대학 4년 내내 연주에 참여했고, 방학에 하는 연습이 중요했고 연주를 하는 게 중요했기에 '어학연수'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 졸업 후의 진로를 위해서는 전혀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4학년 때에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음대에 편입하고 싶다' 생각하며 진지하게 고민하고 음악에만 더욱 파고들었던 시간도 잠시 있었다.
그때 마음을 또 쉽게 접었던 이유가 '음대 졸업하면 뭐 할 건데?'라는 질문이었다.
적어도 유명 교향악단에라도 들어가 연주하지 못할 거라면, 이대로 아마추어로 음악을 계속 즐기는 것과 별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진로 선택의 목적이 오직 '좋아하는 음악을 깊이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까?
드라마를 잘 보지 않지만, 얼마 전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를 일부러 찾아서 보게 되었다.
여주인공이 내가 꿈꾸기만 하고 실행하지 못했던 마음을 '실행'하여 음대에 다시 진학하게 된 경우였기 때문에 꼭 보고 싶었다.
마지막에는 '바이올린'을 결국 포기하지만, 음악을 향해 가는 길에 꼭 '바이올린'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 다른 쪽 길, 그래도 그쪽도 역시 마찬가지 음악을 향한 것인 길로 가게 되고, 그 길에서 유명 피아니스트 '남친'까지도 만나게 된다.
뒤늦게 음악을 전공했기에 어려움은 있었을 테고, 전공을 했던 '바이올린'을 결국은 포기하게 되었지만, 형태는 달라도 음악 쪽으로 향한 다른 샛길을 찾을 수 있었으니, 그 길과 그 선택에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졸업하고도 졸업생 오케스트라나 다른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체들에 참여하여 오랫동안 계속 연주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마치 레테의 강을 건너온 듯, 과거를 망각하고 음악도 까맣게 잊고 살고 있다.
선녀와 나무꾼에서, 지상에 내려와 하늘나라 시절이 과연 나에게도 있었던가? 의문을 갖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갔을 선녀의 마음이 이랬을지 모르겠다.
물론 전혀 아쉬움은 없었고, 지상에서의 삶에도 충실하고 만족하기는 했다.
하지만, 가끔씩은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난 지금... 나도 혹시 선녀옷을 뒤지고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글로 적어 과거의 것을 다시 소환해 내는 작업이 혹시 ’ 선녀옷‘ 찾기인 것은 아닌지,
그 옷을 찾는다고 해도 그 ’선녀옷‘이 떠나온 바로 그때의 그 하늘로 나를 데려갈 수는 없을 거다. 하늘도 선녀도 그동안 많이 변했을 테니...
결국 이렇게도 저렇게도 대단한 무엇인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한 때 좋아하는 것에 열정적이었던 시간에는 미련이 남지 않기에, 만약 혹시라도 선녀옷을 찾게 되어 입고 가게 된다면 도착하게 될 하늘이 그때의 그 하늘이 아니더라도, 그래도 좋을 것 같다.
이제는 대단한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음악 말고도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