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첫 연습날

by 산이세라

연습실에 일찍 도착해서 차례로 오는 선배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어렵고 어색할 거라고만 생각하고 잔뜩 긴장했는데,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지휘자님은 KBS교향악단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우리 학교 오케스트라와 오랜 인연이 있어 창단 연주부터 꽤 오랫동안 지휘를 맡아주신 분이셨다. "그대로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세월이 그들을 휩쓸고 간 흔적이 있음에도 나에게는 그 차이보다 내가 알던 모습 그대로 인식되었던 것처럼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봐주는 것일까?

1 바이올린은 나까지 네 명이었다.

같이 악보를 보게 된 선배님은 대학교에 갓 들어가 엄청난 초보자 시절 첫 신춘음악회 연주를 하면서 2 바이올린에서 버벅거리고 있을 때 베토벤 로망스를 협연하셨던 대 선배님이시다.

선배님은 나에게 "예전에는 너무 말라서 사람 같지 않았는데 이제 좀 사람처럼 보인다"고 말씀해 주셨다.

뽀미언니로도 알려졌던 모 방송국 아나운서 선배님과 커플로도 유명했고 명성만 듣고 먼발치에서만 바라보고... 함께 연주하거나 이야기할 기회는 없었는데 이제야 인연이 연결되어 같이 악보를 보게 되었다.


악기는 그럭저럭 소리가 잘 나고 쓸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팽팽하게 튜닝을 하고, 첫 연습이 시작되었을 때, 하이든 시계교향곡 1악장의 처음은 조용하게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쏟아지는 소리의 압력을 약해진 나의 바이올린 줄이 견디지 못했던 것일까?

줄이 풀리는 소리라고만 생각했다. 어쨌든 내 악기에서 나는 큰 소리에 연습은 시작하자마자 중단되고 모두가 내 쪽을 쳐다보았다.

지휘자님께서 줄이 끊어진 거냐고 물어보셨을 때만 해도 고개를 흔들고 단순히 줄이 풀린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조용히 악기를 들고 나와 튜닝을 하려고 보니 d와 e 두 줄이나 끊어져버린 거다.

'예비줄'이 있어야 한다는 연주자로서의 기본 개념조차 까맣게 잊고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나는 첫 연습은 결국 줄을 핑계 삼아 이렇게 피해 가겠구나 생각하고 연습 참관만 할 생각으로 자리로 돌아와 앉았는데 옆 자리의 선배님께서 악기 케이스를 주섬 주섬 뒤지시더니 예비줄을 건네주셨다.

할 수 없이 줄을 받아서 다시 나와 낑낑거리며 줄을 갈았다.

그 사이 빠른 1악장이 끝나고 다행히 느린 템포의 유명한 시계 교향곡의 똑딱 똑딱 선율이 나오는 2악장부터 나의 첫 연주 연습은 이제야 제대로 시작되었다.

"1악장을 피했네요"라고 무심히 말했더니 선배님께서 "일부러 그런거 아니야?"라고 하셨는데 어쩌면 무의식의 명령으로 그 모든 상황이 순조롭게 일어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가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 때 잠깐 썼던 1/2 사이즈의 바이올린을 분해하여 d와 e현을 가져오고 옆자리 선배에게서 교체해야겠다고 지적받았던 브리지도 가져왔다.

이미 턱받침도 가져오고 어깨 받침도 가져왔었는데, 턱받침을 그렇게 바꾸고 나서부터 왼쪽 볼 아래에 늘 빨갛게 생겼던 자국이 생기지 않고 조금만 연습해도 아팠던 턱이 이제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사실은 활도... 약간 짧은 아이의 활로 쓰고 있다. 이건 당분간 선배님에게는 비밀로 해야 할 듯...(잔소리가 좀 많으신 듯 싶고 악기에도 예민하고 워낙 철두철미하신 분 같아서 사실을 알게 되면 경악하실 것 같다. ㅋㅋ)

바이올린에 내려앉은 먼지(송진가루와 섞인) 좀 닦으라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나는 그 먼지가 전혀 거슬리지 않아 두 번째 연습날도 여전히 먼지가 닦이지 않은 상태의 바이올린을 들고 있으니까 앞자리 여자 선배님께서 포장까지 되어 있어 반짝거리는 새 수건을 주셨는데, 차마 그 고귀해 보이는 수건으로 내 더러운 바이올린을 닦을 수 없을 것 같아 조용히 선배님 바이올린 케이스에 올려놓아 돌려드리고 바이올린의 먼지는 또 저 멀리 잊고 있었는데 결국 옆에 보이는 먼지를 못 견디신 선배님께서 내 바이올린을 가져다가 직접 닦아주셨다.


뒤풀이에서 선배님께서는 '먼지'일화를 말씀하시며 후배의 게으름에 대하여 '매력'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렇게 나의 게으름과 무심함은 '매력'으로 해석해 주시는 선배님을 만나게 되어 오랜 '자학'의 늪에서 빠져나와 위로받은 느낌이다.


첫 연습에 참여하고도 한참이 지나 단체 카톡에 처음으로 인사를 남겼다. 카톡을 보내고 나서 많은 상념들이 올라와서 '고향'에 대해 생각하며 지난번에 올렸던 글을 적게 되었다. 1년 전에 '나를 위한 글쓰기' 수업을 수강하며 적었던 글을 첨부하여...


"음악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다른 세계에서 헤매다가 지난 연습 때는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 같았어요.

먼 과거였을 뿐이고 연주할 일은 다시는 없을 줄 알았는데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첫 연습에 나가기까지도 용기가 필요했고 카톡에서 인사드리는 것까지도 많이 어려웠어요.

너무 늦었지만 이제 인사드립니다. 지난 연습 때도 모두들 반겨주셔서 감사했어요.

연습 시작하자마자 소리에 놀란 바이올린 줄이 두 개가 끊어지고 예비줄도 없던 저에게 긴급히 줄을 빌려주신** 선배님도 감사했습니다."


"**이를 거의 15년 만에 본 것 같네

고우 연주할 때 거의 매년 같은 풀트였지 아마..ㅎ

반가워~^^"


"악기상태로 보아선 확실히 오래 쉰 듯은 한데.. 실력이 녹슬지 않음은??~ 반갑다!! **아~ a선 g선도 있다..ㅎ"


선배님들의 답글로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오래오래 지속되어 글 속에 함께 담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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