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공무원으로 20년 근무하고 조기퇴직 후 노가다 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25년만에 인생을 거꾸로 돌려 원점으로 가서 다시 노가다에 도전한다.
지금부터 25년 전 사회초년병 시절 노가다 얘기를 해보려한다.
젊음의 절정인 23살 제대후 다음해 복학까지 5개월이 남은 시점이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감안해 알바는 필수다. 이제 막 제대해서 체력이 팔팔한대다가 기왕이면 고소득인 노가다를 첫 알바로 선택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97년 IMF가 오기 전 부산기준 노가다 하루 일당이 5만원이이었고, 수수료 제하고 4만5천원을 받았다. 노가다 하던 중 97년 말 악몽같은 IMF가 터졌다. 일당도 3만원으로 줄었고, 일자리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 마냥 힘들어지는 등 IMF 경제위기는 우리 실생활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
일반 노가다 보다 육체 노동이 한단계 위인 가정집 곰방(무거운 시멘트 등을 몸으로 나르는 것)의 경우 일당으로 7만원까지 상승한다. 25년 전의 일당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액수다. 한달을 채운후 첫 월급으로 백 몇십만원이라는 큰 돈을 수령했는데, 모친에게 그 절반인 70만원 정도를 생활비로 드렸다. 50만원은 빳빳한 수표로 드렸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당시 새벽에 출근하는 건물청소 일을 하루종일 하셨는데, 당신의 월급보다 많은 돈을 받으시고는 매우 감격해하고,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셨다.
복학을 앞두고 등록금을 벌어야 했기에 정말 열심히 일했다. 내가 다녔던 이 노가다 용역회사는 사촌형의 친구가 운영하는 인력중계업체였다. 이 용역업체에 내가 소개한 지인만 해도 20명이 넘었고, 다들 막 제대한 싱싱한 젊은 혈기에 돈도 필요했기에 안성맞춤 격으로 서로 할려고들 했다.
이들 중 짧게는 하루 이틀만에 힘들어서 그만두는 사람, 한두달까지 버티는 사람 등 천차만별이다. 나처럼 복학까지 4개월 연속으로 일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는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서 다녔다. 기억에 쉬지않고, 14일 연속 출근한 적도 있다.
당시 체력의 정점이라 그런지 하루 일한 후 매우 피곤해도 자고 일어나면 또 어느덧 새로운 힘이 금방 충전되어 연속 일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새벽까지 술마셔도 담날 출근한 적도 많았다. 내 생애 처음 큰 돈 번다는 뿌듯함으로 힘든 줄 모르고 다녔다.
이렇게 복학까지 4개월을 일했고, 학기 중이나 방학, 휴학 중에도 나의 이런 즐거운 노가다 생활은 수년간 계속되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시절 젊음의 샘솟는 에너지가 얼마나 대단했고 부러운것이며, 두번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젊은 청춘들의 전유물임을 이제서야 알게 됐다.
당시 노가다로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기억보다 매우 쪽팔렸던 경험이 뚜렷이 기억난다.
용역회사에 새벽 6시에 출근하면 그날 작업현장을 배정받는데, 하루는 내가 배정된 작업현장이 하필이면 당시 다니던 대학교 정문의 육교였다. 그날 일은 육교난간 페인트 덧칠을 위한 녹 제거작업이었다. 후리한 작업복을 입고 쪼그려 앉아서 일하고 있는데, 등교길 여자 동기들을 비롯한 학우들과 계속해서 마주쳤다. 당시 젊은 나이다 보니 얼마나 부끄럽던지, 고개를 푹숙이고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은 심정으로 숨죽여 가며 일했던 기억이다.
또 한번은 지하철 공사현장의 상판 도로에서 막대통제봉을 들고 교통통제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바쁜 출근길 만원버스에 탄 그 엄청난 시선들이 때에 쩔은 작업복을 입은 나에게로 향하는것 같은 착각에 어찌나 도망가고 싶던지!
젊었던 그 시절에는 지금과 같은 용기와 과감성이 부족한 소심하고 부끄러움많은 시절이었다.얼굴도 곧잘 빨개져서 친구들에게 '불화산'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수줍음 많은 청춘이었다.
이런 저런 기억 속에, 내 학창시절 알바는 거의 노가다였고, 든든한 용돈벌이가되어준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한창 젊었을때의 추억과 애뜻함이 있다 보니, 언젠가는 꼭 다시 경험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되어버렸다.
공무원 조기은퇴 후 25년만에 노가다를 다시 해보니,
25년만에 추억의 노가다를 한다고 생각하니 설레기까지 했다. 이 때가 공직은퇴후 여러가지 알바를 거친 후 9개월 정도 지나던 시점이었다. 그 준비 작업으로 헬스장을 다니며 체력을 길렀고, 노가다 필수 자격증인 건설안전기 초교육도 수료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다.
이렇게 가슴 두근거림을 안고 경험했던 노가다 첫날을 이해하기 쉽게 시간대 별로 적어보겠다.
- 5시 50분 기상후 간단히 씻고(고양이 세수), 손수 대충 아침 챙겨먹음
- 6시 50분까지 현장 도착(자차 가지고 감, 집 근처 배정해줘서 20분 소요)
- 7시 10분쯤 당일 할일을 배정받아 노가다 작업시작(40분 일하고 10분 정도 자율 휴식)
(첫 작업은 리모델링 중인 중학교 복도, 계단 바닥에 테이핑 제거 및 부착으로 비교적 쉬운 작업)
- 9시 30분 오전 간식 타임(라면이나 빵)
- 11시 40분 점심 식사 후딱 먹고, 1시까지 자유시간(대부분 바닥 등에서 취침)
- 1시부터 오후 작업시작(오후 작업은 스트로폼 판넬 제거 및 정리로 때약볕에서 조금 힘듦)
- 3시 50분에 작업 종료
공직은퇴후 다양한 현장에서 했던 노가다 작업들
오전 작업은 실내에서 편했는데, 이렇게 편한 작업은 사실 드물다. 오후 작업에서는 때약볕에 힘들게 삽질하고, 무거운거 나르고 하니 땀이 비오듯 쏟아져서 몸전체가 축축히 젖었다. 때약 볕에 얼굴도 벌겆게 익어버렸다.
적당히 힘들고, 적당히 재밌고, 적당히 시간도 잘갔다. 마치고 대충 씻고 집에 오니 4시 30분이었다. 뿌듯하게 하루일과를 마무리 했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25년만에 경험한 노가다가 끝났다.
노가다와 관련한 정보와 팁....
1. 노가다 관련 정보들...
- 일 당 : 부산기준 하루 13,4만원, 용역업체 수수료와 세금 제하고 12,3만원(주단위 입금)
- 작업시간 : 오전 7시부터 오후 4,5시(오전에 간식 20분, 점심시간 1시간)
- 준비물 : 안전화(안전모, 장갑 등은 현장에서 지급)
2. 건설안전기초교육 수료 방법
노가다할려면 필수 이수자격이 있는데 바로 건설안전기초교육이다. 지역별로 교육장이 있는데 총 4시간의 교육만 수료하면 자격증이 나온다. 이 자격증을 용역업체에 제출해야 비로소 노가다를 할수 있다. 기초교육 비용은 6만원인데, 3개월간 실업증명하면 무료로 받을수 있고, 나이가 60세(?)이상이면 또한 무료교육이 가능하다.
3. 기타 팁들
당일 현장에 용역업체에서 저포함 8명이 배정되었는데 내가 제일 젋었다. 대부분 60대였고, 외국인이 1명 있었다. 예전에는 젊은 사람이 많았었는데, 요새는 거의 없다고 한다. 노가다 작업이 생각보다 위험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물론 그날 현장에 따라 다소 위험하고 매우 고된 작업장에 배치될수도 있는데 어디까지나 복불복이다. 다만 대부분의 작업환경이 좀 지저분한 편이다.
그리고 노가다가 하루하루 이현장 저현장 돌아다니는 떠돌이기 때문에 혼자 열내서 일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시간이 채워져야 퇴근할수 있으므로 서두르거나 혼자서 튀면서까지 열심히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첫날 선두에 서서 빡시게 일하니까 어르신들이 다들 말렸었다.
공무원때보다 노가다가 맘은 편하다.
일단 하루 경험이지만 재미가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머리쓰는 일보다 손으로 직접 일해서 성취하는 일에 훨씬 큰 만족을 얻는다. 공직 있을때 가졌던 어떤 소속감이나 부담감에서 해방되어 내가 하고 싶을때만 아무생각없이 일할수 있어 오히려 맘은 더 편하다.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듯이, 나는 공무원의 안정감보다 프리랜서의 자유로움이 더 좋다.
당분간 주 2-3일 정도 계속 일할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매월 10일 정도 출근에 월급으로는 120만원 정도이다. 노동을 통해 얻는 만족감도 좋고, 용돈도 되니 좋다. 한마디로 워라벨이 좋은 일이다.
은퇴 후에는 휴식과 노동의 발란스가 굉장히 중요하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둘다 하기 싫어진다. 회사 관두기전 은퇴계획 세울때 프리랜서처럼 일하고 싶을 때 주2일 정도만 할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는데, 이 노가다도 일단 후보군에 포함이다.
이렇게 주 2일은 일하고, 나머지 주 5일은 또 다른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쉬거나,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놀거나, 아무것도 안하거나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일이 고프면 일을 하고, 휴식이 고프면 놀면 된다. 이게 바로 파이어족의 가장 핵심 시스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