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다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로 이어지는 지오디 "어머님께" 라는 노래 가사말처럼 우리집은 찟어지게 가난했었다. 7,80년대 가난한 시절, 가난한 동네에서도 최상급 가난을 자랑하는 가난쟁이였다. 원래부터 허약하게 태어난 몸에 가난까지 더해져 먹는게 부실한대다가 입까지 짦아서 어렸을때부터 빼빼로처럼 깡마른 몸뚱아리로 지내야만 했다.
이 몸매는 입대할때까지 이어져 군대 신체검사할때 그때 171cm에 55키로정도 나가지 않았다. 바람불면 날라갈거 같은 갸날픈 몸매를 군대에서 받아 주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고등학교 2학년때 위궤양으로 처음으로 응급실에 1주일 입원하기도 했고, 평생 위가 약해서 소화기능도 현저히 떨어져 몸에 살이 붙을 기회가 없었다.
한술 더떠 타고난 힘도 운동신경도 없는 편이어서 이 저주받은 몸뚱아리는 건장한 남자 몸과는 거리가 먼 거친 세상을 살아나가기엔 부적합 대상인 셈이다.
약간의 반전들..
그런데 군대에서 약간의 반전이 일어났다. 규칙적인 생활과 식사때문인지 키도 커지고, 몸에 살도 좀 붙으면서 성인다운 체격이 갖쳐줬고, 군대에서 헬스도 꾸준히 시작해 나갔다.
단체기압으로 선착순 이라는 얼차려를 시키면, 수십명을 다 제치고 수차례 제일먼저 들어오는 상상하기 힘든 경험들로 이어졌다.
제대하고 막노동 판에서 일할 때도 남들은 대부분 며칠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는 몇 년을 버티며 이어갈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지금 대략 175에 72키로 몸무게는 십수년째 변함이 없다.
그러다 소방공무원이 되었고, 입사초기에는 대부분 행정부서에 근무했기에 운동과는 담을 쌓고 보냈다. 회사 출퇴근도 승용차로 하다보니 최소한의 생활움직임도 제한적이어서 운동과 몸관리는 딴 세상이야기처럼 보냈다.
내 나이 38세 행정부서에서 출동부서로 옮기면서 비로소 운동과 함께하는 삶으로 바뀌게 되었다. 첨에는 집 뒷산 1/3 등산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매일 산하나를 넘어서 출퇴근할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 산 정상에 있는 죽음의 1,000계단을 매일 초시계 재어 테스트하는 등 운동을 꾸준히 했다. 동시에 틈틈히 헬스도 병행했다. 그러다 보니 헬스카페는 어느덧 내 최애 카페가 되었고, 닭가슴살도 몇 박스 먹고, 단백질 보충제도 수도 없이 먹었다.
평생 허약한 몸뚱아리에서 약간의 운동으로 뭔 자신감이 생겼는지, 비번날이면 뭔가 힘든 육체적 노동을 해보고 싶은 로망이 그때부터 스물스물 자라났던 것 같다.
이런 연유인지 퇴직후 하고싶은 일로 노가다, 택배상하차, 농어촌 알바, 이사짐 알바, 물류센터 알바 등을 꼽은 것인지 모른다. 내가 비록 허약한 몸으로 평생 보내왔지만, 지금은 힘든 육체적 노동도 거뜬히 해낼수 있다는 오기같은 것이작용한 모양이다.
이런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처음으로 실행했던게 지옥의 알바라고 불리는 알바의 끝판왕 택배 상하차 알바 도전이었다.
속으로 "니가 그렇게 힘들어? 얼마나 힘든지 마 함 해보자!" 이런 심산이었다.
택배 상하차 - 과연 지옥의 알바인가?
사람에 따라 웬만한 노가다가 양반으로 보일 수도 있는 정말 정말 힘든 아르바이트라고 한다. 북한에 아오지 탄광이 있다면 남한에 택배물류창고가 있다는 말도 농담처럼 하기도 한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로 인하여 알바 하다가 중간에 돈이고 뭐고 도망가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소문을 익히 들었다.
과연 얼마나 힘들까하고 언젠가는 몸소 체험해 보고 싶었고, 은퇴전에 세운 계획의 하나로 숙제처럼 해결해야 될 일이기도 했다. 마침 집 근처에 택배 상하차 알바 구하기에 주저 없이 지원했다.
퇴직하고 1개월 후 드디어 말로만 듣던 택배상하차 알바에 도전하는 것이다. 뭐 이 일자리야 항상 구인난에 시달리는 알바다 보니 언제든지 지원만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 받으며 근무할 수 있다.
내가 일하는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오전반 근무다.
위 사진처럼 각 지방에서 트레일러에 실려온 택배물을 레일 양편으로 한명씩 서서 내리는게 택배 하차이고, 반대로 레일로 타고온 택배 물건을 트레일러에 차곡차곡 테트리스 처럼 쌓는게 택배 상차이다.
2인 1조로 손발을 맞춰가며 하는 일인데, 일 자체는 지극히 간단한 단순노동이다.
택배 물건은 종이서류 처럼 가벼운게 있는 반면, 위 사진처럼 쌀포대, 과일박스, 김장박스 처럼 무거운 것들로 천차만별이다.
사진 왼쪽에 보는게 내가 실제 하차했던 트레일러인데, 보기와 달리 깊이가 안쪽으로 7-8미터 이상 상당히 길며, 물건 3,000개 정도가 실려있다.
둘이서 호흡 맞춰가며, 빠른 속도로 쳐내면 1시간 정도 걸린다.
상하차 알바는 시간 싸움이다. 그날 물량을 정해진 시간에 처리해야하기에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 쉬는 시간은 트럭1대 분량 마치고 다음 트럭 들어오는, 몇 분 안되는 찰나의 시간 뿐이다. 심지어 차가 들어오는 동안 라인에 아직 물류가 쌓여 있는 경우 그나마 짦은 쉬는 시간조차 없다.
바로 이 점이 상하차 알바가 모든 육체 노동직을 통틀어서 1, 2위를 다투는 최악의 노동 강도를 자랑하는 이유이다.
언제 한번은 하루짜리 단기 상차 알바에 갔는데, 2시간 30분 동안 쉬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데, 순간 쌍욕이 튀어나오면서 레일을 긴급으로 멈추고, 작업반장에게 따졌다. "최근에 택배 노동자 죽음으로 택배현장이 휴식 규정을 엄격히 준수한다고 하는데, 여기는 왜 쉬는 시간을 지키지 않느냐?"며 따졌다.
그제서야 반장이 죄송하다며 조금 쉬어라고 했다. 하긴 밀려드는 택배물건을 정해진 시간에 맞출려면 말딴 작업반장인들 무슨 힘이 있겠는가? 작업자들에게 적정한 휴식을 보장하려면 사람을 더 구해서 휴식 로테이션을 돌려야 하는데 사람 무한정 채우는게 쉽지 않겠지 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택배상하차, 거기다 조금 난이도가 쉬운 택배분류도우미까지 3개월 정도를 경험 했다.
40대 후반에 오래만에 몸쓰는 일을 해본 결과 체력적으로야 어느정도 버틸수 있을것 같은데, 문제는 약해진 인대와 관절이 버티지 못한다.
오래하다 보니 손가락 인대가 늘어나고, 팔꿈치 엘보우 통증이 심해졌으며, 허리가 펼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아마 무거운 과일박스를 들어 올릴때 허리에 하중이 많이 걸리다 보니 탈이 난 모양이다. 확실히 내 몸은 젊을때와는 다름이 느껴졌다.
차 한대 상하차 하고나면 추운겨울에도 땀으로 온몸이 비오듯 한다.
오랫만에 몸쓰는 일을 하니 살아 있음을 몸소 느끼고, 육체 노동의 쾌락이 이런것이구나 하고 느낀다.
파이어족의 묘미란?
내가 생각하는 파이어족의 묘미는 "직장에서 벗어났으니 편하다, 여유가 있다" 이런것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사람마다 조기퇴직후 추구하는 방향은 다를것이다.
내게는 은퇴 전후에 내가 주도적으로 계획했던 바를 하나 하나 실현해나가는게 더 큰 은퇴의 묘미로 다가온다. 행복의 최고봉은 내면의 행복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수천번 고심 끝에 내가 하고 싶은 방향과 계획을 정했고, 실제로 하나하나씩 이뤄가면서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안도감이 결국 순도높은 내면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