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가 태어날 무렵의 바쁜 일상들...
첫 아이를 가진게 결혼 4년만이었다. 수차례의 유산으로 내 인생에 과연 자식 운은 없는건가 하는 좌절끝에 가진 자식이니 그 기쁨이 오직했으랴? 다행스럽게 2년만에 이어서 둘째를 가지는 축복도 뒤따랐다.
그로톡 원하던 아이를 둘씩이나 가졌건만, 하필 그 즈음이 공직생활 중 가장 바쁜 때와 겹치는 시기였다.
와이프가 전업주부였지만, 어린자녀 키우기에는 여러모로 악 조건이었다. 사는 집이 산동네 고바위 빌라여서 주변에 변변한 마트도 없고, 애들 산책시킬만한 공간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런 악조건속에 남자 아이 둘을 키우는게 보통 일이 아니란것 쯤은 알고 있었다. 아빠로서 육아를 도와주어야 마땅하나, 오히려 직장생활은 매일 퇴근이 10시를 넘어가는 바쁜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때 바쁜 업무중에 우연히 잠언시집에서 작자미상의 한 시를 읽게 되었다.
시에서 전하는 교훈이 당시 내 생활처지에 빗대어 너무 공감되어서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나중에는 한글로 직접 워드쳐서 프린터해 가지고 다녔을 정도였다. 바쁜 생활로 아이들과 함께할 소중한 추억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서글픔에 시가 전하는 교훈을 평생 잊지말자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 시를 공무원 게시판에 올려, 여러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도 했고, 시의 메세지가 너무 좋아서 여기저기 이 시를 알리고 다녔다.
이 기억이 내나이 47세에 초등학생 자녀 2명을 두고 때이른 조기퇴직을 결정하는데 어느정도 영향이 있었던것 같다.
조기퇴직 후에도 항상 이 시가 기억에 남았었는데, 혹시나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이제는 제법 유명한 시가 된듯 여기저기서 많이 보였다.
잠언시 "성장한 아들에게"
내 손은 하루 종일 바빴지
그래서 네가 함께 하자고 부탁한 작은 놀이들을
함께 할 만큼 시간이 많지 않았다.
너와 함께 보낼 시간이 내겐 많지 않았어.
난 네 옷들을 빨아야했고, 바느질도 하고, 요리도 해야했지.
네가 그림책을 가져와 함께 읽자고 할 때마다
난 말했다.
"조금 있다가 하자, 얘야."
밤마다 난 너에게 이불을 끌어당겨 주고,
네 기도를 들은 다음 불을 꺼주었다.
그리고 발끝으로 걸어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지.
난 언제나 좀더 네 곁에 있고 싶었다.
인생이 짧고,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 갔기 때문에
한 어린 소년은 너무도 빨리 커버렸지.
그 아인 더 이상 내 곁에 있지 않으며
자신의 소중한 비밀을 내게 털어 놓지도 않는다.
그림책들은 치워져 있고,
이젠 함께 할 놀이들도 없지.
잘 자라는 입맞춤도 없고, 기도를 들을 수도 없다.
그 모든 것들은 어제의 세월 속에 묻혀 버렸다.
한때는 늘 바빴던 내 두손은
이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하루 하루가 너무도 길고
시간을 보낼 만한 일도 많지 않지.
다시 그때로 돌아가, 네가 함께 놀아 달라던
그 작은 놀이들을 할 수만 있다면...
거꾸로 사는 인생..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녀를 키우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 어른들의 인생은 엇박자다.
어린자녀들을 케어하는데 많은 손이 필요할 때는 부모들 역시 한창 바쁠시기여서 함께 할 시간이 부족하다. 반대로 애들이 성인이 되어서 부모들 손이 필요 없어질 때는 그제서야 부모들도 한가해지는 것이다.
그래도 외국에는 남편들의 출산휴가 등도 잘 정립이 되어 나은 편이다. 내가 출산했을 때는 출산휴가가 단 3일이었고, 주말 겹치면 단 하루에 불과했다. 긴 출산휴가나 휴직 등은 꿈도 꾸지 못했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 해도 여전히 경직된 회사생활에서 여러가지 눈치로 휴가 쓰는건 쉽지 않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회분위기가 독박육아 등을 양산하면서 저출산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자녀를 키우는 등의 관점에서는 우리는 인생을 거꾸로 살고 있다. 시의 화자 역시 우리들의 모습과 다를바 없다. 젊었을때 바쁜 생활로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해 뒤늦게 후회하는 심정으로 그때로 돌아갈수 있기를 희망한다. 노년이 되어서는 아무것도 할일도 없고, 아무 사람도 곁에 없는 쓸쓸함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시기에 따라서 무엇이 중요한 지는 각자 판단할 문제이긴하다. 단지 나는 아이들이 한창 커가는 이 시기에 안정된 직장과 명함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은퇴후 노년이 되어 여기저기서 찬밥신세 취급받는 그때, 내 입지를 보장해 주는 든든한 명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살고 있는 집 주변에 작은 건물을 통째 쓰는 회사 사무실이 있다. 출퇴근 할때 보면 회장으로 보이는 듯한 80대는 족히 되어 보이는 노신사가 전용기사와 비서인 듯한 사람무리의 호위를 받으며 당당하게 사무실로 걸아가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허리는 굽었지만, 당당함 넘치는 노신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노년이 되었을때는 여러사람들과 특히 젊은 에너지를 받을수 있는 곳에 있기를 원하며, 그때야말로 끗발있는 명함이 전정 필요한 시기라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다.
서둘러 조기퇴직했던 이유
명퇴 결정을 회사에 통보한 후 동료, 지인들로부터 백수십통의 전화를 받았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가 몇 살이냐"를 가장 먼저 물어본다. 아이가 어리다면 나중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울거라는 걱정때문이다. 충분히 이해는 된다.
그러나 나는 좀 달리 생각했다. 아직 자녀 두명 다 초등학생이라서, 조기퇴직하고 시간부자로 살면서 언제든지 자식들과 "작은놀이"들을 같이 할수 있는 장점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더 늦게 은퇴하거나 혹은 정년퇴직하면 시간적 여유가 있어도 아이들과 함께할 기회도 이미 사라진 후이다.
자녀 교육관 또한 나는 인서울이니 해외유학이니 하는 것들에 관심이 없다. 그냥 살고있는 지역의 국립대 정도면 대만족이다. 같은 지역에 평생 부대끼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언젠가 연예인 사망기사에 보면 그 자녀들이 전부 먼 타국에 있어 임종 지켜보는건 커녕 장례도 며칠 미룬다는거 보면 안타깝다. 물리적 공간의 제약은 마음도 멀게한다. 좋은 학벌과 직장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돈이 부족하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부자로 사는게 더 행복할수 있다는 것을 내가 몸소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이런 dna도 물려주고 싶다.
그러니 과외비나 사교육비는 전혀 내 계획에 없다. 그래서 조기퇴직을 결정하는데 어린자녀는 전혀 걸림돌이 아니었고, 오히려 어렸기 때문에 은퇴를 서두른 것이다.
23살 제대후 시작한 노가다를 시작으로 조기퇴직할때까지 무려 25년간 계속 일을 했다. 이정도면 사회와 가정에 내 역할을 할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정년퇴직하면 나 자신의 인생을 즐길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을것 같다. 무엇보다 그때까지 여전히 건강하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이런 생각으로 나는 남들 다하는 정년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내 스스로 은퇴시기를 결정했다.
먼저 나와서 인생의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고, 남은 인생은 도전적이고, 의미있고, 재미있는 일로 채워나가는 삶을 선택했다. 어찌보면 내 성향상 조기은퇴는 숙명인것 같다.
내 기준 40대 중반은 조기퇴직하기 딱 좋은 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