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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무원파이어족 Jun 28. 2023

출동이 끝나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20년 소방관의 생활을 끝내고, 제2의 인생게임에 새롭게 도전한다.

27살에 소방공무원이 되었다.


 어렸을때부터 소방관이 장래희망이었거나, 직업적 사명감을 가지고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서 공무원 공부를 했을뿐이고, 경쟁률 높은 일반직들은 죄다 떨어졌을 뿐이고, 상대적으로 수월했던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을 뿐이다.


이렇게 우연히 소방관이 되었다.


소방관으로 20년 근무하면서 사람들이 익히 알고있는 불끄는 화재진압대원으로 5년, 119 구급대원으로 7년, 일반행정직으로 8년 정도 근무했다.


돌이켜봤을때 현장출동부서와 행정부서에 거의 반반씩 두루 근무했던게 다행스럽게도 마치 두개의 직업을 체험한것 마냥 인생에 큰 이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내가 적었던 여러 글에서 공무원 파이어족으로써의 얘기는 주로 행정직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오늘은 진짜 119 소방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소방관으로 살았던 지난 20년간을 핵심단어로 표현하면 '출동'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화재출동", "구급출동, "구조출동"!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출동 벨소리!

사실 이 출동 벨소리는 20년 전에는 갑가기 들으면 심장이 떨어질것 같은 둔탁한 기계 진동음이었으나, 차츰 개선되어 지금은 컴퓨터 아나운서 목소리로 많이 순화되었다.


 이 벨 소리하나가 출동의 시작이다. 벨소리를 들으면 아드레날린이 나도 모르게 솟구친다. 초를 다투어 소방복으로 갈아입고, "앵앵" 사이렌을 울리며 거리의 무법자 마냥 모든 차들을 물리치고 나가는 소방차에 타고 있노라면 전쟁터로 향하는 군인처럼 긴장감도 최고조에 이른다.


"오늘은 또 어떤 출동일까? 제발 별 출동이 아니길! 무사히 안전하게 귀환해야지" 


 일단 소방서에 출근하는 순간부터는 언제 울릴지 모르는 출동 벨소리에 긴장의 끈을 놓을수 없다. 밥을 한숟갈 먹다가 출동하는 것은 양반인 경우고, 화장실에서 볼일보다 중간에 단수하거나 끊고 나가는 경우도 허다하고, 제일 고역은 출동후 온몸에 젖은 땀을 씻기 위해 샤워하고 있는데 또 다시 출동이 걸려 젖은 몸을 닦지도 못하고, 속옷도 걸치지 못한채 출동할 때의 찜찜함이다.


출동이 많은 날은 예전 구급대원할때 하루에 24번 출동한 적도 있고, 출동이 없는 날도 있지만 출동을 대기하며 느끼는 긴장감은 항상 비슷하다.


무엇을 하든 언제 울릴지 모르는 무심한 이 출동벨소리의 압박감을 가친채 대기한다.


 비번날 역시 풍수해, 태풍, 대형산불 등이면 어김없는 비상출동이 연례행사처럼 있기는 마찬가지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출동이라는 긴장속에서 살아야하는게 당연한 숙명이다.


  퇴직 2,3년 전쯤에 자다가 새벽에 강원도 고성 대형산불 현장 출동을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여기 부산인데 이 새벽에 강원도까지 출동하라는 걸 듣고 이게 꿈속인지 현실인지, 자다가 왠 봉창뚜드리는 소리라냐며 놀랬다.

 그 새벽에 눈비비고 일어나 강원도 속초까지 출동해 이틀간 밤새며 산불진화에 참여했었다. 당시 강원도 고성산불 대형재난은 전국에 생중계되며 전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산불진화도중 경기도 주민들의 열렬한 격려와 응원을 받은 것은 참으로 감사한 경험이었다. 산불진화가 끝나고 나서는 부산 소방관출신으로 강원도지사 상을 받는 전례없는 특별한 경험도 했다.


이렇게 출동은 소방관과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또 하나 소방관의 삶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건 트라우마다.


 나 역시 소방관으로 겪은 몇가지 트라우마가 있는데, 퇴직하면서 완전히 없어진것도 있고, 아직 남아서 평생 가지고 갈것 같은 것들도 있다.


 소방관으로 근무할때 항상 느꼈던 트라우마가 있다.

초임병 시설 화재현장에서 겪은 트라우마인데, 퇴직할때까지 화재현장에서는 항상 지속되었다.


 어느날 아침 새벽에 주택화재 현장에 출동했다. 도착해보니 화마는 이미 온 집안을 집어 삼켰다. 내부에 사람이 있다면  살아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였다. 서둘러 화재진압을 마치고, 혹시나 내부에 있을지 모를 인명검색을 실시했다. 시커먼 화재연기로 칠흙 같은 어둠속에서 오로지 손끝의 감각하나로 훑어 나가며 요구조자를 찾는다.


 출입구에서 시작해서 거실을 거쳐 안방으로 이어졌는데, 안방에 있는 침대위를 더듬는 순간, 손끝에 느껴지는 물컹한 느낌! 이 상상하기 싫은 느낌은 혹시나 사람일지 모른다는 불길함과 공포감이다.


극도로 긴장한채 어둠속에서 양손을 이리저리 더듬어 사람임을 확신하고, 무전으로 동료 소방관들을 호출한다. "여기 사람이 있다. 요구조자를 발견했다" 동료들과 요구조자를 구조하여 밖으로 끌어내서 보니 이미 시커멓게 온몸이 그을려 살아있을 확률은 없어 보인다. 절차에 따라 구급대원에게 인계한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한 남자가 새벽에 화재로 시신이 된 것이다.


 이 현장을 경험한 이후로 화재현장에서 화재진압후 인명수색할 때마다 내 손끝에 시신의 감촉이 갑자기 느껴질것 같은 왠지모를 공포감이 생겼다. 소방관으로써 자격미달이라고 욕들을 만한 깊은 트라우마가 부끄럽게도 생긴것이다.

 위험한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가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 근대 이상하게 불 다끄고 뒷 수습하는 과정이 나에겐 기피하고 싶은 공포스러운 순간이 된 것이다.





 또 다른 트라우마도 있다. 구급대원으로 7년 근무하면서 생긴 자살트라우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중 자살률 최상위권이라는 사실은 언론을 통해 누구나 알고 있을테지만, 실제로 자살사고가 너무나 많이 일어난다. 119 구급대원으로 안타깝게도 수많은 자살현장을 경험했다. 고등학생부터 80대 노인까지 연령별로도 다양했고, 자살방법도 참가지각색이었다. 


 구급출동 벨소리를 듣고 구급차에 탑승한 다음 무전으로 출동내용이 '자살'이라고 뜨는 순간부터 머리속이 복잡해진다. 다른 출동과는 확연히 다른 긴장감이 몰려온다. 누굴까? 왜? 무슨사연이 있기에? 온갖 부질없는 상상이 나도 모르게 시작된다. 자살자의 집 근처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미 주변은 특유의 암울함이나 스산함에 물들어 있다. 마치 망자의 한이 주변 공간을 지배하는 듯하다.


자살자의 스토리를 듣게 되면 정말 드라마처럼 믿기 힘든 경우도 참 많다. 사연없는 죽임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처구니 없이 술먹고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았다.


 첫 자살 출동이 젊은 여성이었는데, 그 기괴한 사연과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 된 탓인지 이후 몇 달동안 잠을 제대로 못잤다. 공포영화 마니아였던 내가, 이후로 지금껏 공포영화를 멀리하게 되었다.


 또한 수많은 자살현장에 출동하다 보니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에 처하거나 궁지에 몰리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구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인들 중에서도 좀 어려움을 겪으면 행여나 안좋은 선택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과대망상 같은 염려증이 생기기도 했다.


 출동의 압박감과 이런 트라우마들, 그리고 야간근무 등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소방관 생활할 때는 항상 피곤했고, 수면장애도 심해서 술과 수면유도제에 많이 의존했다.

 특히 야간근무하고 온 다음날은 물에 젖은 휴지처럼 온몸이 노곤하고 무기력해서 만사가 귀찮았다.





그러나 이런 고달팠던 기억들도 조기퇴직하면서 생각보다 모든게 빨리 잊혀졌다. 이미 말년휴가 때부터 시작된 여러가지 알바들로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얼마전까지 소방관이었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억에서 빠르게 지워져갔다. 대신 주기적으로 꾸는 꿈이 있는데, 내 주변이 불바다가 되어 불을 꺼도 꺼도 확대되기만 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인데, 현직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반복되는 꿈이다. 어렸을때 누군가에서 쫒기는 꿈을 꾸면 항상 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맘대로 움직여 지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행정부서에 근무할때 머리가 그렇게 안돌아가느냐며 상사로 부터 난생 처음 욕먹었던 일...

수천번이 넘는 구급출동에서 실제 죽어가던 사람도 살려봤고, 수많은 희로애락을 경험했던일...

대형화재 현장부터 사소한 구조까지 그 수많은 재난현장과 거기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과 사연들...


이젠 모두 추억이 되었다. 소방관의 추억....


이제 나의 인생 전반기, 출동인생은 막을 내렸다.


퇴직하고 나서 항상 짓눌렀던 몸의 피로감이나 수면장애는 씻은 듯이 나아졌다.





제2의 인생은 소방관이었던 전반기 인생과 확연히 다를 것이다.


퇴직전 이미 하고 싶은 일과 인생목표를 버컷리스트처럼 작성해놓았다.


27살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던 시점으로 시간을 거슬러 가서 다시 인생을 시작할 계획이다. 저 밑바닥 생활부터 작은 회사라도 ceo까지 인생을 다양하게 살아볼 생각이다.


노가다, 택배상하차, 이삿짐 알바 등 남들은 잡일이라고 기피하지만, 나는 땀내나는 이런 일들을 게임처럼 즐길것이다.


누가 뭐라해도 내 인생 게임의 법칙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고, 남 이목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앞으로 남은 인생의 목표 역시 게임같은 인생을 사는 것이다. 어릴적 오락실의 동전 게임처럼 설레고 재미있는 일들로만 채워 나갈 것이다.


이런 일들이 공직에 계속 있었던들 가능이나 했겠는가?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신나는 게임이 기다리고 있을까?


바야흐로 출동은 끝났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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