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웬만한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송혜희라는 이름을 못 들어봤을리 없다. 현수막 속에서 항상 밝게 웃고 있는 고등학생의 모습. 90년대 옷차림과 요즘 십 대에 흔치 않은 이름 글자들이 그 아득한 실종의 세월을 짐작케 하곤 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크고 작은 시사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혜희씨의 실종 사건에 관심을 가져봤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방송에서 무엇을 다룰까 고민하던 몇 년 전 어느 오후에,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플래카드가 그날따라 새롭게 보였던 것이다.
실종사건을 취재할 때 누구보다 가족이 많은 것을 알겠지만 섣불리 연락을 하지는 않는다. 본격적인 취재에 앞서 그간 보도된 내용을 검토하고 자료조사를 먼저 해야 한다. 큰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방송국에서 섣불리 연락을 하면 희망을 품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없음을 뒤늦게 알면 가족들은 더 깊은 나락에 빠져들고 만다.
그때도 자료들을 먼저 살폈다.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실종 사건중 하나인만큼, 온갖 언론과 인터넷 게시판에는 혜희씨의 실종에 관한 추정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두는 한 가지 결론으로 이어졌다. 1999년 2월 13일 추운 겨울밤에 혜희씨를 따라 내린 남자의 정체를 지금으로서는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혜희씨는 시내에서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집은 인적이 드문 시골 마을에 있었고, 버스정류장은 집에서 1km 떨어져 있었다. 집에 가기 위해서는 깜깜한 논밭길을 한참이나 걸어야 했다.
혜희씨가 내릴 때 버스에는 한 30대 남성이 타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그에게 술냄새가 났다고 기억했다. 그 남자는 혜희씨를 따라 내렸다. 그리고, 혜희씨는 영원히 실종되었다.
이 사건을 얘기할 때면 항상 경찰의 초동수사를 지적하게 된다. 범죄 가능성이 짙었지만 경찰은 사건 직후 용의자 몽타주 작성이나 탐문을 하지 않았다. 실종이나 범죄가 아니라 가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적거린 것이다.
하지만 이 비극은 그때가 시작에 불과했다.
혜희씨 부모는 딸을 찾기 위해 1999년 이후 인생을 모두 걸었다. 전국을 다니며 전단지를 돌리고 플래카드를 걸었다. 섬마을부터 집창촌까지 안 가본 곳이 없었고, 혜희씨를 목격했다는 온갖 연락들을 한줄기 희망으로 믿고 달려갔다. 물론 모두 거짓이었고 일부는 장난이었다.
그런 절망 끝에 2006년, 혜희씨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종편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 2010년대 중반 혜희씨 아버지의 모습이 나온다. 작은 체구에 벗겨진 이마, 색이 바랜 점퍼를 입은 아버지는 낡은 트럭을 끌고 혜희씨를 찾는 전단지를 싣고 다닌다.
그의 눈물샘은 딸이 사라진 지 십 년이 넘어도 마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제보를 듣고 달려갔다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는 울고, 집에서 아내가 숨져있던 모습을 회상하며 울었다. 그 모습을 볼 때까지도 나는 눈물이 안 났는데 그가 서 있는 배경에 적힌 ‘가훈’을 보고는 뭔가가 치밀었다. 나의 딸 송혜희는 꼭 찾는다. 이것이 가훈이었다.
그로부터 또 10년이 흘렀고, 우리 주변의 ‘송혜희를 찾습니다’ 현수막들은 때가 되어 색이 바랠 때쯤이면 다시 새것으로 바뀌어 걸려 있었다. 돕는 사람도 없이, 폐품 수집으로 생계를 잇는 아버지 송길용씨의 손길이었다.
아버지의 트럭
자식 잃은 부모의 집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직접 뵙고 이야기를 들어본 분들 중, 멀리는 전태일 열사나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부터,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님들.. 김용균씨 어머니나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 등.. 자식의 상실은 부모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리기도 한다.
자식을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은 없다. 그저 스무해 안팎, 그 아이들이 잠시 곁에 있다가 없어졌을 뿐인데 그 엄마들은, 그 아빠들은, 자식의 빈자리를 평생 바라보며 산다. 바람이 불면 내 자식이 엄마가 그리워 온 것이라고 믿고, 비가 오면 내 자식이 서러워 우는 거라고 그들은 믿는다.
이제 우리는 혜희씨를 찾는 그 현수막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혜희씨 아버지씨가 지난 8월 26일,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트럭을 운전해서 가다가 건너편에서 오는 대형 덤프트럭과 충돌했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 그의 영혼이 지친 육신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혜희를 찾아야 하는데... 아내 묘소 앞에 혜희를 데리고 가서 혜희가 살아있다고, 내가 찾았다고 인사해야 하는데... 그런 한스러운 상념이 그의 마지막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이제 아내와 딸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홀가분했을까.
어느 범죄자의 악행이 20여 년에 걸쳐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딸을 죽였다. 부디 그 범죄자가 어딘가에서 이미 고통스럽게 죽었기를, 혹은 천벌을 받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내가 비록 종교는 없지만 그보다 조금 더 크게 기도하고 싶다. 혜희씨 언니, 동생의 죽음으로 부모가 부재하다시피 한 삶을 힘겹게 살아왔을 언니. 그분이 부디 지난 20여 년간의 상실을 잘 치유한 뒤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평온한 삶을 살아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