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마약범의 작업>에서 이어집니다.
최씨는 머리를 굴렸다.
이진구를 ‘제끼고’ 이병주의 편지를 훔쳐서 경찰에 알릴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경찰이 솔깃해할 만큼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내려면 일단 이진구의 협조가 필요했다.
최씨의 구상은 이랬다. 이진구를 통해 이병주에게 범죄 사실을 더 받아내고, 자신은 이 내용을 아는 경찰한테 제보한다는 것. 그렇게만 되면 최씨는 형량을 줄일 수 있고, 영치금 한 푼 없는 빈털터리 이진구는 돈을 벌 수 있었다. 중대범죄 신고시 포상금 500만 원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진구의 입장에서도 구미가 당길 것이 틀림없었다.
예상대로 이진구는 최씨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뽕’을 하며 감옥을 들락거리는 마약범 중에는 경찰과 친분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공생 관계다. 마약범들은 귀동냥한 범죄 정보를 제보해 자신의 재판에 도움을 받으려 하고, 경찰은 전국 교도소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이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중요한 첩보를 얻고자 한다.
최씨는 이런 이유로 아는 경찰이 많았다. 이진구와 거래가 성사되자 즉시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의 친한 형사에게 제보를 날렸다. 미제 살인사건을 엉뚱하게 마약수사대가 맡게 된 것이다.
쌍무기수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형사들은 최씨의 제보를 받고도 쉽사리 믿지 않았다. 질 나쁜 마약범들이 정보를 조작해 장난치는 일이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보 내용을 사건 파일과 대조해 본 뒤 생각이 달라졌다. 이병주가 이진구에게 보낸 편지에 적혀있는 정보가 실제 사건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2004년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가스검침원이라며 들어온 남자가 여성 2명을 살해했고, 사건 직전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주고 나갔으며, 칼을 무차별적으로 휘둘러 시신이 많이 훼손되었다는 등, 꾸며내서는 절대 일치할 수 없는 정보가 편지에 적혀있었다.
숱한 살인을 한 인간이 갑작스러운 참회와 반성으로 순수한 자백을 하리라고 믿는 경찰은 드물 것이다.
서울청 마약수사대 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병주를 처음 대면하면 길고 복잡한 수싸움이 시작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사들은 단단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면회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병주는 순순히 자신의 범죄 행각을 털어놓았다. 변명도 없는 깔끔한 시인이었다. 오히려 너무 쉽게 자백을 하니 형사들 입장에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들은 앞으로의 조사 절차를 알려주고 이병주에게 영치금을 몇 푼 넣어줬다.
자백을 확보하고 돌아온 후, 마수대 형사들은 큰 사건을 거의 해결했다는 자부심과 노련한 범죄자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건 아닌지 하는 불편한 의구심 사이에서 갈등했다. 이러한 의심 속에서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었다. 철저한 수사 후 검찰에 사건을 넘기는 것.
그들은 방이동 현장검증을 거쳐 이병주를 여성 2명 살인 및 절도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긴 재판을 거쳐 2011년 5월 20일, 이병주에게 최종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석촌동 살인사건 판결에 이어 또 한 번의 무기징역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출소할 수 없는 절대적 형량. 기적이 일어나 감형이 끝없이 반복되어 어느 날 가석방 결정이 내려진다 해도 그 순간 다음 차례의 무기징역이 시작되는, 대한민국 역사상 드문 쌍무기수는 이렇게 탄생했다.
양심고백
잠시 시간을 2004년으로 돌려보자.
살인사건이 계속 일어났지만 범인이 잡히지 않아 시민들이 불안에 떨었던 그해 더운 여름날.
서울 명일동의 한 아파트에서 49세 여성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범인은 피해자의 목 주변 급소를 정확하게 찔렀다. 그녀는 방어조차 하지 못하고 숨졌다.
안타깝게도 그날 저녁 귀가한 딸이 엄마의 시신을 발견했다. 즉시 신고하고 119도 출동했지만 이미 엄마의 몸은 싸늘하게 식은 후였다.
강동경찰서는 대규모 수사본부를 꾸렸다. 그해 숱한 강력사건들이 미궁에 빠진 만큼 어떻게든 늦기 전에 범인을 찾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현장에 범인의 지문도, 머리카락 한 올도 없었고 목격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수배 전단지 하나 못 만들고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그렇게 이 사건은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하지만 7년 후인 2011년, 간암 말기로 옥중에서 죽음을 앞둔 이진구가 뜻밖에 이 사건을 언급한다.
이진구는 죽기 전 서울 광진경찰서의 한 형사에게 양심고백이라는 이름으로 끔찍한 비밀들을 털어놓았다. 이병주가 쌍무기수가 되고 두 달 후였다.
이진구 혼자 한 일뿐 아니라 이병주와 공범으로 저지른 범죄나 이병주의 여죄에 대해서도 기억나는 대로 말했다. 그중 하나가 명일동 아파트 살인사건이었다.
이진구의 설명은 이러했다.
그날 절도 목적으로 둘이 같이 무작정 아파트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12층인가에 내려서 문이 열린 곳이 있는지 손잡이를 당겨보는데 그중 한 집이 열렸다. 들어가니 아주머니가 놀라서 도망치는데 이병주가 붙잡아 살해하고 자기는 금품을 털어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진구에 따르면, 명일동에서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고 불과 며칠 후 이병주는 서울 미아동의 으슥한 골목길에서 다시 두 명의 여성에게 칼을 휘둘렀다.
서울 광진경찰서 형사들은 이진구의 얘기를 들은 후 이병주를 찾아가 자백을 유도했다.
교정시설에서 몇 년을 지내며 두 번의 재판을 받는 동안 말 그대로 ‘교정’이 일어난 걸까? 쌍무기수가 되면서 모든 욕심을 버린 걸까? 이번에도 이병주는 모든 범죄를 시인했다.
지금까지 이병주가 유죄 판결을 받거나 새로 자백한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1. 2004년 8월 16일 명일동에서 40대 여성 살인 → 2011년 이진구 사망 후 자백
2. 2004년 8월 19일 미아동에서 20대 여성 2명 살인미수 → 2011년 이진구 사망 후 자백
3. 2004년 10월 8일 방이동에서 50대 여성 2명 살인 → 2008년 이진구의 신고 후 자백, 2011년 재판에서 두 번째 무기징역 선고
4. 2004년 12월 8일 석촌동에서 50대 전당포 사장, 20대 비디오방 점원 살인 → 2005년 검거, 2006년 재판에서 첫 번째 무기징역 선고
미아동 사건은 살인이 아닌 ‘살인미수’였다. 그 여성들을 ‘죽였다’는 이병주의 기억과 달리 피해자들은 다행히 살아남았다. 결국 이 시점까지 자백한 것으로만 한 해에 5명을 죽이고 2명을 죽음의 문턱으로 보낸 셈이다.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새로 이병주가 자백한 명일동, 미아동 사건은 경찰의 조사를 거쳐 이듬해 검찰에 송치된다. 그런데 여기서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서울 동부검찰청이 이 사건을 조사한 끝에 이병주를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한 것이다.
심지어 이 두 개의 사건은 2019년 이병주가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에게 다시 자백을 하면서 또 한 번 검찰에 송치된다. 이때도 역시 명일동 사건은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되었고, 미아동 사건은 공소시효를 5일 앞두고 기소되었으나 2022년 1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그해 내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사건을 다룬 이후 있었던 2심 재판에서도 이병주는 무죄였다. 그리고 이제 이병주는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
두 번의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살인마의 무죄 주장, 그것을 뒷받침하는 연이은 무죄 판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⑤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에서 계속됩니다.
Q 파일 : 우리 사회의 문제를 들여다본 기록을 전합니다. 이번 편은 <그것이 알고싶다> 1306회를 돌아보며 못다한 이야기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