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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는 약

강철 대신 꽃잎으로 : 저신다 아던 ①

by 재원


앞으로 몇 편에 걸쳐서 제가 추앙(?)하는 현생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2019년 3월 15일 금요일, 뉴질랜드 남섬의 최대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는 이제 막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높고 푸른 하늘 밑으로 선선하고 쾌적한 바람이 감돌았다.


오후 1시, 알 누르(Al Noor) 모스크에서는 평소와 다름없는 기도 시간이 시작되었다. 뉴질랜드의 이슬람 신자들은 신발을 벗고, 조용히 손을 씻고, 기도의 평온 속으로 잠겨 들었다. 신과 대화를 청하던 그들 중 누구도 알지 못했다. 곧 그곳에 어느 백인우월주의자가 다연발 소총을 들고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첫 총성이 울렸을 때 누군가는 그것을 장난감 소리로 착각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사원 안은 비명과 피, 기도와 공포가 뒤섞인 혼돈의 현장이 되었다. 범인은 두 이슬람 사원을 돌며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 참혹한 테러로 51명의 목숨이 스러졌다. 심지어 그는 헬멧에 단 카메라로 총격 장면을 페이스북에 생중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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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asum._20577_picture_--ar_32_--v_6.1_145c4108-0dbf-4521-ae1e-65cd5ef52713_1.jpeg ©gettyimages


사건 직후, 저신다 아던(Jacinda Ardern) 뉴질랜드 총리는 검은 스카프를 두른 채 희생자 가족을 직접 껴안았다. 그리고 조용히 그 곁에 머물렀다. 혐오 테러의 대상이 된 이슬람인들에 대한 그녀의 메시지는 간결했다. “그들은 우리입니다(They are us).”


난민과 이슬람에 대한 혐오가 유행병처럼 번져가던 세계에 아던 총리가 이슬람 복장을 하고 그들을 끌어안으며 던진 문장은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뒤이어 의회 연설에서는 아랍어로 “신의 축복을 기원한다”는 인사를 하고, 일부 정치인들이 무슬림 이민이 테러의 배경이라고 주장하자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맞섰다.


"뉴질랜드가 이번 공격의 표적이 된 이유는 증오를 품은 이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주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종차별을 용인하거나 극단주의를 키우는 땅이기에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런 것들과 거리가 먼 나라이기에 비극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양성과 친절, 연민을 품은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가치를 함께하는 이들에게는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도움이 필요한 난민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주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번 테러는 결코 우리의 가치를 흔들 수 없습니다." (출처)


1편_001.jpeg 연설하는 저신다 아던


이 연설을 통해 아던은 공동체라는 울타리를 부수려는 극단주의자들과 끝까지 싸우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아던과 마음을 함께하는 뉴질랜드 시민들은 거리로 나서 테러리스트들을 규탄하고 이슬람인들을 위한 연대 시위를 시작했다.


부드러움과 약함은 동의어가 아니다. 아던 총리는 극단주의 테러리즘에 맞서는 강력한 조치를 즉각 시작했다. 사건 발생 6일 만에 뉴질랜드 전역에서 군대식 공격용 소총 및 반자동 소총의 판매를 금지시켰다. 불법 무기를 회수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바이백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정부는 3만여정 이상의 불법 무기를 회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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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뉴스의 중심에 섰던 저신다 아던. 그녀의 소식이 다시 지구 건너편의 내 눈에 들어온 건 4년여 시간이 흐른 2023년 1월의 일이었다.


그간 아던 총리는 코로나 위기를 성공적으로 관리해 재선에 성공했다. 뉴질랜드 노동당 역사상 70여년 만에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고, 자신이 이끄는 나라를 코로나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서구 국가로 만들었다. (이 시기 아던의 활약을 잘 정리한 기사 — 링크1, 링크2)


그랬던 그녀가 임기를 1년 남기고 전격적인 사임을 발표했다는 소식이었다. 도대체 왜?


1편_002.jpeg 아던의 사임 기자회견 ©gettyimages



저, 퇴사합니다


저신다 아던은 37세에 총리에 처음 당선됐다. 뉴질랜드를 아이들이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약속과 함께, 기후, 노동, 여성의 권리 등 여러 면에서 진보적 공약을 내세웠다. 아던 재임기 노동당 여성 의원 비율은 54%로 절반을 넘었고, 전체 의회에 성소수자로 커밍아웃한 인물만 12명이었다.


말뿐 아니라 그 스스로도 여느 전형적 남성 지도자에게서 볼 수 없는 비표준적 행보를 이어왔다. 재임 중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아이를 낳았으며, 이후 ‘무려’ 6주간 출산휴가를 사용했고, 휴가 후 복귀할 때는 (남편이 아닌) 남성 파트너가 육아와 가사 책임을 맡았다.


아던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젊은 여성 국가 수장이었다. 특유의 부드럽고 포용적인 모습, 가족 친화적이고 솔직한 태도로 기존의 정치 지도자들과 전혀 다른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트럼프와 완전 정반대 편에 있다는 의미로 anti-Trump로 불리기도 했다.)


뉴질랜드뿐 아니라 호주에서 가장 신뢰받는 정치인으로 꼽혔고, 바다 건너 영미권이나 유럽에서도 ‘저신다 마니아(Jacinda-mania)’라는 두터운 팬층이 생겨날 정도로 세계인들로부터 존경받았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오후 ©unsplash


그랬던 아던의 사임은 뉴질랜드 사회뿐 아니라 지구 반대편의 나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적어도 내 생에는 한국에서 권력자가 스스로 권력을 포기하는 일을 본 적이 없으니까. 우리 사회에서 중도 하차란 탄핵이나 사망 같은 극단적 방식으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던의 사임의 변은 더욱 이목을 끌었다. 그녀는 이제 지쳐서 더 못하겠다, 집에 가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유를 밝히며 총리직을 쿨하게 던졌다.


사임 발표를 하며 결혼 소식을 전하고, 그 낭만적인 기자 회견을 마친 뒤에는 자신의 파트너 클라크 게이퍼드의 손을 잡고 활짝 웃으며 회견장을 나서는 모습이 너무나 홀가분해 보였다.


이 장면을 접한 내 주변 사람들은 저마다 사진을 공유하며 조직 생활로 숨막히는 한국 사회에서 간만에 산소호흡을 한 것 같다는 개운한 소감을 나누었다. 가영이 퇴사짤을 꺾을 법한 카타르시스 넘치는 퇴사짤의 탄생이었다.




번아웃 아닌데요...


그렇게 뉴스에서 사라졌던 아던의 소식을 얼마 전 엘르 영문판에서 접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잡지는 한국판에서는 대부분 연예인 소식과 화장품, 패션 광고 기사밖에 없는데 - 링크, 영문판에는 ‘2025 우먼 임팩트’ 시리즈 같은 깊이 있는 젠더 기사가 실린다 - 링크)


아던은 빡센 사회생활에서 탈출한 뒤 가정으로 침잠한 것이 아니었다. 기사(링크)에서 아던은 자신의 사임이 번아웃 같은 단순한 이유로 알려진 것을 안타까워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아던의 사임에서 ‘일이 너무 힘들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퇴사한다’는 스토리를 읽었다. 이 말은 일과 가정은 양립할 수 없었다는 말도 된다. 또한 가족들이 그녀의 일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세간의 해석은 아던 입장에서 사실도 아니었고, 아던이 가장 경계하는 결과이기도 했다. 여성이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면서도 커리어를 지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이야말로 그가 제시한 정치적 비전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번아웃이 와서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는, 아던 같은 인물조차도 결국은 가정을 지키려면 ‘경단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좌절감을 전 세계 여성들에게 안겨줄 수도 있었다.



아던은 자신이 사임을 결정할 당시 번아웃도 아니었고,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있었다고 설명한다. 파트너이자 애 아빠인 클라크 게이퍼드 덕분에 가정생활은 순조로웠고, 남은 총리 임기를 마치는 것도 어렵지는 않은 상황이었다고 말이다.


"번아웃이라는 건, 방 한구석에서 웅크린 채 있는 거예요. 완전히 탈진하고 끝난 상태. 아무것도 더 할 수 없는 상태죠. 근데 나는 그런 상태가 아니었어요. 나는 여전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들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려고 해요. 그게 아침에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니까요."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뉴질랜드의 정치적 지도자 역할을 지금 최선으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봤을 때, 그것이 아니라고, 자신이 조금 지쳐있으니 최선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소진된 것도 아니고, 그저 좀 지쳤다해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등지고 사임하는 것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강철 대신 꽃잎으로 : 저신다 아던 편에서 계속...


자신에게 처방하는 쓰는 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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