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는 약

강철 대신 꽃잎으로 : 저신다 아던 ②

by 재원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퇴각이 아닌 전환


아던이 정치 무대에 올라있던 시간, 사람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지만 그 스스로는 항상 가혹한 시험을 치르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테러, 바이러스, 화산 폭발, 외교 문제, 끔찍한 범죄 등 대형 사건들은 항상 이어졌다. 그때마다 주변 정치인들이나 평론가들은 “이번 위기는 그녀의 리더십을 시험대에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많지 않아서, 자신의 고민이나 약함을 솔직히 밝히는 리더라서, 무엇보다 여자라서 쉽게 믿음을 잃었고 세간의 평가를 돌파하는 데는 몇 배의 에너지가 필요했다고 그녀는 회고한다.


그런 무한한 반복 속에서 아던은 자신이 “지도자로서 입증되었다”는 날은 절대 오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아던은 국민들의 삶이 걸린 총리직을 정말 제대로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임기 1년을 앞두고 충분히 잘 해낼 힘이 소진됐음을 느꼈다. 계속할 수는 있지만 이전만큼 역할을 해내지 못할 것 같았고, 그 한계를 세상에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결국 아던은 탈진이 오기 전, 의도적 전환을 선택했다.



권력이라면 날파리처럼 달려드는 졸개들만 보던 입장에서 이런 대인배스러운 ‘내려놓음’은 낯설다. 이해를 돕고자 굳이 상상해 보면, 먼 미래 한국에서 임기 1년을 남긴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며 사임하는 것과 같다.


"이 자리가 매우 중요하지만, 저는 할 만큼 했고 지치기도 했습니다. 제가 계속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최선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의미 있는 역할을 찾을 테니,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해 활력을 불어넣읍시다!"



작게 존재하며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한발 물러난 삶은 물론 편안했다.


더 이상 24시간 카메라와 독설가들의 비판에 노출될 필요도 없었고, 실수 하나에 세계 언론이 몰려들 수 있다는 압박감도 벗어던졌다.


하지만 그녀는 곧 깨달았다. 그 편안함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규모가 작고 조용한 삶이 얼마나 편했는지 가끔 떠올라요. 그 편이 세상에 존재하기 훨씬 쉬운 방식이거든요. 하지만 ‘작은 존재’로도 세상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가장 많이 고민한 질문이 그거예요. 어떻게 하면 여전히 도움이 되는 존재일 수 있을까? 그리고 어쩌면, 작게 머무른 채로는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gettyimages


그래서 아던은 다시 “전면에 나서는 데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때로는 자기 자신을 꺼내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지금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세 개의 펠로우십을 이끌고 있으며, 윌리엄 왕자의 '어스샷 프라이즈' 이사회 멤버로 활동 중이다. 또한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빌 게이츠의 ex-wife)의 '피보탈 벤처스'로부터 선정된 12명의 리더 중 한 명으로 2천만 달러 규모의 자선기금을 관리하고 있다. 아던은 여성의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를 직접 찾아 이 자금을 나눈다.


모두 성평등을 이루고 극단주의와 싸우며 정치에 온기를 불어넣는 아던-이즘(Ardern-ism)의 연장선에 있는 활동이다.


뉴질랜드 퀸즐랜드의 거리, 7월의 풍경


우리는 여전히 강철 같은 리더십이 득세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냉정하고, 단호하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가 여전히 ‘리더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반면 아던은 전통적인 강한 리더가 보여주는 통제력 대신, 약함과 부드러움, 다정함과 공감을 보여준다.


그런 아던의 리더십은 종종 ‘여성적 리더십’이라는 프레임으로 해석되었다. 마치 리더십에 성별이 있다는 듯이. 아던은 이런 구분이 불편했다고 말한다. "내가 정치에서 정말 더 보고 싶었던 단 하나는 인간다움이었어요.(The one thing that I wanted to see more of in politics was the humanity)”


정치에서의 '인간다움'을 아던이 몸소 보여줬던 장면이 있다. 총리직을 그만두기로 한 후 의회에서 했던 퇴임사였다. 나는 아던의 이 연설을 좋아한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 망토를 두르고 연단에 선 아던은 이런 퇴임사를 남겼다. (당시 의회 퇴임사에 관한 상세한 보도)


©skynews


"제가 이 자리에 있었던 시간을 여러분이 어떻게 기억하실지 제가 결정할 수 없겠죠. 하지만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불안하고, 예민하고, 친절하며,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사람일지라도 괜찮습니다. 엄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너드일 수도 있고, 눈물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고, 포옹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이 모든 모습 중 어떤 것이든, 아니 전부를 다 가진 사람이라 해도, 당신은 이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리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좀 더 다정하라고


나보다 고작 몇 년 더 산 사람이지만 아던의 이야기를 찾아 읽다 보면 영감도 받고 위안도 얻게 된다. 그래서 나 스스로 정리하기 위해 긴 시간을 들여 이렇게 적어놓는 것이다.


내가 일하며 마주하는 리더의 모습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의사결정은 토론을 통한 민주적 과정보다 위계질서에 따라 이뤄지며, 실험적인 다양성이 있는 의견들은 배척된다. 성장을 돕는다는 핑계로 아랫사람을 가혹하게 비난하고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대하는 리더들도 적지 않다. 후배들의 이견에 대해 비웃거나 모멸감을 주는 경우도 흔하다.



나 역시 연차가 쌓이면서 크고 작은 팀을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조금이라도 다정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후배들이나 팀원들이 긍정받으며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로 이끌어내기를 바랐다. 때로는 그런 노력의 결과로 각자의 창의력이 작품에 깊게 담기는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의견을 꼼꼼히 묻거나 모두의 감정을 존중하려 노력하는 분위기보다, 리더가 확신에 차서 알아서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심지어 화를 내고 혼내달라고 요구하는 팀원들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폭력이나 거짓보다 더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위계나 힘이다. MBTI 검사를 하며 다양성과 개방성을 좋아한다고 체크하는 어떤 Z세대도, 어쩌면 부드럽고 포용적이며 많은 의견에 열려있어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문화(이것이 민주주의의 주된 분위기겠지만)무의식적으로 싫어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찌 보면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은 단지 몇 명의 기성세대와 부딪히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같은 '작은 존재'로는 해결할 수 없는 훨씬 어렵고 복잡한 문제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다 평등하고 다양하며 다정한 공동체를 꿈꾼다. 한국 사회의 리더 중에서 누가 그런 비전을 보여주었던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비록 바다 건너의 인물이라도 아던의 삶은 자극을 준다.


아던은 내게 좀 더 열려 있으라고, 사람들에게 좀 더 친절하라고 말한다. 결국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받고 최선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준다. 다음 단계의 세상을 보여주는 사람. 그래서 나는 아던을 추앙할 수밖에 없다. ☀︎




자신에게 처방하는 쓰는 약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강철 대신 꽃잎으로 : 저신다 아던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