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에 걸쳐 쓴 여행기가 마무리되어가던 2017년 초쯤. 부탄이 한국과 수교 30주년이라면서 한국인한테만 각종 여행 프로모션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혜택을 찬찬히 뜯어보니 내가 갔을 때보다 훨씬 싸게 부탄에 갈 수 있었다...!
나는 왜 하필 수교 29주년이었던 작년에 부탄에 꽂혔을까. 아무튼 나처럼 길게 간 사람은 올해라면 백만원쯤은 더 아꼈을 것 같다.
부탄 정부가 책정한 부탄 체류비용*은 상당히 비싼 편이다. 비행기도 직항이 없기 때문에 돈이 배로 든다. 물론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 중간에 누가 크게 남겨먹어서 비싼 게 아니다. 여행세가 문제다. 부탄에 가는 모든 여행객은 하루 65달러의 여행세를 내야 한다. 아니 내가 내 돈 써가며 여행하겠다는데 장려금은 못 줄망정 웬 여행세?
사실 부탄 정부는 외국인 여행산업으로 경제성장 좀 해보겠다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일부러 고율의 여행세를 매기고 그걸 모아 자국민들의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등 복지정책 재원으로 충당한다. 게다가 여행객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자연이 파괴된다는 이유로 한 해 여행입국자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어나면 다시 체류비를 인상해 여행객 수를 조절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쨌거나 좀 비싸다는 거. 그래도 한 번 부탄에 가봐야겠다는 열망을 품은 이상 고작 비용 문제로 마음을 접기는 어렵다. 이제부터 할 얘기가 그런 분들께 조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군더더기 비용을 줄여서 경제적인 부탄 여행을 할 수 있는지 내 경험을 적어보려 한다.
(*비수기(6월~8월)에는 하루 200달러, 나머지 기간에는 하루 250달러를 내야 한다. 여기에는 여행세 + 체류 기간 전체 식사비 + 전체 숙박비 + 차량 비용 + 가이드와 운전기사 인건비 + 생수 하루 2병 + 에이전트사 이윤 등이 포함돼 있다. 가이드와 운전기사에게 팁을 줄 생각이 없다거나 기념품 등을 구입하지 않을 거라면 이 비용 외에 돈을 쓸 일이 없다. 수교 30주년인 2017년 비수기에는 하루 150달러 안팎의 가격으로 갈 수 있다.)
처음 부탄 여행을 계획했을 때는 여행사를 통해 가려했다. 부탄은 들어가기 쉬운 나라도 아니고 절차도 복잡해서 그걸 일일이 알아보고 해결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사는 혼자 출발할 경우 수십만원에 이르는 추가 비용을 요구했고, 결국 그마저도 안 되겠다는 통보를 해오는 바람에 혼자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틈틈이 알아보는 과정에서, 여행사들이 대신해주는 일이 많지 않음을 알게 됐다.
부탄 여행은 좀 특이하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부탄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부탄 현지 에이전트(정식 명칭으로는 Tour Operator)를 통해서 비자를 발급받고 여행 중에도 항상 같이 다녀야 한다. 바꿔 말하면, 한국 여행사는 나한테 부탄 에이전트를 붙여주고 서류 작업 대신해 주는 것 외에 더 하는 일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처럼 직접 가이드를 고용하는 것도 아니고 현지에서 편의를 위해 다른 서비스를 해주는 것도 아니다.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은! 부탄 현지 에이전트가 다 해준다. 전문 여행사가 접촉을 하든, 나 같은 생짜 초보가 연락하든 그들이 다 알아서 한다. 체류 기간이나 여행 컨셉트(일반적인 관광, 트레킹, 새 구경, 문화체험 등)만 협의하면 알아서 일정과 서포트 인력을 맞춰준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부탄이라는 먼 나라에 생전 첨 보는 에이전트를 믿고 여행 계획을 부탁하고 거금을 보내는 게 불안했다. 하지만 부탄을 다녀오고서 생각해보니 이런 불안은 모두 기우였던 것 같다. 앞선 여행기에 내내 적었던 것처럼, 부탄 사람들은 아직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인과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긴다. 한국과는 문화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그리고 부탄 에이전트들은 부탄 여행부의 엄격한 심사를 받는다. 부탄은 국내 경제에서 여행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여행업을 잘 관리하고 있고, 여행객들의 부탄 여행 소감까지 꼼꼼히 경청하고 챙긴다. 요컨대 개별적으로 연락해서 여행 계획을 잡더라도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며칠에 걸쳐서든 총 약 10시간 정도를 부탄 여행 준비에 투자할 수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직접 부탄 현지 에이전트들과 접촉해 여행을 준비하는 것을 추천하겠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시간과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될지 10시간으로 정리했다.
뭐 이런 것까지 단계랍시고 넣나 싶지만, 이걸 생각하는 시간이 참 좋기 때문에 일단 요모조모로 날짜도 조정해보고 일자도 늘려보면서 한껏 들뜨는 시간을 가져봐야 한다. 나는 작년 7월 중순쯤 갑작스레 한 달의 휴가를 받아서 정말 급히 부탄 여행을 결정했다. 그래도 그 무더운 여름날 카페에서 마음 설레 하던 시간이 여전히 기분 좋게 떠오른다.
당신은 먼저 부탄 여행부 홈페이지와 친해져야 한다. 이곳에는 부탄 여행에 관한 양질의 정보가 많이 담겨있다. 그리고, 부탄여행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정보도 여기 있다. 바로 부탄 여행 에이전트 회사들의 리스트! 정부가 인증한 에이전트들의 목록이 이곳에 있다. 들어가 보면 목록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도대체 몇 개나 될까. 제가 세보겠습니다.
한 950개쯤 되는 것 같다. 처음에 이 리스트를 보고 어디를 골라야 할지 몰라 한참 망설였다. 그런데 음… 아무리 봐도 거기가 거기 같은 느낌. 그래서 깊은 고민 끝에(!) 로고가 마음에 들거나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들어간 에이전트를 고르기로 했다.ㅎ 외국 블로그 부탄 여행기나 트립어드바이저 부탄 여행평을 보면, 아무 데나 골라도 다들 괜찮더라는 말이 많으니 부담 없이 찍으시기를!
한가한 분들을 위한 사족 하나. 부탄 여행부 홈페이지를 잘 찾아보면 부탄 여행 연감을 다운받을 수 있다. 심심하면 한번 훑어보시라. 부탄 정부가 얼마나 꼼꼼하게 여행자들의 여행 패턴을 분석하고 있는지 깜짝 놀랄 것이다. 나는 작은 여행사는 못 믿겠어! 하는 분들은, 이 리포트를 쭉 훑어보면 여행자들의 숙박일 수 기준 상위에 랭크된 대형 에이전트사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32쪽, Top 10 Tour Operators) 하지만 부탄 여행사들은 크든 작든 상향 평준화되어 있으므로 굳이 큰 곳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부탄은 한국과 다르다. 이 자료를 보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트래킹 루트 순위, 가장 인기 있는 숙박시설 순위 등도 볼 수 있다.
자, 이 모든 것을 하고 둘러보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자자 이제 우리는 영어 메일을 써야 한다. 토익 9백점 받은 사람도 버벅대며 쓴다는 그 비즈니스 영어 메일!! 이번 순서에는 사전 찾아볼 시간, 구글번역기 돌릴 시간 등을 포함해 특별히 2시간을 배정했다. 한 다섯 줄만 일단 써놓으면 여기저기 다 복붙해서 에이전트들한테 무한 발송할 수 있으니 애써 쓴 보람은 있을 거다. 중학 영어만 하면 쓸 수 있다.
그렇다면 메일에 무슨 내용을 써야 할까. 일단 꼭 포함시켜야 할 것을 담아 적어보면 대강 이런 식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 사는 OOO입니다. 제가 6월 22일부터 6월 29일까지 7박8일(7 nights and 8 days)간 부탄 여행을 가려고 합니다. 방콕을 거쳐 부탄에 들어갈 예정이고, 동행자는 한 명입니다. 부탄 여행은 처음이라서 주요 관광지를 돌아보고 싶은데요. 일정에 맞는 여행계획서(itinerary)와 비용내역서(tour payment)를 보내주시겠어요? 한국과 부탄 수교 30주년 프로모션 적용 가격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렇게만 보내도 되지만, 자신의 취향에 따라 좀 더 요구사항을 추가할 수도 있다. 이미 부탄에 가봤기 때문에 주요 관광지 투어는 됐고 다른 컨셉트의 여행을 원하면, 부탄 여행부 홈페이지의 활동 안내 섹션을 잘 살펴본 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코스와 장소를 요구하면 된다. 각 에이전트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그 여행사가 특화돼 있는 분야가 있으니 그걸 참고해서 요구해도 좋다.
이렇게 메일을 보내면 빠르면 몇 시간, 늦어도 며칠 안에 회신이 올 것이다.
이제 협상의 시간이다. 내가 비용을 크게 아낀 결정적인 단계가 바로 이때였다. 부탄여행 체류비에는 숙박비, 식비, 가이드와 운전기사 인건비, 부탄 여행세뿐 아니라 부탄 여행 에이전트들이 떼 가는 이윤도 들어있다. 따라서 자신이 학생이라거나, 갑자기 쓸 수 있는 큰돈이 없다거나, 등등의 사연이 있다면 이를 설명하고 비용을 가능한 저렴하게 책정해달라고 요청하자. 아마 어떤 에이전트들은 분명 그 요구에 반응할 것이다. 누가 어떤 식으로 협상에 응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여러 곳의 에이전트들에게 메일을 뿌려봐야 한다.
협상의 여지는 여러 곳에 있다. 동행자가 여럿이면 그에 맞는 할인을 요구할 수도 있고, 30주년 기념 프로모션 내용 중에 숙소 반값 할인이 있으므로 체류비를 그에 맞게 좀 더 깎아달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자신의 경험과 협상력에 달렸다. 여행계획서와 비용 제안이 오면, 그에 관해 내 쪽에서 의견을 추가로 전달하면서 쭉 대화를 이어가면 된다. 이때 대화에 응하는 태도를 보면서 상대 쪽의 신뢰도를 평가해봐도 좋을 것이다.
나는 10여 곳의 에이전트들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같은 기간에 거의 같은 코스로 돌아보는 여행에 대해 상대 쪽에서 제안한 액수가 최대 600달러 넘게 차이가 났다. 흔히 부탄 여행 비용은 체류비가 고정돼 있어서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내 경험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드룩 에어 항공편도 내국 여행사에서 예약을 하면 좀 더 싸게 할 수 있는 요령이 있는지, 나는 부탄에 들어가는 비행기표도 에이전트를 통해 200달러 정도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메일을 주고받으며 몇 곳의 에이전트들과 대화를 이어가다가 마음에 딱 드는 곳을 발견했다면, 이제 확정을 짓자. 그러면 그쪽에서 비자 발급에 필요한 여권 스캔본을 메일로 보내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국외 송금에 필요한 해외 계좌번호와 코드를 알려줄 것이다.
국외 송금은 약간 복잡하다. 우리의 부탄 에이전트가 직접 국외 송금을 처리하는 국제적 규모의 은행에 계좌를 트고 있다면 좀 더 간단하겠지만 그런 경우가 흔치 않다. 그러니 에이전트가 부탄 국립은행에 계좌를 트고, 부탄 국립은행은 뉴욕의 시티은행 같은 큰 곳에 계좌를 터 놓고 국외에서 들어오는 돈을 받아 에이전트들한테 넘겨주는 방식을 사용한다.
작년 여행 때 내가 받은 계좌와 코드번호는 뉴욕의 시티은행에 부탄 국립은행 계좌를 가리키고 있었다. 보낼 때 적는 전표에 이 돈이 해당 에이전트한테 가는 거라고 기록할 수가 있는데, 그렇게 보내면 부탄 국립은행이 씨티은행에서 돈을 건네받아서 에이전트한테 전달해준다. 굳이 적어놓으니 어려워 보이지만, 에이전트가 입금하라고 적어준 걸 그대로 프린트해서 은행 국외 송금계에 가면 계원이 도와주니 걱정 마시길.
자, 이제 모든 절차가 10시간 만에 끝났다. 사실 10시간까지 걸릴 것도 없다. 나야 처음 하는 일이어서 각종 시행착오를 겪느라 시간이 더 걸렸지만, 위에 적어놓은 것만 비슷하게 따라가도 이만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부탄 여행을 꿈꾸며 잠깐 귀찮은 시간을 보내면, 어느새 부탄에 도착해 원색에 가까운 파란 하늘과 길가 소떼의 마중을 받게 될 것이다. :-)
부탄을 속속들이 알고 싶으시면
이글보다 먼저 쓴 부탄 여행기 본편을 보세요.
한 걸음 더 부탄에 다가가실 수 있을 거예요 :-)
https://brunch.co.kr/magazine/bt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