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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모험을 떠나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불안이다. 평생 같은 문제만 풀어야 하는 지겨운 시험 같은 일상을 끝내지 못하는 이유도 대부분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나 역시 경제적인 문제만 어느 정도 해결된다면 언제든 온갖 일들을 벌여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정말 밥벌이의 문제만 해결하면 불안을 없앨 수 있을까. 부탄에서 오래 이 질문을 생각했다. 하지만 몇 가지 설명되지 않는 사실들이 있었다. 한 달에 우리가 버는 돈의 5분의 1밖에 벌지 못하는 부탄 사람들이 우리보다 불안을 덜 느끼는 이유는 뭘까. 혹은 우리나라에서 과거 마을 공동체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수백 배의 소득을 벌어들이는 요즘의 사람들보다 더 정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게다가 절대적 궁핍을 벗어난 현대 사회에서도 먹고사는 문제가 불안을 좌우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불안하고 불행했던 시간을 생각해봤다. 70년대 서울로 몰려든 여공들의 삶이 힘들었던 이유는 물론 지독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서울에 오기 전, 그들이 더 적은 소득으로 살아갔던 고향에서의 삶에는 각자의 생활을 떠받치던 문화와 공동체가 있었다. 서울로 떠나온 것은 단순하게 한 사람의 주거지가 바뀐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장구한 시간에 걸쳐 궁핍과 질병을 비롯한 인간사의 재난을 관리하고 상호 부조하며 삶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문화와 공동체를 그들은 잃어버렸다. 이웃 간의 인정과 돌봄으로 자기 존재를 안전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관계에서 홀로 떨어져 나온 것이다.
문화와 관계로부터 멀어진 인간의 삶은 쉽게 무너진다. 백인 문화를 갑작스레 주입받은 아메리카 원주민들, 영국에서 산업혁명에 이끌려 나온 농촌 출신 노동자들의 처지를 연구한 결과를 보면, 통념과 달리 그들의 식량이나 임금 수준은 전보다 더 나아졌음이 확인된다. 불행으로 추락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그들의 삶을 지탱하던 사회와 제도의 해체 - 즉 사회변화에 따른 문화적 진공이 그 원인이었다. 스스로 삶의 터전을 만들어온 인간들 사이에 자연스레 자리 잡아 온 적응과 생존의 문화가 시장주의의 침투로 밀려나 텅 비어버린 것이다.
망자의 뼈로 빚은 채차. 내세에 대한 믿음은 부탄인들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문화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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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한국 언론의 관찰처럼 멋진 왕과 그의 훌륭한 국가운영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볼 때 그 비결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내재해 있는 인간 고유의 생명력에 있었다. 척박한 토양에서든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에서든 부탄인들은 자연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적응하며 서로를 돌보는 문화를 만들어 왔다. 그 문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수 세대에 걸쳐 쌓인 지혜의 깊이만큼이나, 어떤 형태의 부유함보다도 면밀하게 그들의 문화는 인간의 인간적인 삶을 지탱해온 것이다.
도시화와 산업화는 물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다만 부탄 사람들은 변화의 고삐를 자신들의 손에 쥐고 있다. 그들은 새로 침투한 시장주의가 문화를 밀어내고 관계를 파괴해 사람들이 갑작스레 진공상태에 던져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한다. 공동체가 변화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유기적으로 적응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낼 때까지, 인간의 사회가 다시 촘촘한 생존의 관계망을 직조할 때까지, 그들은 천천히 걸어가기도 하고 잠시 멈춰 기다리기도 할 것이다. 이런 안전한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모험을 통해 자신에게 알맞은 삶의 자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부탄의 땅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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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만능이라는 '경제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혔던 나는, 퇴사 후의 모험을 생각할 때도 먼저 돈을 어떻게 벌지부터 고민했다. 하지만 이제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먼저 찾아야 할 것은 돈을 구할 방법이 아니다. 내가 모험하고자 하는 삶의 영역에서 함께 호흡할 사람들을 찾는 것. 그들과 함께 서로 돌보고 환대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경제에 대한 신앙적인 수준의 의존을 줄이고 불안을 해소할 방법이라고 이제는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관계가 적을수록 경제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던 세계에서 바깥으로 난 문을 찾으려 할 때 필요한 것은 과거의 지식도 윗세대의 가르침도 아니다. 지도에 없는 자리를 보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어떤 예술, 혹은 어떤 여행이 우리 인생에 축복이 되는 쓰임새가 여기에 있다. 부탄은 내게 하나의 파격적인 예술 작품이자 상상력이었다. 지구 어디에선가 인류가 우리와는 전혀 다른 길을 따라 멋지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어렴풋하게 지도 속 문의 위치가 보이는 것 같았다.
돌아온 날, 인천 국제공항
end
긴 비행을 마치고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캐리어를 끌고 반질반질한 대리석 바닥을 걷는데 오랜만에 땅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은 내가 이곳을 떠나 있었던 시간 동안 한 번도 땅에 발을 디딘 적이 없었던 것처럼. 부탄에 머물렀던 시간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집에 와서 며칠이 더 흘렀고 휴가가 끝났다. 출근을 시작하니 멈춰서 생각할 틈이 없는 익숙한 하루가 반복됐다. 그리고 부탄에서의 며칠보다 더 짧게 느껴진 한 해가 끝났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을까. 가을과 겨울이 가는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낙엽을 뒤적이는 바람 소리, 나무의 서걱거리는 몸짓... 그게 느껴질 만큼 고요한 시간이 언제였는지 아득하게 느껴졌다.
혼이 빠진 듯 한 주를 보내고 잠시 틈을 내 어느 섬의 조용한 숲길을 찾았다. 걷고 있는데 잎을 떨군 앙상한 자작나무 가지가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다. 알 수 없는 기시감에 가만히 지켜보는데 불현듯 푸른 잎이 돋아 올랐고 우주가 성큼 내려온 듯 배경의 하늘이 짙은 청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주문처럼 길게 바람이 불자 나무의 영혼들이 가지를 흔들어 사라진 시간을 불러냈다. 부탄의 어느 마을에서 해가 지기 전에 창가에 앉아 본 풍경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잠시 그 마법 같은 시간에 머물렀다.
이 글들이 우리의 모험에
작은 씨앗이라도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