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매와의 만남
지방에서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가는 길, 창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내렸다. 취재 차량의 루프를 때리는 빗소리가 시끄러워서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다. 차도 많이 막혔다.
해질녘이 되자 마음이 슬슬 급해졌다. 8시에 양재동에서 첫째 딸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친부한테 성폭행을 당해온 피해자다.
몸에 남은 불자국 같은 상처를 다시 꺼내보이는 일은 굉장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첫째 딸이 최대한 마음의 안정을 느끼며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작은 카페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혹시나 신경이 쓰일까 싶어서 촬영 스텝도 모두 뺐다. 여성 조연출과 나, 이렇게 둘이서만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대화가 편하도록 장소를 정리하고 카메라를 미리 세팅했다. 촬영 상황이 최대한 덜 신경쓰이도록 카메라를 뒤쪽으로 빼고, 준비한 질문을 전부 외워서 편한 대화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준비했다.
그래도 떨렸다. 인터뷰를 수백 번 했지만 이런 중대한 만남을 앞두면 긴장이 된다.
이윽고 8시가 되었다. 그런데, 한 명이 아니라 네 명이 쭈뼛거리며 카페에 들어왔다. 잘 차려입은 세련된 인상의 이십대 여성 세 명과 쉰 살쯤 되어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었다.
“피디님이시죠. 연락받았던 첫째 이유정이에요. 저희가 오늘 인터뷰 두고 충분히 얘길 나눴는데요, 가해자 처벌하려면 저희 자매가 다 같이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아서요. 제가 혼자 하는 게 좀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저희 동생들하고 엄마하고 같이 왔어요.”
어떻게든 설득해서 다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꺼번에 뵙게 되니 취재하는 입장에서는 감사한 일이었다. 이 사람들이 일치된 진술을 한다면 그것은 진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치웠던 의자를 다시 가져와서 서둘러 네 명이 앉을자리를 마련했다. 유정, 유리, 유나 세 자매를 앉히고 슬레이트를 쳤다. 엄마의 이름은 김혜숙. 엄마는 직접 인터뷰는 안 하겠다며 카메라 바깥에 앉았다.
세 자매의 인상은 차분하고 지적인 느낌이었다. 첫째와 둘째가 증언을 주도했다. 그들은 또박또박 말했고 엉킴이 없었다. 감정적인 동요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막내는 겉보기로는 알 수 없었지만 약간의 장애가 있다고 했다. 대화를 나눠보니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자폐 혹은 경계선 지능인 듯했다.
이윽고 세 자매는 자신들이 직접 유년기부터 겪어온 일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저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네 살 때인데... 아빠가 저를 무릎 위에 앉히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빠가 차를 외진 곳에 세웠고, 제가 앉아있던 조수석 좌석을 뒤로 눕힌 뒤 옷을 벗어보라고...”
“열 살 때쯤인데... 제가 자고 있으니 치마 잠옷 속으로 손이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또 일이 있었는데... 그때 방안에 있던 거울에 제가 당하는 모습이 비쳐 보여서...”
“중학교 때는 그러다 임신을 했는데 아빠가 저를 보건소에 데리고 가서 낙태를 시켰어요. 얘가 동네 남자애랑 자서 아기가 생겼다고 둘러대면서...”
아빠는 딸들을 성폭행하면서 심리적으로 조종하는 말들을 내뱉었다고 한다.
“사정을 하고 나면 입을 손가락으로 막으면서 ‘괜찮아 아빠가 사랑해서 그래’라는 말을 하면서...”
“제가 발버둥을 치면 ‘괜찮아 아빠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 ‘니가 아빠 도와주는 거야, 잠깐이면 돼’라면서 달래다가 윽박지르다가 저를 힘으로 제압해서...”
“니가 이렇게 잘 사는 건 다 아빠가 고생해서인거 알지? 너 시집가지 말고 아빠랑 살자...”
가장 최근의 기억들도 있었다.
“사실 이건 너무 부끄러운 얘기라서... 그래도 이제라도 회개하기 위해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하려고요. 제가 작년에 아빠를 만나려고 여의도 호텔을 예약했어요. 그때는 강제로도 아니고 아빠가 저한테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데... 제가 괜찮다고 씻고 나오겠다고 하고...”
더 끔찍한 것은 가해자가 아빠 하나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아버지뿐 아니라 명절이 되면 작은 아버지와 큰 아버지가 제 방에 번갈아 들어와서...”
“어느 핸가는 둘이 동시에 저를 강간한 적도 있었어요.”
갑자기 정신이 어질해졌다. 내가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지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었다.
자신들이 겪어온 폭력에 대한 자매들의 기억은 명확했다. 길게는 20여년 전부터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대한 증언까지, 셋 사이에 어긋나는 기억조차 없었다. 이것이 거짓일 수 있을까?
나는 망상장애나 연극성 인격장애로 있지 않은 일을 꾸며내는 사람들을 만나본 경험이 여러 차례 있다. 하지만 세 자매에겐 그런 사람들 특유의 감정 과잉조차 없었다. 진술은 건조했고 번복도 없었다.
옆에 조용히 앉아서 딸들의 말을 듣던 엄마 김혜숙 씨가 입을 열었다. 내내 허연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찍어냈던 터였다.
“저는 최근에서야 애들한테 이 얘기를 듣고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떻게 내가 이걸 몰랐을까... 그날 밤에 바로 짐 싸서 올라왔어요.”
처음에는 이렇게 오랜 범행을 엄마가 모를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다. 아빠가 가해자인 친족성폭행 사건에서 엄마가 암묵적인 동조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제적 능력이 없고 본인도 가해자에게 억눌려 있으므로, 사건을 어렴풋이 인지하더라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제가 쭉 미술학원을 했거든요. 집을 비울 때 그런 일들이 있었나봐요. 바보같이 평생 남편 그늘에서 살면서 제가 따로 챙겨놓은 것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막막해요.”
계속 의심하면서도, 의심하지 않는 척 질문하며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는 대화는 힘이 든다. 피로한 와중에도 판단하건대 엄마가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경찰이나 검찰이 이 사건을 잘해줄 거라는 기대가 솔직히 안 돼요. 다 남편하고 가까워요. 지금도 남편이 우리 찾아내서 보복할까봐 너무 무서워요. 방송이라도 나가면 가해자가 함부로 못 움직이고 처벌도 빨리 될까 싶어서 저희 용기내서 나온 거예요 피디님, 꼭 좀 도와주세요.”
시사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십여년 하면서 온갖 거짓말쟁이들한테 뒤통수를 맞아왔다. 정치인들한테 배운 건지 정색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거짓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거짓을 가릴 때 반드시 던져보는 질문이 있다. 증언자가 얻는 이익이 있는가? 이 경우 증언을 통해 세 자매와 엄마는 경제적 기반과 고향에서의 인간관계를 비롯해 거의 모든 걸 잃게 될 터였다. 말을 꾸며낼 이유가 없어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쪽 말만 듣고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위험하다. 가해자인 아빠의 입장도 들어봐야 했다. 이런 단계에서는 기계적이 되어야 한다. 이미 감정적으로는 그 아비라는 자의 말에 전혀 귀를 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가해자는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 우리에게 매우 공격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이런 자들이 흥분하면 취재진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을 만날 때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딸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연되고 있는 정의를 앞당겨야 했다. 나는 다음날 바로 아빠 이윤회가 있는 군산의 어느 작은 마을로 향했다.
<기억의 미로 ④ 하늘문 교회>에서 이어집니다.
이 글은 제가 취재했던 실화입니다. 신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며, 경우에 따라 성별이나 나이대, 지역을 바꾸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수사 자료와 판결문, 직접 취재한 경험과 사실에 기초하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픽션이 들어갔음을 밝힙니다. 총 10편에 걸쳐 이어집니다.
Q 파일 : 세상의 숨겨진 이면과 우리가 놓친 진실에 대해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