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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미로 ④ 하늘문 교회

by 재원


10년 전,
군산


장마가 오려는지 눅눅한 습기가 집안에 가득했다. 비를 잔뜩 머금은 짙은 먹구름 떼가 아침부터 지붕 위에 몰려와있었다.


혜숙은 세 딸을 학교에 보내놓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남편과는 그 기도회날 이후 말을 섞지 않고 있었다. 집을 비우면 미술학원에 있겠거니 생각할 것이었다.


실은 교회가 목적지였다.


남편이 소란을 피웠던 그날 이후, 결국 기도회는 해산됐다. 납득할 수 없는 결정에 한동안 혜숙은 초상이라도 당한 듯 시름에 잠겨있었다. 하나님의 기적을 전하고자 굳건히 서 있던 교회가 마귀 같은 남편의 발길질에 넘어진 것이다.


문제의 그날, 남편은 교단의 노회(*교회의 상위 협의체) 임원들을 대동하고 나타났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이 이미 여러 차례 노회에 군산 교회의 이단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왔다고 한다.


목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듣는다든가, 저주의 원흉이 가족이라고 주장했던 내용에 대해 교단에서는 남편만큼이나 질색했다. 노회는 몇 차례 심판을 거쳐 기도회를 해산시켰다.



혜숙은 출석뿐 아니라 헌금 액수에서도 손에 꼽히는 성도였다. 자연스레 목사와도 가깝게 지냈다. 목사가 소개해 줄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아침부터 발길을 재촉한 것이다.


목사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느 50대 부부가 먼저 와있었다. 남자는 키가 껑충하고 각진 얼굴이 사나워 보였다. 반면 하얀 치마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성한 기운이 흘렀다.


‘가만... 저 사람들을 어디선가 봤었는데...’


기억을 되짚는 사이 목사가 반기며 인사를 건넸다.


“혜숙 집사님 생각보다 일찍 오셨군요. 서로 인사하세요. 이쪽은 지난 기도회 때 한 번 소개해 드렸는데 기억하셔요? 제가 키운 사역자들이에요. 능력이 대단한 분들입니다.”


얼굴이 각진 남자가 오른쪽 입꼬리를 억지로 들어 올리며 고개를 까딱 했다. 왼쪽 얼굴은 마비라도 된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반면 하얀 정장을 입은 여자는 얼굴에 가득 화색을 머금고 세 자매의 엄마를 끌어안았다.


“자매님 환영합니다. 고난의 길에 함께할 수 있으니 나중에 은혜받으실 거예요.”



말투를 들으니 혜숙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 언젠가 기도회날이었다. 자리가 끝날 즈음 목사가 둘을 교단으로 불러올렸다.


“자, 여러분! 이 두 분께 주목해 주세요. 부부세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가정입니다.


우리 강문석 장로님은 검찰에서 30년을 섬기셨습니다. 저와 오래도록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해 오셨고 하나님께서 치유의 은사를 부어주셨어요. 자잘한 병은 충분히 고칠 수 있는 기도의 힘을 가진 형제십니다. 제가 천국의 열쇠를 맡겼어요.


그리고 여기 구미영 권사님. 저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들으실 수 있는 능력을 받으셨습니다. 이분들이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기적을 행하고 마귀를 쫓고! 천국으로 우리를 이끌어갈 겁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할렐루야!”


보통 치유받은 성도들을 소개할 때는 위에 올라오게 하는 일이 절대 없었다. 하지만 그 부부는 기꺼이 자기 옆에 서라고 해서 굉장히 특별한 분들인가 보다 — 하고 생각했었다. 그들의 머리 위 십자가에서 빛이 뿜어 나오는 듯했던 선명한 풍경이 떠올랐다.



넷이 앉아 담소를 나누는데 혜숙의 넋두리 끝에 자연스레 남편 얘기가 나왔다. 그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강문석 장로가 입을 열었다.


“그 형제... 죄의 사슬이 너무 깊어요. 제 눈에는 분명히, 악한 영의 결박이 보였습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영적 저주 때문이라고 저는 봐요.


그 형제가 제 앞에까지 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은사를 다시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만... 만일 그 영이 끊어지지 않으면요, 어느 시점에서는 관계를 정리해야 할 수도 있어요.


집사님,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합니다.”


강문석 장로의 단호한 말에 혜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씀만 들어도 감사합니다 장로님. 저는 근데... 남편보다 더 급한 게 많아요. 우리 첫째랑 둘째가 이제 서울 가서 공부를 시작하는데 믿음 생활을 어디서 해야 할지도 고민이고요.


무엇보다 이제 기도회를 못하니까... 우리 아픈 막내 치유하는 하나님의 은사가 어디서 부어질 수 있을까... 그게 제일 간절한 기도 제목이에요.


남편은요... 그냥 지옥에나 안 가면 저는 감사할 것 같아요.”



잠자코 듣던 구미영 권사가 갑자기 벅찬 표정으로 혜숙의 손을 덥석 잡았다.


“혜숙 집사님, 믿음 있으시잖아요. 무엇이 두려우세요? 그 일로 목사님께서 부르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집사님 발걸음을 이 자리로 인도하신 거예요. 다 뜻이 있습니다.”


강문석 장로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받았다.


“저희가요, 서울에 교회를 하나 개척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믿음 깊은 목회자를 담임으로 모셨어요.


그 목사님 댁도요, 처음엔 몸이 많이 안 좋으셨어요. 피부암 구강암 다 있었는데요. 여기서 치유 은사 받으셔서 부부가 다 회복됐습니다. 지금은요, 오직 믿음으로 교회를 섬기고 계세요.


서울에 있는 따님들 걱정 마시고 다 저희한테 맡기세요. 막내 따님도요, 저희가 치유기도 계속 드릴 겁니다.”



각진 장로의 얼굴이 갑자기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믿음 깊은 분들이 이 고난의 때에 서울에서 교회를 하신다니... 시름이 조금은 걷히는 기분이었다.


“진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느껴지네요. 교회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강문석 장로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 계신 목사님이요, 저한테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주셨거든요. 그 열쇠로 함께 천국 문을 여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 이름을 ‘하늘문 교회’라고 지었어요. 하늘의 문이 활짝 열리는 교회입니다. 아멘!”




부인하는
가해자


군산에 도착하니 밤이었다. 검은 물감을 공기 중에 가득 풀어놓은 것처럼 깜깜한 밤, 멀리 하얀 점 하나가 찍혀있었다. 너른 벌판 가운데 있는 세 자매의 이층집이었다. 필히 저 빛은 세 자매의 아빠 이윤회가 켜놓고 있는 것이리라. 개구리 우는 소리가 두려울 정도로 귓가에 웅웅댔다.


검은색 취재차량 안에서 창문을 내리고 그 집을 가만히 바라봤다. 지금 들어가나요? 앞자리에 있던 조연출이 물었다.


이윤회는 노모와 함께 집에 남아있다고 들었던 터다.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 노모 앞에 내가 들은 모든 것을 까발려도 될 정도로 나는 확신하는가?


고민 끝에 나는 퇴각을 결정했다. 내일 출근시간에 맞춰 이윤회가 운영하는 병원 앞으로 찾아갈 것이다.



다음날 아침.


병원 입구가 보이는 길목에 멀찌감치 차를 세워놓고 기다렸다.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순순히 인터뷰에 응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윤회를 만나는 장면을 머릿속에서 몇 번 시뮬레이션 해봐도 예상 시나리오는 비슷했다.


출근하는 이윤회를 병원 앞에서 마주친다. 내가 몇 개의 질문을 던져도 그는 모른 척한다. 그가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의 입구를 닫고 서둘러 들어간다. 그 문을 열고 쫓아 들어가면 건조물 칩임죄로 형사고소를 먹는다. 상황 종료.


시사 프로그램 피디들이 자주 겪는 일이다. 고소를 안 당하려면 짧은 동선 안에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바짝 긴장을 하고 기다리는 중...


한 중년 남자가 은색 세단에서 내렸다. 사진에서 본 이윤회의 얼굴이었다. “가자!” 차 문을 열고 조연출과 함께 뛰어나갔다. 그가 병원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막아서야 했다.


“이윤회 선생님!”



내가 이름을 부르자 그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누구신지... 무슨 일이시죠?”


나는 출처를 함구하고 내가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아직 이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짧고 빠르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잠시 우리를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환대까지는 아니어도 뜻밖의 승낙에 당황했다. 의연한 척 따라 들어갔다. 소독약 냄새가 훅 끼쳐드는 병원 복도를 통과하자니 머리가 새하얘졌다. 시나리오는 늘 어긋난다. 침착하자.


이런 경우 가능성은 두 가지다. 정말 사실이 아니어서 억울하므로 할 말이 많은 경우, 아니면 거짓 정보를 줘서 나를 구슬리기 위해서. 어쨌거나 대화의 기회는 소중하다. 내가 확인해야 할 것들을 다시 한번 정확하게 떠올렸다.



원장실은 생각보다 낡고 좁았다. 우리에게 앉으라고 손짓한 소파는 30년은 넘어 보였다. 딸들이 강제적인 성관계 장소 중 한 곳으로 지목한 그 소파였다.


이윤회가 믹스 커피를 타서 얼음 몇 알을 넣어줬다. 이런 순간 나는 갈등한다. 혹시 시간이 흐르면 사체에서 검출되지 않는 독이나 수면제를 탄 건 아닐까? 먹는 둥 마는 둥 하자니 침묵을 지키던 그가 입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일단... 들으신 얘기 전부 다 사실이 아닙니다.”


범죄 혐의를 부인하는 가해자를 숱하게 보아왔다. 대부분 흥분한다. 하지만 이 사람은 감정의 동요가 없다. 지나치게 침착해 보인다. 고도의 속임수일까?


“글쎄요, 저희가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근거는 뭡니까?”


“시간이 좀 있으신가요? 거의 10년 전 일부터 차근차근 말씀드려야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게 워낙 기묘한 일이라서요.”





<기억의 미로 ⑤ 연극>에서 계속됩니다.



이 글은 제가 취재했던 실화입니다. 신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며, 경우에 따라 성별이나 나이대, 지역을 바꾸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수사 자료와 판결문, 직접 취재한 경험과 사실에 기초하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픽션이 들어갔음을 밝힙니다. 총 10편에 걸쳐 이어집니다.
Q 파일 : 세상의 숨겨진 이면과 우리가 놓친 진실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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