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늘문 교회
하늘문 교회는 2010년경 원주에서 온 유승현이라는 젊은 목사가 개척한 곳이었다. 대학 선교회를 이끌었던 그는 후배들을 자신이 개척한 서울 하늘문 교회로 데려왔다. 그래서 초기에는 젊은 교인들만 스무 명 가량 모여서 예배를 했다. 고향을 떠난 청년들에겐 가족 같은 공동체였다.
그러던 어느 예배날, 그 근처에 새로 이사왔다면서 어느 중년 부부가 나타났다.
검찰에서 30년 근무했다는 남자 장로는 카리스마가 넘쳤고 어딘가 영적인 권위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 아내라는 여자 권사도 특유의 친화력과 신앙적인 연륜으로 청년 교인들을 끌어당겼다. 부부에게 신비한 능력이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들이 바로 군산에서 온 강문석 장로, 구미영 권사 부부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청년 교인들 사이에 특별한 믿음이 생겨났다. 강문석 장로가 귀신을 쫓거나 병을 낫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 구미영 권사도 하나님의 계시를 듣거나 환상을 보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교인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를 그들이 해결해줄 수 있다는 믿음은 신에 버금가는 권위로 이어졌다.
심지어 이 교회를 개척한 유승현 목사조차도 부부에게 의지하곤 했다. 안타깝게도 유 목사는 구강암을 앓았고, 목사의 아내에게는 심한 피부병이 있었다. 이들은 강문석 장로에게 기대 매주 간절한 치유 기도를 올렸다. 병이 잘 낫지 않자 강문석을 가르쳤다는 군산의 교회까지 동행해서 병이 낫기를 기도했다.
상황이 이렇게되니 강문석과 구미영 부부는 교인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힘을 행사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불치병까지 고친다는 신비한 능력에 존경을 넘어 복종을 바치는 교인들도 생겨났다. 연애나 진학, 이사 같은 개인적 대소사까지 일일이 강씨 부부에게 허락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2018년 말, 유승현 목사가 갑자기 교회를 훌쩍 떠나버렸다. 직접 개척한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후임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갑작스레 목사가 사라진 배경을 두고 지역 교인들 사이에 여러 말이 돌았다.
혹자들은 강씨 부부가 유 목사를 꼭두각시처럼 부릴 뿐, 제대로 교회를 운영할 권한을 주지 않으면서 갈등이 생겼다고 했다. 부부의 주도로 기도가 신비주의적인 방향으로 흐르곤 했는데 여기에 목사가 반대했다고도 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유 목사가 떠날 때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강씨 부부를 따르고 있었다. 심지어 유 목사가 원주에서 데려온 후배들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수년간 하늘문 교회에 몸 담고 있던 세 자매도 물론 강씨 부부의 편이었다.
2019년.
강문석은 새해 첫날 갑자기 회개운동을 선포했다. 자신이 보기에 청년 교인들이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므로 죄가 더 깊어지기 전에 정화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거의 매일 집중적인 기도와 신앙 상담, 고백이 이어졌다. 신앙이 깊은 청년 교인들은 이 때를 기회로 여겼다. 강씨 부부가 지적한 죄를 씻고 천국에 입성할 수 있는 기회.
천국으로 가는 열쇠는 강문석이 들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것은 구미영이었다. 죄를 솔직히 고백하지 않으면 마귀가 너희를 지옥으로 데려갈 거라는 엄포 앞에 청년들은 죄의식이 느껴졌던 거의 모든 행동들을 털어놓았다.
일상의 거의 모든 생활을 함께하는 그들의 폐쇄적인 커뮤니티 속에서 강씨 부부의 말은 절대적인 명령이나 다름 없었다.
거듭된 다그침에 청년들이 하나 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고3 때 스트레스가 극심했는데 그 당시 인터넷 음란 사이트에서 채팅을 하며 서로의 성기를 보여줬습니다...”
“예전에 만났던 남자친구와 서로 알몸 사진을 찍어 보내며 음란한 말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중학교 때 자위를 할 것이 없어서 볼록 튀어나온 난간 같은데 서서 자극을 주었던 게 생각이 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꽤 오래 음란물을 봐왔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넘어지고 자위를 했습니다...”
“저는 성에 이미 중독되어서 동성애라는 죄악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때 모임에서는 누군가 성적인 경험을 털어놓으면 구원을 향해 용기있게 한 발 나아간 행위로 칭송받았다. 아무것도 털어놓지 못하는 청년은 여전히 마귀의 의지에 지배되는 자로 공개적인 비판을 받거나 수모를 겪었다.
말할 것이 없는, 혹은 진정 말할 수 없는 기억을 가진 이들에게 이 시간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데 왜 너는 아무 것도 꺼내지 못하냐고, 악독한 영이 네 안에 있는 것이 틀림 없다고, 용기도 의지도 없는 나약한 죄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윽고... 고백하고 인정하지 않는 자들을 위한 의식이 시작되었다. 기억의 봉인을 부수고 억눌린 죄를 끄집어내는 의식이었다.
군산,
이윤회의 병원
이윤회 원장은 내가 당사자들로부터 직접 들은 모든 말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딸들과 자신의 아내가 어떤 이상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 모든 기묘한 '연극'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아마 시작은... 막내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만나봐서 아셨겠지만 막내가 좀 아프거든요. 우리 어머니가 계속 아들을 원하셨고... 첫째랑 둘째딸이 똑똑했으니까 아들 하나 더 낳으면 좋지 않겠냐 한건데 결국 안 된거죠. 우리 어머니는 한동안 아내한테 말도 안했어요. 근데 애가 장애까지 있다니까 아내 입장에서는 병이라도 고쳐보자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지적장애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약으로 고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 사람마다 생김이 다르듯 누군가 겪는 발달상의 특성일 뿐이다.
병원에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교회에 가서 기도를 올리며 치유하겠다는 발상에 이윤회 원장은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가족들이 같이 다니던 교회를 떠나 군산의 어느 신비주의적 기도회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딸들도 함께였다.
“내가 좀 알아봤죠. 그랬더니 거기가 무슨 치유 은사, 기적 이런거 하는 좀 이상한 사이비 교회라는 거예요.
거의 1년을 가지 말라고 혼냈어요. 근데 아주 눈이 돌아있더라고요. 욕도 하고 싸우고 생활비도 끊어보고 갖은 방법을 써봤는데 안되겠다 싶어서 최후의 수단을 썼어요.”
“최후의 수단이요?”
“아내가 다니는 군산 교회를 이단으로 신고했죠. 한동안 거길 깨뜨리려고 애를 좀 썼어요. 결국 기도회가 해산됐으니 거기 빠진 놈들이나 아내 입장에서는 내가 무슨 마귀에라도 씐 걸로 보였겠죠.”
교단에서는 군산 교회의 이단성을 조사했다고 한다. 목사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병을 고친다고 주장하고, 교인들을 가족과 분리하려는 교리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담당 목사의 지위까지 박탈하지는 않았지만 기도회는 결국 해산됐다.
“근데 그러고 나서 진짜 문제가 시작된 거예요. 나도 최근에 고소당하고 나서야 그동안 딸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됐어요.”
군산 교회에 못 가게된 아내는 목사의 소개로 어느 장로-권사 부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된 아내는 서울의 어느 교회로 딸들을 인도했다고 한다.
“그냥 서울에 무슨 교회 다니나보다 했어요. 저도 바빴고 첫째 둘째는 뭐 알아서 잘 사니까... 결국 막내도 서울 올라가고 나서 그 교회를 같이 다녔더라고요.
근데 그 교회에서 올해 초부터 성적인 걸로 회개하라고 다그쳤나봐요. 그러면서 무슨 의식 같은 걸 했다는데... 우리가 볼때는 여기에서 거짓 기억이 주입된 거 아닌가 싶어요. 자기들이 부모한테 성폭행 당했다는...”
“근데 무슨 영화나 SF 소설도 아니고 사람 머리에 그런 기억을 인위적으로 집어넣는 게 말이 되나요? 그것도 잘 지내던 부모한테 성폭행 당했다는 정 반대의 기억을요.”
“나도 그 과정이 정확히 어떤 건줄은 몰라요. 하지만 뭔가 일이 일어난 건 확실해요. 왜냐면 지금 그 교회에 우리 딸들하고 비슷하게 부모한테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하는 애들이 열 명도 넘게 있어요. 심지어 누나한테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하는 남자애, 엄마한테 성폭행 당했다는 여자애도 있어요.”
<기억의 미로 ⑥ 정화>에서 계속됩니다.
이 글은 제가 취재했던 실화입니다. 신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며, 경우에 따라 성별이나 나이대, 지역을 바꾸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수사 자료와 판결문, 직접 취재한 경험과 사실에 기초하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픽션이 들어갔음을 밝힙니다. 총 10편에 걸쳐 이어집니다.
Q 파일 : 세상의 숨겨진 이면과 우리가 놓친 진실에 대해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