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세상의 이상한 소리는 들을 만큼 들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이 말은 정말 특별히 기가 막혔다. 이게 사실이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끔찍한 친족 성폭행 피해자들이 우연찮게 한 교회에 모였다는 말인가?
“열 명도 넘게 있다... 제가 잘 믿기지를 않아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그게 정말인가요? 어떻게 아셨죠?”
“고소당한 분이 또 있어서 같이 수소문해서 알게 된 겁니다. 지금 피해가족 협의회 같은 걸 만들려고 하고요. 우리가 아들딸 성폭행한 파렴치범이 돼있으니 대응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애들 구출해 와야죠.”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그 교회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배경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면서, 동시에 이윤회 원장이 내게 잘 준비된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의심해야 했다.
“그 교회에서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그건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근데 사이비들이 종종 그런 주장을 합니다. 가족이 죄의 근원이다... 인연을 끊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면서 교주를 신처럼 모시고 자기들끼리 생활하는 거죠. 어떤 과정이었는지는 몰라도 아마 가족들이 너희를 성폭행했다는 생각을 심어서 가족들하고 분리시키려고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이 설명에는 타당한 구석이 있었다. JMS, 영생교, 아가동산... 한국 사회의 많은 이단들은 정서적 허기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포섭해 가족으로부터 떼어냈다. 그러고 나서는 노동력이나 돈을 강탈하고 심지어는 성적인 착취도 일삼았다.
세 딸이 자신을 고소한 것도 그런 종교적 망상과 강요의 결과라는 것이 이윤회 원장의 설명이었다.
“나 말고 다른 고소당한 분이 있다고 말씀드렸죠. 그분은 심지어 선교사예요. 20년 전쯤 외국으로 떠나서 어려운 환경에서 사역해 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조카한테 고소를 당했어요. 어릴 때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 거예요. 참 황당한 일이죠... 선교사님이 워낙 똑똑한 분이라 기억이 심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계실 거예요. 꼭 만나보세요.”
"알겠습니다. 혹시 따님들 다닌 교회 이름을 압니까?"
“천국에 입성할 수 있다고... 이름이 하늘문 교회예요.”
서울,
하늘문 교회
5월의 하늘은 맑았다.
황사는 사라지고 연둣빛 나무들이 바람에 보드랍게 흔들렸다. 세상은 봄이었다.
하지만 하늘문 교회 안은 철저하게 계절과 단절되어 있었다. 지저분한 시트지로 가린 창문 틈새로 흘러든 햇살이 뱀의 혓바닥처럼 바닥에 드리웠다. 어둠 속에 무표정한 얼굴들이 앉아있었다. 대부분 이삼십 대 남녀들이었다.
오늘은 의식이 있는 날이었다. 죄를 정화하고 악한 영혼을 봉인하는 날. 공기 속엔 무거운 긴장감이 가득했다.
예배 공간은 스무 평 남짓으로 작고 낡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물걸레로 여러 번 닦은 듯 바닥이 번들거렸고, 가운데는 하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가 조용히 누워있었다. 세 자매 중 첫째 이유정이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숨소리라도 들으려 애썼지만 하얀 천 아래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철컥.
무거운 적막을 찢으며 예배실 문이 열렸다. 발소리가 무겁고 단단했다. 구미영 권사가 힐을 신은 채로 걸어 들어왔다. 칼 대신 성경을 들고, 수술을 시작하는 집도의 같은 기세였다.
“자, 다들 가운데로 모이세요.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뒤따라온 강문석 장로가 문을 닫고 조용히 구미영 권사 옆에 앉았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하나의 영혼을 데려왔습니다. 이유정 자매는... 직장 생활에서 상사와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다고 지난 성 상담 시간에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그 뿌리가 무엇인지는 기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유정 자매의 집안에 굉장히 음란한 영이 흐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굴비처럼 성적으로 엮여있어서 어머니와, 동생과, 심지어 아빠와 서로서로 성적 관계를 맺을 수 있을 정도로 문란한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제게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교회의 법으로 보지 않아도 여러분 볼 수 있습니다. 중년 남성이 소리 지르는 것을 왜 두려워할까요? 어렸을 때 아빠한테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정 자매는 아직도 기억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구미영 권사가 준엄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유정을 내려다봤다. 얼굴부터 가슴, 흰 치마 밑의 다리, 하얀 발까지 천천히 훑어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딸에게 깃든 음란의 영, 더러운 기억, 악한 그림자를 떼어낼 것입니다. 주님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종아. 너는 이 아이를 구하라. 이 아이를 정결케 하라... 오늘 그 일이 이뤄질 겁니다. 여기서 피가 흐르더라도, 울음이 터지더라도, 소리를 지르더라도, 누구도 기도를 멈추지 마세요. 악한 영은... 여러분의 동정심을 먹고 자랍니다.”
유정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을 떨고 있는 것은 근처의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었다. 구미영 권사의 부릅뜬 눈 위로 오래된 형광등이 깜빡였다.
권사가 손을 들어 유정의 얼굴을 덮은 흰 천을 지그시 눌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기도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주여... 주여 주여 주여... 음란의 영, 문란의 영, 더러운 영이여... 이 시간!... 하하하... 속지 않는다... 속지 않아... 나는 안다... 가짜 눈물... 가짜 고백... 다 들렸다... 다 들었어... 너 누구냐! 너 누구야! 이 딸 속에 둥지 튼 음란한 영, 더듬거리지 마! 나한테 들켰어!”
구미영 권사의 목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여러 언어가 뒤섞이는 듯한 방언이 터져 나왔다. 권사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어떤 환영을 보고 있는 듯했다.
“시이이이익... 바라타타... 예수피... 주여... 이 딸의 허리를 감싼 뱀의 형상은 불로 태우시고... 눈동자에 숨은 그림자는 찢으소서! 라마다다다... 에슈아샤라... 예수의 이름으로... 아멘...!”
아멘이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청년들도 손바닥을 올리고 아멘을 외쳤다. 구미영 권사는 방언을 토해내다 갑자기 입술을 틀어막고 고개를 푹 숙였다. 권사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교인들은 공포에 압도된 듯 숨을 참았다. 권사가 다시 눈을 부릅뜨고 울먹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아아아아... 주여... 주여... 왜... 왜 저런 걸 보여주시나이까... 창고 같은 방... 어두운... 먼지 쌓인 그 방 안에... 너! 너... 그 안에 감춰놨지... 숨겼지... 잠갔지...”
권사가 갑자기 입가에 피식 웃음을 띄웠다. 하지만 눈에서는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천사가 열쇠 줬잖아... 예쁜 금빛 열쇠... 근데 너... 너 그걸... 움켜쥐고 못 열었어. 지금도 망설이고 있어! 지금도 문 앞에서!... 정액에 빠진 병아리... 흐으윽... 노란 털에 끈적한 거 묻었어... 주여... 냄새... 역겨운... 썩은 내...”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권사가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헛웃음을 뱉었다.
“합환채... 마른 고추... 너 그걸 먹고 뭐하려고? 시들어 말라붙은 열매들... 그게... 방바닥에 흩어져 있어. 너... 그 안에 누워 있었잖아... 왜! 거기서 나오질 않아? 주님이 불렀잖아! 열쇠 줬잖아!”
소리치던 권사가 번쩍 든 손을 내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그 합환채는 어디서 구한 거야? 누구랑 했지? 몇 명이었니?... 흐윽... 으윽... 이 딸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주여... 주여... 주여... 너! 지금도 그걸 그리워해! 아니라고 고개 젓지 마! 성령은 거짓말에 속지 않아!”
권사가 유정의 얼굴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유정은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지금! 이 더러운 영이 몸을 튼다. 기뻐했지? 더럽혀지면서... 죄는 달콤했지? 이 입술로 하나님 찾을 수 있겠니? 대답해봐, 어! 대답해봐!”
권사가 하얀 천 밑의 얼굴을 짓누르며 날카롭게 소리 지르자 유정이 숨이 막히는 듯 발버둥 쳤다. 눈이 잔뜩 충혈된 구미영 권사는 일그러진 얼굴로 유정을 노려봤다.
“하나님께 버림받기 전에 회개해... 토해내! 너 지금 말 안 하면... 주님이 너한테 등을 돌려. 그리고 그때... 진짜 지옥이 시작되는 거야.”
지옥. 이 자리에 모인 신도들에게 그 말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죄를 짓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고, 그 죄를 토해내고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여기에 있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권사가 반성하지 않는 죄인들을 지옥에 던져버릴 수 있다는 공포에 신도들은 압도당했다.
주변을 빙 둘러싼 청년들이 미친 듯 뱉어내는 방언 소리에 압도된 유정은 점차 의식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도와 주문이 액체처럼 차올라 코와 입, 뼛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문득, 한 줄기의 낯설고 불쾌한 기억이 감은 눈 너머로 희끄무레한 실루엣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억의 미로 ⑦ 이중맹검>에서 계속됩니다.
이 글은 제가 취재했던 실화입니다. 신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며, 경우에 따라 성별이나 나이대, 지역을 바꾸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수사 자료와 판결문, 직접 취재한 경험과 사실에 기초하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픽션이 들어갔음을 밝힙니다. 총 10편에 걸쳐 이어집니다.
Q 파일 : 세상의 숨겨진 이면과 우리가 놓친 진실에 대해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