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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Dec 26. 2017

자전거 도난사건


자전거를 도둑맞았다.


두꺼운 자물쇠를 채워 집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누군가가 달싹 들고 간 것이다. 딱 일주일 전에는 양천구청역에 세워놨다가 누군가가 안장만 쏙 뽑아간 일도 겪었던 터였다. 그 황당한 일을 당하고, 거금을 들여 다시 안장과 받침봉을 해 넣었는데 일주일 사이에 아예 자전거가 없어졌다. 자전거를 타고 역에 가려고 일층에 내려가서 자전거들을 확인하는데! 어디에도 내 하얗고 빨간 자전거는 보이지 않았다. 오만가지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주변을 살펴보고 동네를 돌았지만 있을 리가 없었다. 어쨌든 빨리 가야 해서 계획과 달리 버스에 몸을 실었지만 쉽게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한참 이 일을 생각했다. 내 마음에 이는 감정의 물결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먼저 당황스럽고 허전한 마음이 느껴졌다. 자전거를 가져간 아무개에 대한 분노와, 나아가 말세다! 말세! 중얼거리며 동시대 인류에 대한 불신마저 느꼈다. 자전거를 다시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시 사서 또 도둑맞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혼란스러움과 막막한 마음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 순간 자전거의 부재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여기서 보통은 생각을 멈추지만, 오늘은 좀 더 가보기로 했다. 왜 그럴까. 왜 이런 일로 화를 내고, 누군가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나아가 내 유한한 삶의 여러 날을 고통스럽게 만들어야 할까.


김군은 왜 내 허락도 없이...


이 자전거는 내가 9만 원을 주고 중고로 작년 이맘때쯤 산 것이다. 일산까지 가서 사 왔는데, 시세보다 싸게 얻어서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안장도 도둑맞고 새로 해 넣고 한 것들을 고려하면 아마 지금은 만 원짜리 종이 열다섯 장 정도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김군. 세상의 김씨 남자들이 기분 나빠할 수도 있겠지만 편의상 내 자전거를 들고 간 이를 김군이라 칭하겠다. 김군이 나의 화를 산 것은 나에게 지폐 열다섯 장을 주지 않고 그것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아마 스무 장 정도를 주었다면 나의 환심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김군. 그렇다면 김군은 왜 내 자전거를 허락도 없이 열다섯 장의 지폐도 남겨두지 않고 가져갔단 말인가.


아마 그도 누군가의 분노와 고통을 자아내기를 즐겨서 자전거를 훔치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떳떳하게 살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다소 위험하고, 스스로에 대한 가치감까지 떨어뜨리는 이런 일에 그가 나서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보다 더 내 자전거에 대한 필요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중고로 되팔아 남는 지폐 몇 장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자전거를 도둑맞고 나서도 오늘 밤 동네 자전거 쓸이라도 함 할까? 따위의 생각을 내가 하지 않는 걸 보면, 김군은 아마도 나보다는 더 궁핍하고 돈에 대한 필요가 큰 사람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나만큼이나 혹은 나보다 더 이 자전거가 필요했던 누군가가 그걸 가져갔을 뿐이다. 다만 김군이 나의 허락을 받지 않은 대목에 있어서는 꿀밤이라도 한 대 먹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실은 나라는 존재조차도 영원한 것은 아니며 어차피 모든 물건을 영원히 소유할 수도 없지 않나. 다만 그것이 예상치 못한 과정을 거쳐 다음 사람에게 갔다고 해서 하루를 고통과 분노 속에서 보낼 필요는 없었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소유물이라는 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법이다. 보통은 돈이 많은 사람이 많은 걸 갖는 게 지금 세상의 이치지만 그것보다야 필요한 사람이 쓸 만큼 갖는 게 멋진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소유물을 쌓아 행복이나 만족을 키우려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소유물을 갖기 위해 돈의 노예로 살기도 하고, 소유한 것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나조차도 그런 습성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나의 화폐 손실과 시간의 낭비를 셈하며 분노와 짜증으로 하루를 보냈다.


눈 앞에 김군이 앉아있다고 생각하고 한 번 웃어봤다. 그도 미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씩 웃는다. 그걸로 됐다. 부디 나보다 절박한 필요를 가진 그가 잠시 나의 것이었던 자전거를 유용하게 쓰기를. 그리고 우리 김군이 김씨 아저씨, 혹은 김씨 할아버지가 되었을 땐 이런 일이 아득한 실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아마도 그것은 김군 개인의 의지보다는 세상이 앞으로 그에게 얼마나 각박하게 구는지에 달린 문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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