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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Dec 31. 2017

물들다, 물들이다


훈련소의 기억


육군훈련소 수료 하루 전날이었다. 훈련소 차원에서 훈련병들에 대한 설문조사가 실시됐다. 조교나 간부들에 의한 폭언, 폭행 여부를 묻는 것이었다. 일상적으로 갖은 비인간적인 대우에 시달렸던 우리들은 며칠 전부터 이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랬던 분위기에 이상한 기류가 감지된 건 그날 아침부터였다. 우리 중대의 간부들이 훈련병들을 모아놓고 협박과 회유를 한 것이다. 오늘 훈련소 중앙에서 나와 조사를 할 건데, 우리 중대 조사지에서 단 한 건이라도 고발 내용이 나오면 너네 각오해라. 밤새서라도 복도에 모아놓고 그놈 색출할 거니까. 이런 노골적인 협박의 한편으로, 조교들은 은근한 말로 자신들의 불쌍한 처지를 흘리며 훈련병들의 동정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나는 그렇다 해도 40일이 넘게 시달린 내 동기들의 생각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설문 조사지가 배포되자 대부분의 훈련병들은 펜을 들지도 않고 멀뚱이 있음으로써 간부와 조교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간부들이 강당의 복도를 오가며 감시를 하기도 했지만, 출소 하루를 앞둔 상황에서 그렇게 아무것도 못 쓸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내심 놀랐다. 불과 엊그제까지 적의를 불태우던 이들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나는 그런 이들을 이해하기도 어려웠지만, 나 자신도 그렇게 무력하게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명백하게 옳지 않은 일을 목격했고, 동시에 그들의 행위를 덮으려는 시도까지도 경험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를 종이 위에 또박또박 적었다.


돌아 나오는 길에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아직도 기억난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다 재원이 형 때문이야. 살갑게 지내던 아이들이 슬금슬금 나를 피하는 것이 느껴졌다. 조교와 간부들의 처지를 두둔하는 두런거림도 들렸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부당한 시스템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분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등병의 자살시도


힘겨웠던 2년의 시간도 어느덧 지나갔다. 제대라는 생각에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고 있던 2011년의 여름이었다. 전역을 한 주 남겨둔 어느 저녁, 나는 즐겨 찾던 아지트 - 간부들이 다 퇴근한 사무실 구석의 책상 - 에 틀어박혀 책을 보고 있었다. 부대 애들의 떠드는 소리나 간부들의 훼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는 이 곳을 나는 좋아했다. 그런데 갑자기


절규에 가까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책을 내던지고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그곳에는, 전입 온 지 두 주가 지난 어떤 이등병이, 왼쪽 손목에 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비칠비칠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앞뒤로 웅성이며 몰려있는 아이들은 아무도 손을 쓰지 못했다. 그의 다른 손에 여전히 들려있는 두터운 공업용 커터칼 때문이었다. 뒤이어 당직 간부가 달려왔고, 구급차가 왔고, 폭풍 같은 밤과 낮이 지나갔다. 이등병은 죽지 않았다. 그 아이는 군대가 늘 그렇듯 아주 간단하게 처리되었는데, 후방의 어느 부대로 전출되어버렸다.


며칠을 충격에 빠져있던 나도 전역과 함께 이 일을 잊었다. 그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전역한 부대 선후임들과 함께 간 연말 면회 자리에서였다. 이 친구들은 한 목소리로 그 아이의 행동이 좀 더 편한 부대로 가기 위한 쇼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직 부대에 남아있던 아이들은 그 자살시도로 인해 자신들이 얼마나 피곤 해졌는가를 호소하며 사라진 친구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날 만난 간부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한술 더 떠, 그 원래 그랬던 애가 평온한 우리 부대에 와서 괜한 피해를 입힌 사건으로 그 일을 규정하고 있었다.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자기 존재를 없애는 것이 낫겠다 마음먹은 어떤 인간의 극심한 고통을 무게감 있게 여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인가. 조직에게 가장 편한 논리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개인들의 발견. 나는 문득, 훈련소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물들다, 물들이다.


물들다. 나는 훈련소의 동기들이 원래 비겁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 부대의 사람들 역시 원래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비인간적인 이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들 속에서 속절없이 주변의 색깔들로 물들어버린 사람들을 발견한다. 우리는 어쩌면 처음부터 더러운 물속에 담가놓은 스펀지 같은 무방비의 존재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직과 사회의 압도적인 논리를 거부하며 물들기를 거부하는 것이 생존을 위협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나. 우리는 결국 강자의 색채로 우리 자신을 물들이고, 그것을 보호색 삼아 연명하는 비루한 생존법을 선택해야만 하는 걸까.


물들이다. 바보 같은 선택지가 하나 남아있다. 스스로를 물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명한 색을 함께 지키고 물들일 사람들을 찾는 것이다. 3년 전의 훈련소에서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누군가는 묵묵히 자신이 기억하는 사실을 적어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잠시 조직의 색에 덮여있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아직 제 색을 다 잃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바보 같더라도 그렇게 사는 것 외에 달리 어떤 삶을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2009년부터 서른 살이 되던 2011년까지, 2년여간 군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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