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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Jul 24. 2018

마나님 레시피 | 혼이 담기는 까칠한 그릇

보고 나서 쓰다.


조미료
입장금지


내가 이곳에 처음 간 것은 날이 약간 풀린 겨울날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어느 작은 영화관을 습관처럼 다니곤 했는데, 동행이 있는 날이면 영화를 보고 나와 주변 식당을 탐문하곤 했다. 그러다 "조미료 입장금지"라는 당당한 글귀가 눈길을 끌어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이다.



처음 안에 들어가니 두 테이블에 손님이 있었다. 자리가 많았으므로 우리는 별생각 없이 네 명 앉는 테이블에 짐을 부려놓고 앉았다. 그러자 갑자기 마나님(주인장)이 화를 버럭 내는 것 아닌가.


"우리 가게는 그렇게 아무 데나 막 앉는 거 아니야!"


주인이 까칠하다는 건 사전 검색을 통해 알았지만 선빵이 들어오니 얼얼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똥 싼 아이처럼 엉거주춤 몇 분 서있었다. 그러고 있자니 마나님이 자기 할 일을 다 마치고 와서는 비어있는 2인석에 주섬주섬 수저를 챙겨놓았다. "여기 앉아!"


양반집 어른이 시종 대하듯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당하자니 약이 올랐다. 아니 대체 얼마나 음식이 맛있길래 이렇게 손님을 막대하면서도 오래 장사를 하고 있는 거야?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일단 처음 가봤으니 대표 메뉴를 맛봐야 했다. 첫 시험대에 방실비빔밥과 수제치즈 파스타를 올렸다.


수석합격!


일단 비주얼은 합격. 기교 없이 단정한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 맛은? 방실비빔밥을 살살 비벼 한 숟갈 처음 입에 넣으니 우선 질 좋은 참기름의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그러고 나면 된장인 줄 알았던 장아찌의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혓바닥에 스며든다. 여기에 갖은 야채들과 볶은 김이 풍미를 더한다. 별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는 여느 화려한 파스타와 달리, 정말 집에서 만든 듯 단출한 수제치즈 파스타는 어떨까. 한입 먹어본다. 별다른 양념도 없이 치즈로 짠맛을 내고 야채와 버섯을 투박하게 썰어 넣은 간지가 멋 부릴 줄 모르는 범생 같다. 하지만 성큼성큼 떼어 넣은 수제치즈가 씹힐 때 담백한 고소함이 남다르고, 올리브 오일에 뒤적여진 면은 향긋하다. 가볍게 볶아서 생기를 잃지 않은 색색깔 브로콜리의 아삭이는 식감 또한 일품이었다. 아, 이것도 합격이다. 굳이 등수를 매기자면, 이번 달에 먹은 것 중에 수석합격이다.



가게가 조금 한가해지자 마나님이 우리 테이블 옆에 와서 말을 꺼냈다. 나는 손님한테 싫은 소리도 잘 하지만 나한테는 그보다 훨씬 더 엄격해. 내가 최고의 요리를 내기 위해서 힘들어도 나 스스로 그렇게 하는 거야. 그렇게 해서 손님들한테 요리를 내올 때 내가 행복해, 뭐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마나님은 우리가 음식을 먹는 내내 테이블 주위를 서성이면서 메뉴에 대한 이모저모를 늘어놓았고, 어딘가에서 온 인터뷰 요청 전화를 받아서 단호히 거절했으며..ㅋ 음식이 어떤 종류가 있냐고 묻는 손님 전화에, 와서 먹어보지 왜 전화로 하냐고 성질도 냈다. 얘기하는 중간중간 안 밉게 자기 자랑도 좀 하셨으며, 오늘 뭐하러 여기 왔냐고 묻고 영화 보러 왔다니까 자기도 그 영화 봤다며 한참 영화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시크한 마나님은 알고 보니 손님이 밥을 못 먹을 정도로 헤비 스피커였다.


나는 그게 좋았다. 손님과 주인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밥집을 만난 건 참 오랜만이었다. 마나님이 만든 음식에 신뢰가 간 건 그 자체가 양질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밥집에 와서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만드는 마나님의 모습이 믿음직했다는 이유가 더 컸다.


혼, 깐깐함, 마찰 vs
긍정성, 타협, 매끄러움


검색을 통해 이 식당을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실제로 초면의 박대에 맘이 상해 안좋은 평을 남기는 경우도 많다. 그런 입장도 이해는 된다. 가끔 그럴 필요가 있나 싶게 괴팍해보이기도 하니까. 나도 비슷한 입장이 될 뻔했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고 생각해보니 마나님의 고집이나 괴팍함이 없다면 과연 이런 음식들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의 생산물에 불어넣는 은 중요하다. 그는 그 생산물에 자신이 존재하는 의미를 담는다. 그의 목표는 매출이 아니라 자기실현이다. 그는 생산물에 자기 자신을 담기에 깐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깐깐함은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마주치는 둥그런 사람들과 마찰을 빚게 된다.


소비의 시대에 이런 깐깐함은 장애물이다. 깐깐함때문에 일어나는 마찰은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곳에 오가는 몇 년 동안 나는 마나님의 깐깐함에 입맛이 달아났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들도 종종 봤다. 하지만 그런 마찰 속에서도 마나님은 매끄러워지지 않았다. 맨질맨질하게 자신의 작품을 다듬어 긍정성을 쫓아다니는 객들의 손때가 타도록 만들지 않았다.


그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생산물에 자기 자신의 색깔을 담았고, 관객이 그것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 뒤, 충분한 기다림을 거쳐 그것을 소비할 자격을 얻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작품을 내보였다. 이런 사람들을 나는 장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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