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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Jul 25. 2018

더 헌트 | 당신이 기댄 믿음은 진실한가

보고 나서 쓰다.


어떤 남자가 아이에게 빳빳하게 선 성기를 보여주었다는 혐의로 공동체에서 매장당한다. 증거는 그걸 당한 아이의 증언. 모든 어른들은 가련한 피해자인 아이의 말을 믿고 남자와 모든 관계를 끊는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삶을 함께해 온 친구들마저 등 돌리고, 식료품을 사러 간 마트에서는 남자에게 물건조차 팔지 않는다. 애인조차 떠나고 키우던 아들조차 이혼한 처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더 헌트>의 주인공 매즈 미켈슨


내가 이런 남자가 있는 마을에 살고 있다면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나는 사건을 비판적으로 보고 진실이 뭔지 나 스스로 찾아볼 수 있을까? 아니, 절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식료품점에서 음식을 팔 것을 요구하는 이 남자에게 주먹을 날리는 그 점원이 오히려 내 모습에 가까울 것 같다. 어린아이한테 파렴치한 짓을 했다는 놈이 멀쩡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꼴을 어떻게 두고 볼 수 있나.


아이의 말은 항상 진실한가


하지만 나와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틀렸다면? 우리 모두가 범죄자라고 믿었던 그 한 사람만이 결백했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이였다면? <더 헌트>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을 만한 상황을 통해서 당신이 기댄 믿음들은 진실한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는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이 입수한 아동학 보고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실제로는 없었던 성추행 후유증을 보이거나, 실제로는 없는 지하실을 있다고 진술하는 등 영화에 나오는 사례는 모두 보고서에 인용된 사실이다. 


크레딧이 올라가고 영화관의 불이 켜졌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가상의 세계가 아닌, 저런 일이 얼마든 일어날 수 있는 실제 세계에 발을 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얼마든 믿음이라는 각목을 휘둘러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는 사람임을 생각했다. 내가 믿어온 세계, 내가 아는 사람들의 악행과 선행, 나아가 내가 기대고 있는 수많은 믿음, 신념, 주의들에 대해 처음부터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실에게도 형상이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단면이 아니라 입체일 것이다. 사각 테이블 위에 세워진 책을 각자의 자리에서 보고 책의 모양이 길쭉하다, 넓적하다고 각자 말하는 것과 같다. 다른 자리에 전부 서보지 않는 이상 총체적인 진실을 인식할 수 없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리에서 본 바를 진실로 쉽게 믿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수정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렇게 살아온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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