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나서 쓰다.
먼저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 다큐가 다루는 주인공 로드리게즈는 1970년대 초반에 딱 두장의 앨범을 낸 가수다. 1집은 미국에서 여섯장 팔렸다하고 2집은 그보다 덜 팔렸다고 한다. 하지만 우연히 남아공으로 흘러들어간 이 앨범이 30여년 동안 여러 경로로 유통돼서 수백만 장이 팔렸다. 남아공에서 그는 밥딜런, 앨비스 프레슬리 등보다 더 유명한 아티스트가 된다.
그런데 이 남자는 그걸 모르고 살았다. 그저 평범한 가장으로, 디트로이트의 하층 노동자로 살아왔다. 그렇게 살던 와중에 자기가 남아공의 슈퍼스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토록 극적인 인생 역전의 스토리가 있을까.
하지만 그는 자신이 남아공에서 슈퍼스타임을 안 뒤에도, 첫 공연을 6회 연속 매진으로 마무리하고도, 그 엄청난 열광 속에서 무대를 마무리하고도 묵묵히 다시 디트로이트의 허름한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도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다가 나이 오십줄에 슈퍼스타가 됐다면 누구라도 지난 고통스러운 삶을 보상받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로드리게즈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궁금했다.
영화는 중간중간 계속 로드리게즈의 감미로운 노래들을 배경으로 그의 출근길을 롱 테이크로 잡는다. 막일을 하러 가면서도 턱시도 차림에 검은 선글라스. 눈길을 걸으면서 몇번 미끌, 주춤거리고, 그러면서도 묵묵히 걷는 모습이 우직하다. 남아공에서 수많은 기자들과 환영객들을 보고, 슈퍼스타 대접을 받으며 호텔에 가서도, 자기 침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일이 늘까봐 조심조심 방을 쓰고 공들여 정리해놓는 사람이 그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자기 생을 사랑하는 사람의 태도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로드리게즈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사랑했다. 그것이 비록 디트로이트 막노동 일꾼의 삶이라도 그 하루하루에 정성과 예의를 다하고, 자신에게 아무 도움될 것이 없는 빈민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으며 노래를 들려주고 정치적 참여까지 아끼지 않았다. 딸들을 사랑해서 어려운 와중에도 어떻게든 디트로이트 최고의 도서관과 학교에 데리고 다녔고, 스스로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뒤늦은 나이에 대학에 가 철학을 공부했다.
그렇게 진짜 자기 생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게 슈퍼스타의 지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일상은 이미 빛나는 의미로 가득차 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주머니가 가볍더라도, 지금 여기 내가 사는 현장에서 삶의 보람을 충분히 찾아왔기에 인정을 찾아 유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갔다. 훌렁훌렁 부르는 듯하지만 마음이 보듬어지는 듯한 부드러운 노래들. 영어로 된 가사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로드리게즈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지 않다면
어디에서도 행복할 수 없어.
지금은 망한 작은 독립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오던 늦여름 밤. 퇴근시간도 지나 한적한 거리를 혼자서 걸어 내려오는데, 가을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서늘한 밤공기가 얇은 옷자락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 느낌이 참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