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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Jun 12. 2024

그녀가 죽었다 | 클리셰의 무단침입

보고 나서 쓰다.


어차피 곧 OTT로 올 것 같아서 참을까 하다가 신혜선 배우 팬심으로 극장에 가서 봤다. 재미는 있지만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는 영화였다. 정리하고 스스로 경계하는 차원에서, 한 가지만 적어두고자 한다.


인플루언서와 '성형괴물'


소셜 미디어의 여성 인플루언서들이 소재가 되는 영화, 드라마, 소설이 많은데 대부분 이들을 세상에 둘도 없는 추잡한 욕망 덩어리로 다룬다. 이 영화가 그렇다. 나는 이런 게 약간 불편하다.


대중문화에서 한때 비슷하게 다뤄졌던 성괴라는 멸칭이 있다. 십여 년쯤 전, 성형 중독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지나친 성형으로 얼굴이 망가진 사람들을 이렇게 불렀다. 명백한 혐오 표현이었다. 지금 인플루언서들을 대중문화나 주류 언론이 바라보는 관점이 이와 비슷한 듯하다.



방송 제작을 위해 몇몇 인플루언서를 관찰할 계기가 있었다. 지켜보면 그들 스스로도 유지하기 버거운 탈을 쓰고 과시하기 위한 연출로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었다. 또한 그 연출된 현실을 보는 이들에게는 자신을 뭔가 결핍된 남루한 존재로 느껴지게 한다.


결국 양쪽 다 발딛고 있는 진짜 현실은 없는데, 뭔가 쓸데없는 걸 팔고 사는 동안 모종의 경제 효과는 발생한다. 그렇게 건강치 않은 소비를 일으켜 건강한 경제를 만드는 것이 이 시대의 자본주의다. 아마 태어나기 전에 세계관을 하나씩 선택할 수 있다면 이런 세상에 살겠다고 선뜻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20대 빛나는 나이에 이런 지속가능하지 않은 비즈니스를 열망하는 인플루언서들을 이야기의 소재로 삼는다면, 나는 그 배경이 되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해 볼 수 있는 설정을 녹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공상과학이 아니라 현실사회를 소재로 가져올 때의 계약조건 같은 것이다. 동시대인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발생하는 책임이다. 작가나 감독의 얄팍한 관찰 때문에 관객들에게 오독을 유발하는 건, 기사로 치면 오보나 마찬가지다.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작은 깨달음. 이야기가 끝나면 익숙했던 현실이 낯설게 보이면서, 삶을 나아지게 할 만한 영감이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것. 영화든 다큐든 그게 좋은 예술이라고 나는 믿는다.


2023년 6월 공개되어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기록한 <셀러브리티>


예컨대 넷플릭스 <셀러브리티>는 인플루언서와 그들의 관객이 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이었다. 소셜 미디어를 소재로 삼은 <드림 시나리오> 역시 재미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 자신의 욕망을 돌아보며 극장을 나서게 된다. 반면 <그녀가 죽었다>는 이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이야기가 단순하게 흘러간다. 이런 방식의 이야기가 스릴을 느끼기에 쉬운 구조일 순 있는데, 클리셰 범벅이라는 점에서 좋은 평을 내리기는 어렵다.


배우의 힘으로
밀고 가는 이야기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꽤 재밌게 영화가 봐지는 데는 배우들의 힘이 큰 것 같다.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연기하는 신혜선 배우의 힘은 사소한 이야기상의 결점은 모른 척 넘어가고 싶게 만든다.


변신 전
변신 후


나는 범죄도시 시리즈를 볼 때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가끔 개연성 밥 말아먹은 것 같은 장면이 나오는데, 마석도 캐릭터가 매력 있고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주니까 그걸 온전히 즐기기 위해 사소한 결점은 시적허용하고 싶다. 이 영화에서 역시, 신혜선 배우와 변요한 배우, 이엘 배우의 열연과 매력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연출상의 허점에 대해서는 조금 넘어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인 김세휘 감독님의 더 나은 차기작을 위해서라도 조금 적어보았다. 사실 인플루언서 캐릭터의 활용만큼이나 문제라고 느낀 게 스토커에 대한 묘사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최근 본 넷플릭스 <베이비 레인디어>와 같이 놓고 해 볼 얘기이니 다음 혹은 다다음 글쯤에서 정리하려고 한다. ☀︎




주말에 뭐 볼까? 먼저 보고 나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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