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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Jun 24. 2024

노는 물을 빚으로 살 수 있다면 ① 의정부


이상한 제보


이상한 제보였다.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지인 세 명이 죽었다고 했다. 


“이러다 저도 어떻게 되는 거 아닌가 불안해서요…” 


밝힐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며, 새벽 한 시가 넘어야 시간을 낼 수 있다는 제보자. 처음에는 좀 이상한 사람인가 했다. 그는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논 끝에 우리가 만난 곳은 경기도 북부 어느 도시의 눅눅한 지하 공간이었다. 


제보자는 자신의 신원이 드러나면 위험하니 카메라 촬영은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카메라를 끄고 밤새도록 그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Dall-e3로 그린 삽화


제보자를 포함해 그 죽었다는 사람들이 만난 곳은 굿데이라는 이름의 대부 중개업체였다. 대부 중개업체는 제2,3 금융권의 영업사원이자 손발 같은 역할을 한다.


☞ 참고 : 1,2,3 금융권의 개념을 쉽게 설명해둔 글을 링크합니다. 


이런 대부 중개업체의 상담원들은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서 돈이 필요한 사람을 찾는다. 금융회사(캐피털,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의 여러 까다로운 대출 조건들을 파악하고, 돈이 필요한 사람이 무엇을 준비해야 최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지 안내한다. 


대출 의사가 있는 사람을 찾으면, 필수 서류를 준비시킨 뒤 금융회사에 대출 심사를 의뢰한다. 그렇게 해서 승인이 나면 중개업체는 건당 수십만 원 수준의 수수료를 받는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중개업체의 노련한 안내를 통해 대출에 성공하고, 금융회사도 대출을 내주고 이자를 벌게 되었으니 잘만 굴러가면 윈윈이다.


제보자와 함께 일했으나 이후 세상을 떠난 친구들. 최민서, 이태훈, 김진성 (이하 가명)


위 세 사람이 처음 대부중개업체 굿데이에서 일을 시작했던 2016년 무렵에는 정상적인 대출 중개업무가 이뤄지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는 대출의 고삐가 느슨해서 시중에 많은 돈이 풀리고 거품이 쌓이던 시기였다. 대출 승인 조건도 까다롭지 않았고 대출 수요도 많았다. 중개업체 상담원 입장에서는 적당히 입만 잘 털면 하루에 2~3건 대출을 성사시키고 백만 원 넘는 인센티브를 얻어갈 수도 있었다.


이들과 함께 일했던 시간을 제보자는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했다. 세 사람과 제보자는 길게는 일 년가량을 함께 일했다. 이십 대 초반 비슷한 나이대, 같은 지역에서 성장했고 같은 팀이라는 소속감도 좋았다고 한다. 땅 짚고 헤엄치듯 돈을 벌었고 회식이나 야유회도 자주 갔다. 이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서 이렇게만 벌면 미래가 달라질 수 있겠다는 희망을 느꼈다.


그런데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굿데이는 몇 년 후 대규모 대출사기조직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태훈과 김진성은 굿데이를 그만둔 후 자살했고, 최민서는 자신의 일터에서 살해당했다.


사건이 일어난 경기도 의정부시

 

세 사람의 공통점


차근차근 알아봐야 했다. 먼저 세 사람의 주변을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최민서는 어릴 때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분식 체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댔다. 아버지가 없었고 오빠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민서가 오빠 수험 비용까지 보탰다고 한다. 


고교 졸업 후에는 자신이 일했던 체인점에 정식으로 취직했다. 다른 친구들이 대학에 가서 청춘을 즐길 때 생활 전선에서 매일 전쟁을 치러야 했지만, 주변 친구들은 그를 활달하고 다정한 성격으로 기억했다.


이태훈도 마찬가지였다. 경제적으로 힘든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일찌감치 장사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십 대 초반부터 시장에 좌판을 열고 양말을 팔았다. 새벽마다 동대문에 가서 옷을 떼와 팔기도 했다. 


장사가 잘 안 풀리자 마트 주차장 알바를 비롯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이태훈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엄숙해지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를 개그맨처럼 웃긴 사람으로 기억했다.


김진성은 그 자신이 쓴 노트를 비롯해 가장 많은 기록이 남아있는 인물이다. 김진성은 노트에 웨이트 트레이너라는 구체적인 꿈, 소소한 경제적 목표와 가족을 이루고 싶다는 희망을 적어놓았다. 


그는 꾸준히 운동을 했다. 실제로 제대 후 네 달 만에 몸을 만들어 트레이너로 근무를 시작할 만큼 성실하게 노력했고 보디빌딩 대회에도 출전했다. 굿데이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에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동료들은 ‘닭가슴살 먹고 몸 관리 열심히 했던 형’으로 김진성을 기억했다.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한 김진성


친구들이 대학에 가고 더 높은 미래를 준비할 때 돈벌이를 해야 했다는 것, 어린 나이부터 경제적인 압박을 받고 생활고에 시달렸다는 것이 주변 취재를 통해 확인한 그들의 공통점이었다.


또래에 비해 힘든 상황에서도 성실하게 일했던 그들이 어쩌다가 굿데이 같은 대부 중개업체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죽은 세 사람의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서 그려지는 ‘굿데이’의 실체는 어딘가 이상했다. 거기에 가게 된 과정을 알아야 세 사람이 사망한 원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 굿데이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올린 인스타그램 게시물들


굿데이에 들어가면 인생 편다


굿데이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어렵게 수소문해서 만났다. 만나보면 다 이십 대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10년 전 의정부에서 떠돌던 유령 같은 소문을 기억하고 있었다. 굿데이에 들어가면 인생 편다는 소문이었다.


떠도는 말로만 끝난 게 아니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허름한 포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고등학교 친구가 갑자기 벤츠를 뽑았다는 인스타 사진을 올렸다. 값비싼 명품 시계를 차고 나타나서 현금을 거침없이 쓰는가 하면, 월급 2천만 원이 찍힌 통장을 친구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의정부에서는 굿데이를 모르는 청년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취재 도중 우연히 그 명성을 확인한 적도 있었다. 하루는 의정부의 어느 카페에 앉아서 취재원과 굿데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인터뷰가 끝난 뒤 바로 옆 자리에 앉아있던 덩치 큰 남자가 다가왔다



(②편에서 계속)




Q 파일 : 세상의 문제를 들여다본 기록을 전합니다. 이번 편은 <그것이 알고 싶다> 1332회를 돌아보며 못다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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