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현장
저 멀리, 대산 석유화학단지가 – 첫 현장
회사 다닐 때 나는 사무직이어서 현장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경험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글로벌 상거래를 업으로 하는 종합상사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굳이 나의 현장이라고 한다면 해외지점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충청남도 대산은 나의 유일했던 현장 근무처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오래전 이곳의 한 석유화학회사의 경영지원실장으로 1년가량 근무했다. 약 1백만 평 부지의 절반 정도(지금은 대부분 시설이 들어섬)에 당시 석유화학 플랜트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던 곳이었다.
우리나라의 석유화학단지는 총 3군데다. 1960년대 말 가장 먼저 조성된 울산, 그다음으로 1970년대 말에 만들어진 여수인데 이 두 곳은 국가산업단지다. 당시 정부에서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조성했기 때문에, 산업 인프라를 정부 차원에서 잘 갖추었다. 1980년대 석유화학사업의 수익성이 한참 좋을 때 대산 지역이 산업단지로 개발되었는데, 이곳에 2곳의 석유화학 공장과 1개의 정유공장이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3번째 석유화학단지가 되었다. 그러나 대산은 국가 주도의 산업단지가 아니어서, 공장을 짓는 회사가 도로 등 각자 산업 인프라를 구축해야만 했다.
이 공장이 1988년 대산에서 준공되었을 때, 불운하게도 글로벌 석유화학 경기는 최저점이었다. 석유화학은 대표적인 글로벌 경기 사이클 사업이다. 내가 근무했던 그 회사는 인프라를 자체 구축하는 등 대규모 투자금액에 따라 높은 감가상각비 부담, 그리고 수급 불균형 등의 이슈로 준공 후 10년 동안 적자에 허덕였고 그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룹 내에서도 미운 오리 새끼로 취급되었고, IMF 당시에는 정부에 의해 다른 석유화학 회사와 빅딜기업으로 지정되어 혹독한 시련기를 거쳐야만 했다.
나는 당시 그룹에 근무하면서 그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쭉 지켜보았고, 회사 운명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이후 빅딜은 외부적인 요인으로 무산되었지만, 주채권 은행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해외기업과 5:5 합작을 추진해야만 했다. 그 합작으로부터 10여 년이 흐르고 난 뒤, 나는 그룹 임원인사에 따라 그 회사의 경영지원실장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부임했던 그해 말 다른 그룹에 회사는 매각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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