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
지구를 한 바퀴 돈 피아노 그리고 발레바 – 우리가 남이가!
학교, 직장, 결혼 등 다양한 이유와 경제적인 상황에 따라 우리는 정든 곳을 떠나 이사를 하게 된다. 나 역시 결혼 후 몇 번의 국내 이사와 총 4번의 해외 이사가 있었다. 그런데, 유독 해외로 오갈 때 가족 전체의 이사가 한 번도 없었다. 첫 번째 해외 이사는 내가 사원시절에 일본 지역전문가로 선발되었을 때였다. 이 제도는 1년간 단신부임이 원칙 때문에, 나는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아내를 남겨두고 일본으로 떠났다. 어학 연수생 신분이다 보니 이삿짐도 얼마 없어 출국하는 날에 간단히 필요한 짐만 챙겨서 떠났다. 내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필요했던 음식과 물품들은 아내가 국제우편으로 조금씩 보내주었다.
두 번째 이사는 아내와 초등학생이던 아이 둘이 영국 런던으로 조기유학을 떠났을 때다. 당시 피아노를 한참 배우고 있던 아들을 위해, 우리 집의 작은 그랜드 피아노도 런던행 이삿짐에 포함되었다. 영국 런던의 높은 물가 수준 때문에 큰 집을 렌트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주재원으로 갔던 것이 아니라 자비 유학이었고, 게다가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사태) 시절이었다. 당시 파운드당 원화 환율이 2,000원을 오르내렸다. 우리 집 피아노는 이삿짐과 함께 부산항을 출발해, 인도양과 지중해를 거쳐 런던에 도착했다. 머나먼 바닷길과 시차 극복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피아노는 영국의 작은 집 구조 때문에, 렌트 집 계단과 현관문에 그만 스크레치를 냈다. 피아노 역시 반들반들한 자신의 까만 피부에 작은 상처를 입었다. 나도 그때 우리나라 이삿짐 직원들과 함께 피아노를 집 안에 넣기 위해, 2시간가량 사투를 벌였던 기억이 난다.
2년 뒤 내가 해외 주재원 발령을 받으면서 온 가족이 미국에 모였다. 그 세 번째 해외 이사에서 나와 가족의 이삿짐은 각각 태평양과 대서양을 거쳐 뉴저지 앨런데일 카운티의 새 보금자리에서 1년 반 만에 극적인 상봉을 했다. 그러나 미국 주재생활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회사의 그룹조직이 부활하자, 부임했던 그해 12월에 귀임발령을 받고 내 짐만 간단히 챙겨 돌아왔다. 아이들은 다음 해 2월까지 학기가 있어 몇 달 더 체류한 뒤 들어왔고, 우리 집 메인 이삿짐은 5월이 되어서야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그렇게 3년 전 영국으로 떠났던 우리 집 피아노는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을 거치면서 지구 한 바퀴를 고스란히 돌았다. 우리 가족의 이별과 만남의 긴 여정도 특별했지만, 피아노 역시 독특한 이사 경력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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