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미술관 그랜드 투어

카셀/바젤/베네치아/피렌체/니스/파리

by 구포국수

유럽 미술관 그랜드 투어 – 카셀/바젤/베네치아/피렌체/니스/파리


격년제 이벤트인 베니스 비엔날레(5/13일~11/26일), 스위스 아트 바젤(6/15~18일),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6/10일~9/25일)가 2022년 운 좋게 동시에 개최되었다. 우리 가족은 그해 여름휴가로 유럽 4개국 여행을 떠났고, 아트 바젤은 아쉽게도 시기가 맞지 않아 못 갔다. 이번 투어는 딸의 졸업을 앞두고 기획된 가족여행이었다. ‘유럽 미술관 그랜드 투어’라는 콘셉트로 아내와 딸이 코스 설계와 미술관을 예약했고, 나는 일정에 맞추어 호텔 예약을 담당했다. 아들은 차량 렌트 등 직접 통화가 필요하거나 인터넷으로 질문해야 하는 일을 맡았다. 이번 투어의 루트는 다음과 같다. 독일 프랑크프루트 공항에 도착해 2박, 스위스로 이동해 2박,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2박, 피렌체에서 1박, 프랑스 니스에서 3박. 이후 아들과 나는 니스에서 독일로 이동해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에 돌아가며, 아내와 딸은 리용을 거쳐 파리에서 4일간의 추가 일정을 가졌다.


독일 경찰차 등장

늦은 시각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해 렌터카 창구에 갔는데, 예약했던 SUV차량이 사정이 생겨 이용할 수 없었다. 직원이 벤츠 최신 모델을 동일가격으로 추천했는데, 리무진 형이어서 차체가 무척 길었다. 독일 숙소를 향해 운전하는 동안 시차 때문에 졸렸고, 비도 거세게 내려 주위가 금방 어두워졌다. 예약한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뒤편에서 경찰 차량의 경고 방송이 나왔고, 경찰관 두 명이 우리에게 여권 제시와 여행 목적과 음주 여부를 물었다. 우리 차가 마을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자, 이를 이상하게 본 한 주민이 신고했다고 했다. 호텔의 예약상황, 비행기 티켓과 여권을 검사하고 나서야 경찰은 떠났다. 가족 그랜드 투어의 첫날부터 만만치 않은 신고식을 치렀다.


다음날 호텔 근처를 산책하면서 마을을 둘러보니, 심플한 건물과 주택이 실용적이고 검소했다. 호텔 주변에 마트보다는 작고 SSM(기업형 슈퍼마켓) 보다는 규모가 큰 ‘알디’가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가게는 독일 유통업계에서 최고이고, 유럽을 통틀어서도 유명한 곳이다. 다음 행선지로 떠날 때 이곳에서 음료수와 과일 등을 사서 차에 실었다. 카셀 도심의 아트 페어 전시회를 갔는데, 도시 전체에 흩어져 있는 미술관에서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우리는 전체 미술관을 볼 수 있는 티켓을 인터넷으로 구매했기 때문에, 가급적 많은 미술관을 둘러보았다. 이동 중 시내에 있던 ‘파이브 가이’라는 햄버거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아이들이 세계적인 미국 햄버거 가게라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2년 뒤에 이 브랜드가 들어왔는데, 나는 그때서야 유명한 곳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은 나보다 이런 분야에서는 전문가였다.


카셀은 독일 중부 헤센주에 속한 인구 20만 명의 소도시다.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처럼 잘 알려진 도시는 아니지만, 5년에 한 번씩 도시 전역에서 펼쳐지는 카셀 도큐멘타 때문에 꽤 유명한 곳이다. 1955년 독일 국민의 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창설된 이 전시회는 베니스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3대 현대미술 전람회로 손꼽힌다. 이 전시회는 히틀러에 의해 퇴폐예술로 낙인 된 전위예술을 재조명하고, 독일의 어두운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정부와 민간 예술계가 협업해 창설되었다고 한다.



스위스의 1년짜리 도로 통행권

다음 목적지인 스위스 바젤을 향해 떠났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우리는 EU 고속도로를 커버하는 통행권을 구매했지만, 스위스에서는 이것이 적용되지 않았다. 스위스는 EU 회원국이 아니어서 국경을 넘을 때 새 통행 스티커를 구매했고, 내 기억에 EU 것보다 더 비쌌다. 기간도 1년짜리 밖에 없었고, 우리가 렌터카를 반납할 때 다른 사람이 이용하라고 그대로 붙여두었다. 가족이 일 년 안에 스위스를 재방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운전 전담인 나는 이동이 최우선이었지만, 가족들은 차창 밖으로 절경들이 펼쳐지자 호수 근처에 차를 세우라고 난리였다. 독일에서 몇 군데를 그냥 지나쳤지만, 여기서는 안 될 것 같아 얼른 주차했다.


멋진 호수를 가진 고급 휴양지였고, 내가 해외에서 봤던 호수 가운데서 단연 최고였다. 스위스 아이들이 호수에서 낚시하던 모습은 영화 속 한 장면과 같았다. 나는 가족과 호수를 앵글에 담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인근 관광지를 산책하고 호숫가에서 점심 식사를 즐겼다. 예정에 없던 긴 휴식 때문에 스위스의 호텔에 도착하니 저녁이 되었다. 시내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와 호텔 방문을 열었는데, 객실 바닥이 온통 바퀴벌레로 우글거렸다. 아르바이트 직원을 통해 호텔 주인과 직접 통화했고, 한밤중에 더블 룸 2개로 룸을 교체했다. 아들과 내가 한방에서 지내고, 딸과 아내는 다른 룸에서 지냈다. 가족이 같이 자려고 이 호텔에서 유일하게 발코니가 딸린 스위트 룸을 예약했는데, 그만 말썽을 부렸던 것이다.


다음날 장 팅겔리에 헌정된 미술관에 갔다. 그는 스위스의 현대 조각가이며 키넥트 아트의 대표주자로 유명하다. 키넥트 아트는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 때문에 움직이는 작품을 총칭한다. 그는 못쓰는 기계들을 조합하고, 동력을 이용해 움직이는 대규모 금속작품을 전문적으로 제작했다. 수명을 다해 녹슬고 낡은 기계류들에게 전기 모터와 고속 회전장치를 달아 예술로 승화시켰다. 한 평론가는 “팅겔리 미술관은 유희적이다. 그곳에는 현대미술의 난해함과 심각함 보다는 움직임과 웃음, 놀이, 놀라움이 존재한다. 그의 작품에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처럼 기계문명에 대한 파토스(연민을 자아내는 힘)가 깔려 있다.”라고 평가했다.


바젤은 도시 전체가 조용했고, 팅겔리 미술관 옆으로 멋진 강이 있었다. 시민들은 고무 튜브를 타고 강물을 따라 내려가는 모습이 여유로웠다. 한참 뒤에 알게 되었지만 이 고무튜브를 타고 퇴근을 하는 사람도 제법 있다고 한다. 아내가 나에게 한번 해보자고 했는데, 나는 수영도 못하고 위험해 안 하겠다고 버티자 아내도 포기했다. 독일과 스위스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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