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 02
빌 게이츠 (1955 ~ )
컴퓨터 천재소년에서 소프트웨어의 제왕, 이제는 자선 사업가로 살아가고 있다. 퍼스널 컴퓨터 OS 독과점 이슈가 있었지만, 자선사업에 그 잣대를 댈 수는 없다. 그의 부와 스마트한 통찰력이 인류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면 좋겠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회사 이름은 마이크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의 합성어이다. 퍼스널 컴퓨터의 운영체계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는, 회사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았다.
미국 시애틀 상류층 집안의 천재소년 빌 게이츠는 명문 사립학교에서, 컴퓨터의 귀신 폴 앨런을 만났다. 두 사람은 천부적인 재능, 호기심 그리고 도전을 보태 MS를 공동 창업했다.
당시 컴퓨터 시장은 IBM이 주도하는 중대형 컴퓨터와 애플이 퍼스널 컴퓨터에 막 진입할 시기였다. 이 두 컴퓨터 천재는 퍼스널 컴퓨터 운영체계에 대한 소프트웨어를, 사업 아이템으로 정했다.
IBM도 퍼스널 컴퓨터 시장에 진입하려는 시점이라, MS의 사업 타이밍도 좋았다. MS는 자신들의 퍼스널 컴퓨터 운영체계인 MS-DOS를 IBM에게 사용료를 받고, 소프트웨어 사업을 시작했다. 소프트웨어 저작권은 MS가 보유하면서, IBM 이외에도 MS-DOS 사용권을 팔 수 있는 법적근거를 마련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당시에는 하드웨어에서 부가가치가 나오지 소프트웨어가 주목받지 못했는데, 빌 게이츠는 어린 나이에도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있었다.
MS는 승승장구하며 기업가치를 올렸고, 수많은 인재들을 불러 모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MS는 DOS 시대를 뛰어넘어,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윈도우 시대를 열었다. 작업자가 한 대의 PC에서 여러 개의 작업창을 띄워두고, 마우스를 통해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 운영체계를 선보였다.
물론, 애플의 매킨토시와 이 운영체계와 관련해 긴 소송을 했지만, MS는 특허 이슈를 피하고 독점적인 위치를 확보했다. 애플의 맥킨토시 제품을 제외한다면, 당시 글로벌 퍼스널 컴퓨터 운영체계는 100% MS의 윈도우가 담당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했던가? 거대 공룡기업인 MS에 대해 미국 정부가 반독점 이슈를 제기하면서, MS는 모든 경영역량을 여기에 대응하느라 혁신에 소홀하게 된다. 소위 MS병에 걸려 내부조직에 문제도 생겼고, MS의 성장과 혁신은 그만 정체되고 말았다.
반독점 이슈 등으로 빌 게이츠는 2001년 기술을 담당하는 회장으로 물러나며, 하버드대학 친구 스티브 발머에게 CEO 자리를 넘겼다. 발머는 빌 게이츠와는 달리 기술과는 전혀 관련성이 없었고, 오로지 회사 매니지먼트만 했다. 그는 미래를 내다보고 사업방향을 잡아야 하는 소프트웨어 회사 CEO로서는, 전략적인 측면이 부족했다.
빌 게이츠의 가장 아픈 손가락은, 당시 모바일 OS업체였던 안드로이드를 인수하지 못했던 것이다. 구글이 이 업체를 인수하자, MS는 애플의 iOS와 안드로이드에 샌드위치가 되어 성장성이 큰 모바일 OS시장을 놓쳤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MS는 노키아의 모바일 사업부를 인수했지만, 모바일 OS의 판세는 기울어져 되돌릴 수 없었다. MS는 노키아를 다시 엄청난 비용을 들여 정리하면서 전략적 실패와 좌절감, MS의 자존심에 얼룩만 남겼다.
독과점 이슈로 시장에서는 MS의 몰락이 점쳐졌지만, 빌 게이츠는 회장직을 은퇴하면서 MS의 세 번째 CEO로 인도출신 엔지니어였던 사티아 나델라를 지목했다. 나델라는 연관 사업들을 차례로 인수하며, 사업 외연을 넓혀 나갔다.
동시에 클라우드와 AI에 전략적 우선순위를 두고, MS를 10년 동안 개혁하며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빌 게이츠를 뛰어넘는 성공 스토리를 나델라가 만들어 가고 있다. 그는 사업 포트폴리오의 재구축만이 아니라 MS의 나쁜 조직문화를 없애고, 임직원들에게 영감을 주는 조직문화로 바꿨다.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와 동갑이다. 잡스가 캘리포니아 블루 컬러층에서 자란 것에 비하면, 빌 게이츠는 시애틀 상류층 집안에서 성장했다. 둘 다 글로벌 기술기업을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양사의 시장 지배력은 어마어마하다. 둘은 다른 듯하면서도, 같은 길을 선구자적으로 개척했던 훌륭한 경영자였다.
나는 1990년 종합상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본사 관리팀에 배치되었는데, 우리 팀을 제외하면 모두에게 PC가 지급되지는 못했다. 당시 ‘인당 PC 보급률’이란 관리지표가 사용될 정도였으니, 지금 신입사원들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빌 게이츠, MS-DOS 이야기들은 내가 신입사원을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나왔다.
내가 신입사원일 때, 삼성전자에서도 퍼스널 컴퓨터를 만들지 못했다. 그때 회사에서는 일본의 NEC 컴퓨터를 사용했다. 이 컴퓨터는 매킨토시와 같이 폐쇄적인 OS로 구동되었는데, MS-DOS와 윈도우가 글로벌 표준이 되면서 NEC 컴퓨터는 사라졌다.
나는 이 사례를 통해 소프트웨어의 개방성과 표준의 힘이 무서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NEC 컴퓨터에 레코드 판 정도 되는 사이즈의 플로피 디스크를 끼우고, PC 작업했던 내용을 파일로 저장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내가 입사하고 한참 지나고 나서야 삼성 컴퓨터에서 마이 글벗, 마이 플랜 그리고 훈민정음 같은 소프트웨어를 출시했다. 하지만, 이것들도 윈도우 오피스에 밀려 시장에서 사라졌다.
빌 게이츠는 CEO시절, 일 년에 두 번 작은 섬의 오두막에 일주일씩 머물며 독서를 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Think Week’이라고 불렸다. 컴퓨터와 휴대폰도 없이 그는 그곳에서 미래를 위한 통찰력을 키우고, 회사 현안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네이버에서 빌 게이츠를 검색하면, 기업가와 자선가라는 타이틀이 나온다. 빌 게이츠를 이야기할 때 자선가를 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는 워런 버핏과 함께 엄청난 기부, 세계적인 각종 구호활동을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식수/건강, 최근 코로나 백신개발에 이르기까지 그의 부는 이제 자선에 맞춰져 있다. 자신의 세 자녀에게는 인당 10백만불씩만 상속하고, 나머지 자신의 모든 부를 기부한 자선 사업가 빌 게이츠.
그가 죽더라도 그의 부는 앞으로 전 인류에게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빌 게이츠가 자선 사업가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도, MS의 인재들과 그들의 혁신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비문에, 앞으로 뭐라고 적힐지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