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구분
야요이 시대
일본의 야요이 시대는 “조몬의 수렵·채집 + 외부에서 온 벼농사·청동기·철기가 합쳐져, 계층 사회와 ‘나라의 씨앗’이 생긴 시기. 보통 기원전 3세기 무렵 ~ 서기 3세기 무렵을 야요이 시대. 19세기 도쿄 야요이(弥生) 지역에서 이전과 전혀 다른 토기가 발견되면서, 이 양식이 출토되는 시기를 “야요이 시대”라고 불러. 야요이를 조몬과 비교하면: 벼농사(물논) 시작 – 본격 농경 사회. 청동기·철기 도입 – 금속기 시대. 새로운 토기 양식 – 얇고 단순, 실용적. 사회 계층화·전쟁·큰 정치 단위 등장.
논벼는 중국 남부(장강 유역) → 산둥반도 → 한반도(무문토기·문문시대) → 북규슈 순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는 연구가 많아. 고고학·유전학을 종합하면, 한반도 남부·중국 동부에서 온 농경·금속기 집단이 기존 조몬인과 섞여 새로운 문화와 인구를 형성한 것으로 이해. 논과 함께 관개 수로, 둑 등이 세워지고, 농사 시기(모내기·수확)를 기준으로 연중 노동이 조직. 조몬 때처럼 사슴·멧돼지 사냥, 물고기·조개 채집도 계속.
초가집(기둥 위 지붕) + 반지하식 움집이 병존하지만, 곡식을 저장하는 고상식(높은 바닥) 창고가 등장해 농경 사회의 특징을 보여줘. 야요이 중후기에는 마을 둘레에 해자를 파고 목책·성곽을 두른 취락이 등장. → 이는 전쟁·침입에 대비해야 할 만큼 정치·경제적 이해가 큰 마을·집단이 생겼다는 뜻. 야요이 토기는 조몬 토기에 비해 벽이 얇고, 장식은 훨씬 단순하며, “실용적인 주머니 모양·항아리 모양”이 많아. → 화려한 예술품 느낌의 조몬 토기와 비교하면, “농사·저장·요리에 특화된 실용 토기”. 야요이 시대에는 청동 방울(도타쿠), 창·검·거울 같은 의례용 청동기가 만들어져. 철은 처음엔 무기·도끼·칼 같은 소규모 도구 위주였다가, 점차 낫·괭이·쟁기 등 농기구에도 사용되기 시작. 야요이 말~고훈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를 중국 사서에서는 “왜(倭)”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