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흔적
‘구다라데라(百済寺, Kudaradera)’는 오사카부 히라카타(枚方)시에 있는 “특별사적 백제사터(百済寺跡)”. 이름부터가 “백제 절(百済寺)”, 설립자도 백제 왕족 후손, 유적 설명판도 일본어·영어·한국어로 쓰여 있는, 굉장히 노골적인(?) “우리나라 흔적” 스팟. 위치: 오사카부 히라카타시 나카미야(中宮). 공식 명칭: 특별사적 百済寺跡 (Kudaradera Temple Site). 조성 시기: 나라 시대 후반, 약 1250년 전으로 추정. 세운 집단: 백제 왕족의 후손인 “백제왕씨(百済王氏, くだらのこにきし うじ)” 일족의 씨사(氏寺, 가문 사찰). 문화재 지정: 일본 국가 특별사적 (오사카부에서는 오사카성터 + 백제사터, 단 2곳뿐). 지금은 건물은 사라지고, 터와 복원도, 안내판, 주변 공원·논밭 풍경으로 그 규모를 상상해 보는 유적지.
백제 멸망(660) 이후, 왕자 선광(善光) 등 백제 왕족·유민 상당수가 일본으로 망명. 일본 조정은 이들을 우대했고, 선광의 손자 세대에 이르러 “백제왕(百済王, くだらのこにきし)”이라는 성씨를 공식 하사. 글자 그대로 “백제의 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귀족 가문이 된 것. 이 백제왕씨가 바로 구다라데라를 세운 가문. 히라카타시 공식 설명에도 “백제왕씨는 한반도의 백제 왕족의 후손이며, 이 일족이 나카미야 지역에 세운 사찰이 백제사터이다”라고 또렷하게 적혀 있어.
이 가문 중 특히 유명한 인물이 백제왕 경복(百済王 敬福, くだらのこにきし きょうふく). 경복은 도호쿠 지방(옛 陸奥国)의 관리로 있으면서 금광을 발견해 그 금을 나라 동대사(東大寺) 대불 도금용으로 헌상. 그 공로를 인정받아 고위 귀족 + 가와치 국(지금의 오사카 동부) 장관이 됨. 이때 백제왕씨의 거점이 난바(오사카 시내)에서 지금의 히라카타 쪽으로 옮겨지고, 이곳에 가문 사찰(구다라데라)과 가문 신사(백제왕신사)를 세운 것으로 전해져. → 그러니까 구다라데라는 “동대사 대불을 위해 금까지 바친 백제 왕족 후손들이, 자신들의 터전에 세운 거대한 절”.
전체 규모: 한 변 약 140m 정사각형. 둘레: 흙담(築地)으로 전체를 둘러쌈. 남문 → 중문 → 금당(본존 불상) → 강당 → 식당(승려 식사 공간) → 북문이 일직선. 중문과 금당 사이를 회랑(복도)이 연결. 그 회랑 안쪽에 동·서 두 기의 탑이 나란히 서 있는 특이한 쌍탑식 가람. “백제 왕족 가문이 자신들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국가급 대사찰 포맷으로 지은 절”로 보는 게 자연스러워. 지금 백제사터는 논밭·주택가 사이 넓은 터에 기단 튀어나온 부분과 복원도·안내판, 작은 사당 등이 남아 있어.
바로 옆에는 백제왕신사(百濟王神社)가 있는데, 이 신사는 백제왕씨 조상(백제 왕족)을 모시는 신사이고, 한국인 방문객이 많아서, 안내·설명에 한국어도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히라카타시와 한국 전라남도 영암군이 왕인 박사 인연으로 우호 교류를 하는 등 지역 전체가 “한·일 교류 상징 지역” 분위기를 갖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