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마

우리나라 흔적

by 구포국수

쓰시마


쓰시마(對馬島, 대마도)는 “일본 땅에 있는 조선사(史) 박물관” 같은 섬. 지리 때문에 수천 년 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를 오가던 사람·물건·생각이 전부 여기 한 겹씩 쌓여 있어. 쓰시마는 부산·거제도에서 직선 거리 50km도 안 되는 섬. 북쪽 끝 와니우라 한국전망소(韓国展望所)’에서는 날이 좋으면 부산·거제 해안과 불꽃놀이까지 보인다고 할 정도로 가까워. 일본 본토(규슈)보다 물리적으로 한국에 더 가까워서, 예부터 한반도와 일본을 잇는 해상 교통·무역·외교의 중간 기착지 역할. 중세 이후 대부분의 조·일 외교·무역 루트가 ‘부산 → 쓰시마 → 규슈/혼슈’였고, 조선과 일본의 관계가 좋을 때는 평화적 교류의 현장, 나쁠 때는 전쟁·해적·항일투쟁의 최전선이 되어. 지금도 쓰시마 연구자들은 이 섬을 “하이브리드(혼종성)의 섬”이라고 부르며, 조선통신사 기록 속에서도 “조선과 일본의 기운이 섞인 경계지대”로 묘사.


이즈하라 시내의 수선사(修善寺)는, 전승에 따르면 서기 656년경 백제 귀족 출신 비구니 ‘법묘니(法妙尼)’가 세운 절. 원래는 ‘구품원’이라는 암자로 시작해 비구니 사찰로 바뀌었다고 전해지는데, 이 때문에 “대마도의 가장 오래된 사찰 중 하나가 백제계 승려가 연 절”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어. 지금 이 사찰은 더 나아가, 면암 최익현 선생의 장례가 치러진 곳이자 그를 기리는 ‘대한인 최익현 선생 순국지비’가 세워진 장소라서 고대 백제부터 근대 항일운동까지, 한국과의 인연이 겹겹이 쌓인 공간이 되어 있어.


쓰시마는 쌀·물자 대부분을 조선에서 수입해 버틸 만큼 조선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되었고, 일본 전국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토지 측량·조세 제도(間高: 간다카)를 허용받는데, 이것이 중국·조선의 계량 시스템(결부제)에 가까운 형식이라 “섬의 제도·법제가 조선과 비슷했다”는 평가를 받아. 즉, 정치적으로는 일본 영역이지만, 경제·제도 면에서는 ‘조선 스타일’이 강하게 배어 있던 섬이었던 셈.


조선통신사는 1607~1811년 사이에 12차례 파견된 조선의 대형 외교 사절단으로, 이들의 기록은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쓰시마는 이 통신사들이 일본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들르던 첫 관문이었고, 그 흔적이 지금도 매우 많이 남아 있어. 이즈하라의 사찰 국분사(国分寺) 입구 ‘산문(山門)’은 1807년에 세워진 네 기둥 문으로, 바로 옆 안내판에 “조선통신사를 맞이하는 객관(공식 숙소)과 함께 지어졌다”고 적혀 있어. 주변 일대가 바로 통신사 일행이 머물던 숙소·접대 공간이었던 자리. 북부 ‘한국전망대’ 근처에는 1703년 통역관들을 태운 배가 침몰해 죽은 112명을 기리는 ‘조선국역관사 순난지비’도 있어.


2022년 개관한 쓰시마 박물관(Tsushima Museum)에는 조선통신사 관련 문서·유물·화첩이 상당수 전시. 이 박물관의 분관 성격으로, 이즈하라 항 주변에는 ‘조선통신사 역사관’(조선통신사 히스토리 뮤지엄)도 운영되고 있어, 통신사의 항로·일정·교류 내용을 집중적으로 소개. 쓰시마 관광객 가운데 한국인의 비중은 한때 90%에 이를 정도였고, 2013년에는 연 20만 명의 한국인 방문을 예상할 정도로, 섬 경제가 사실상 한국 관광객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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