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흔적
우시마도 혼렌지
우시마도 혼렌지(牛窓 本蓮寺)는 “조선통신사 전용 숙소 + 조선 시문‧청자까지 남아있는 절”이라서 우시마도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한국을 느낄 수 있는 장소. 위치: 오카야마현 세토우치시 우시마도초 우시마도 3194, 세토내해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 창건: 14세기 중엽, 교토 묘켄지의 승려 다이카쿠 대승정이 법화당을 세운 데서 시작. 주요 건물: 본당, 번신당(番神堂), 중문 → 일본 국가 중요문화재. 삼층탑(三重塔), 조사지(祖師堂) → 오카야마현 지정 중요문화재. 정원: 에도 시대 대표 조원가 고보리 엔슈(小堀遠州)가 설계한 정원이 있어, “세토내해 전망 + 고전 정원” 조합이 아름답다고 평가.
에도 시대 17~19세기, 조선은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를 12차례 일본에 파견. 이들은 부산 → 쓰시마 → 이키 → 시모노세키 → 세토내해 → 우시마도 → 오사카 → 교토 → 에도로 이어지는 고정 루트를 따라 왕복 2200km를 이동했고, 그 중간 항구 중 하나가 우시마도 항이었어. 17세기, 통신사 일행이 우시마도에 기항할 때 세 명의 대사(정사·부사·종사관)가 묵는 숙소로 혼렌지가 사용. 12번 통신사 가운데 3‧4‧5‧6차 사절단 때 총 4회 혼렌지에서 삼사가 숙박했고, 이후 7차 이후에는 항구 근처의 ‘御茶屋(오챠야, 접대용 관사)’로 숙소가 옮겨졌지만, 계속해서 통신사 접대를 담당한 오카야마번 관리들이 손님을 맞는 장소로 혼렌지가 사용.
혼렌지에는 통신사 삼사가 남긴 한시(漢詩)·서예 두루마리 9점이 전해지며, 이 문서들은 오카야마현 지정 중요문화재. 내용은 주로 우시마도와 혼렌지 경치를 찬탄하는 시들로, 5언 율시 형식(5자 8행)에 운을 맞춰 서로 답시를 주고받는 구조라 “단발성 교류가 아니라, 시를 통해 관계를 이어가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평가. → 즉, 혼렌지에 가면 조선 문인이 남긴 한시가 그대로 문화재로 남아 있는 셈. 세토우치시와 블로그 자료에 따르면, 혼렌지에는 조선통신사가 선물로 남긴 청자 화병(青磁花瓶)도 전해 내려옴. 이런 물건들은 “조선에서 온 손님이 실제로 이곳에 묵고 선물을 주고간 흔적”을 보여주는 아주 구체적인 증거.
혼렌지 경내에는 ‘오챠야 이도(御茶屋井戸)’라는 우물이 있어. 설명에 따르면, 1654년 6월 오카야마번이 조선통신사를 맞기 위해 판 우물이었고, 지금도 “조선통신사 유래의 우물” 안내판과 함께 남아 있어. 통신사 행렬 수백 명이 머무르려면 깨끗한 물 공급이 필수였기 때문에, 이 우물은 일종의 “조선 손님 맞이 인프라”라고 할 수 있어. 혼렌지와 우시마도 항은 통신사 수행원들이 쓴 시·기록 곳곳에 등장하고, 세토우치시는 이 문서들을 모아 「Documents recounting the Joseon Tongsinsa」라는 이름으로 별도로 문화재 지정. 요즘은 한·일 학생들이 이 기록을 바탕으로 통신사 루트를 답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